“봉주르, 한류에 빠졌어요”… 한국어 인기, 일본어 추월 기세
“베르사유 궁전 가봤나요?”(교사) “네, 가봤어요.”(학생들) “광화문은 가봤어요?”(교사) “아니요, 가보지 못했어요.”(학생)
지난달 27일 찾은 프랑스 파리의 클로드모네 고교에서는 고교생 20명이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상주의 화가 이름을 딴 공립 고교로 한국으로 치면 ‘신윤복 고교’나 ‘김홍도 고교’ 정도 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은 인근 학생들이 모이는 ‘한국어 거점학교’답게 학습 열기는 뜨거웠다.
학생들은 경험을 공유하는 표현을 익히고 있었다. 클로드모네고는 언어를 배우는 일은 곧 문화를 배우는 것이란 교육 방침을 갖고 있다. 그래서 수업은 한국 문화를 프랑스 학생에게 알리는 장이기도 했다. 이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조윤정 교사는 교실 스크린에 프랑스와 한국을 상징하는 다양한 사진을 띄워 놓고 학생들과 경험을 나눴다.
조 교사가 “마리옹, 센강에 가봤나요?”라고 한국말로 묻자 마리옹이 느리지만, 또박또박 “네 센강에 가봤어요”라고 답했다. 다시 조 교사가 “엘리앙, 한강에 가봤어요?”라고 하자 엘리앙은 “한강에 간 적 없어요. 가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수업은 광화문과 남산타워, 한강에 이어 한식으로 이어졌다. 조 교사는 “자, 한국의 음식이에요. 한국 음식 먹어봤나요”라고 물었다. 학생들은 “한국 식당에서 먹어봤어요. 파리에 많이 있어요”라고 답했다. 조 교사는 학생들이 한식에 강한 호기심을 보이자 각자 한식 경험을 말하도록 했다. 그러자 한 남학생이 손을 들더니 “순대를 먹어봤다”고 말했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부러움 섞인 탄성이 나왔다.
수업 뒤 이어진 인터뷰에서 조 교사는 한류의 위력을 실감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어 위상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며 “프랑스에 나와 있다 보니 한국 문화를 계속 공부해야 하는 입장인데, 프랑스 학생들에게 오히려 (한류) 정보를 많이 얻는다”고 말했다. 이어 “2017년에 가르치던 학생 중에 방탄소년단(BTS)을 좋아하는 학생이 많았는데, 학생들 영향으로 저도 아미(방탄소년단 팬)가 됐다”며 웃었다.
K팝이 마중물이 되면 드라마와 한복, 음식으로 한국 문화에 관한 관심 영역이 확장되고, 결국 ‘한국에 꼭 가고 싶다’ 혹은 ‘한국 관련 일을 해보고 싶다’로 이어진다. 이 학교 졸업생으로 파리 시테대학 한국학과에 재학 중인 이만 엔고보(21)는 “외국 교환학생, 외국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영어를 배울 경우 갈 수 있는 미국·영국행은 경쟁률이 높다”며 “한국은 기술 분야가 발달했고 한국에는 많은 회사가 있기 때문에 성공할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중문화 이외) 다른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아 가치를 교류하는 분야에서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웠던 점에 대해서는 “존댓말이 어려웠지만, 한국인과 많이 대화하면서 편해졌다”고 했다.
그동안 한국어 교육은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 등에 국한돼 있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도 ‘한국어 바람’이 불고 있다. 프랑스에서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는 초·중·고교는 2018년 17곳에서 지난해 60곳으로 껑충 뛰었다. 같은 기간 한국어 수업을 듣는 초·중·고교생은 631명에서 1800명으로 3배가량 증가했고,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응시자는 292명에서 780명으로 늘었다. 프랑스가 주변국인 영국이나 독일보다 다른 문화에 더 개방적인 편이라 유럽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 확산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프랑스한국교육원의 설명이다.
미셸 세르보니 클로드모네고 교장은 “의심의 여지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젊은 학생들이 진심으로 한국 문화와 유행에 관심을 갖고 한국어를 배운다는 점”이라며 “다양한 것을 접할 수 있는 교육 안에서 좀 더 풍부하고 자유로운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강우 프랑스한국교육원장은 “일본어를 선택한 학교가 70곳 정도인데 60곳인 한국어가 일본어를 추월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했다.
다만 좀 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초·중·고교에서 한국어를 제1·2 외국어로 채택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한국어 학습자를 늘리고 이를 통해 국제적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어 정규 교원 양성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현재 프랑스 내 정규 교원 임용시험에는 한국어 과목이 없다.
한국어 학습자가 한국으로 유학하거나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한 과제다. 윤 원장은 “고등교육 측면에서도 한국어 인기는 상당하다. 파리 시테대학의 한국학과는 경쟁률이 20대 1, 보르도몽테뉴대학 한국어학과는 35대 1에 이를 정도”라며 “다만 한국과 관련된 취업 자리는 많지 않아 한국어를 배운 학생의 진로를 어떻게 안내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파리=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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