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원하는지 모른다”… 떠나는 민지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국정 운영에 청년 참여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각 부처에 청년자문역을 두고 정책 수립 과정부터 청년들의 입장을 반영하겠다는 공약은 국정 과제에 반영됐다. 이는 대선 후보 시절 선거대책위원회에 청년보좌역을 두고 MZ세대로 불리는 청년층을 끌어안기 위해 노력했던 일의 연장선상이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첫 정례 국무회의가 개최된 정부세종청사에서 MZ세대 공무원 36명과 별도로 만나 대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소통 노력에도 MZ세대의 호응은 영 신통치 않다.
윤 대통령의 ‘MZ세대 사랑’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개혁 드라이브를 걸면서 “기득권 강성 노조의 폐해를 종식시키지 않고서는 청년들의 미래가 없다”고 거듭 말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과 한·일 관계 정상화를 결단하면서는 “한·일 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기 위해 미래세대 중심으로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을 놓고 혼선이 빚어졌을 때 윤 대통령은 “모든 정책을 MZ세대, 청년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MZ세대는 모든 세대의 여론을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 행보의 알파와 오메가는 미래세대를 위한 개혁”이라며 “청년세대를 끌어안아야 윤석열정부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게 대통령의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MZ세대의 반응은 냉랭하다. 한국갤럽이 지난 4~6일 실시한 조사에서 20대의 윤 대통령 지지율은 16%, 30대의 지지율은 19%를 기록했다. 지난달부터 20대 지지율은 13~24% 사이를 오갔고, 30대 지지율도 13~27% 사이에서 등락을 거듭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2030세대 지지율이 여전히 10~20%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을 평가하는 MZ세대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봐도 낮은 지지율이 고스란히 체감된다. 국민일보는 대선 때 윤 대통령을 지지했으나 지금은 마음이 돌아선 20대 6명에게 윤석열정부의 청년정책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 답했다.
충북에 사는 공무원 최모씨는 “솔직히 말하면 (청년층을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하는지 모르겠고 뭘 해주는지 모르겠다”며 “대통령이 뭔가 도와줄 것처럼 말을 했는데 막상 전 정부와 다를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힘들어 적금이나 대출 같은 것에 신경 쓰다 보니 ‘지금 당장 (정부가) 해주는 것이 뭐가 있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대기업에 근무하는 안모씨도 “기억에 남는 청년정책은 없다”며 “대통령이 말은 굉장히 미래세대를 위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이어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실질적인 금전적 혜택을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에 거주하는 취업준비생 강모씨는 “청년도약계좌나 저금리 대출, 청년주택정책은 내게 너무 먼 얘기”라며 “갓 사회에 진입하는 청년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전남의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고모씨는 “여성가족부 폐지는 그나마 기억에 남는 대통령 공약인데 제대로 안 되고 있다”며 “지키는 공약이 없으니 기억에도 잘 남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논란이 된 강제징용 해법 등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해서도 물었다. 한·일 관계 정상화를 추구하는 정책 방향에는 대부분 공감하면서도 아직까지 뚜렷한 실익과 일본의 태도 변화가 없다는 점에선 의구심을 나타냈다.
공무원 최씨는 “과거사를 청산하고 미래로 가는 방향은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검정 교과서의 역사 왜곡 문제를 보면 일본이 진짜 정신을 차린 게 맞는 것이냐”면서 “우리는 미래로 간다고 하는데 일본은 또 그게 아닌 것처럼 보여 아쉽게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취준생 강씨 역시 “대통령의 외교 방향에는 동의를 어느 정도 한다”면서도 “딱히 의미 있는 결과를 일본으로부터 가져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반쪽 외교’라는 느낌은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에 사는 자영업자 김모씨도 “반일이 아니라 극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면서 “긍정적인 한·일 관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국익을 챙겨올 수 있을까’라는 점에는 조금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은 20대의 날 선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최씨는 “근로시간 유연화의 혜택을 받아 내가 쉴 때는 다른 동료들에게 일이 몰릴 것이고, 그러면 나도 정신적으로 제대로 쉬는 게 아닐 것”이라며 “남들이 쉴 때는 또 내게 일이 몰리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정부가 고려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기업 직원 안씨는 “우리 회사에도 자율출퇴근제가 도입됐지만 제대로 안 지켜지고 있다”면서 “현재 있는 제도부터 잘 살렸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강씨는 “근로시간 유연화를 보고 시대에 역행하는 조삼모사 정책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며 “유럽은 주 4일제를 도입한다는데, 근로시간 자체를 줄이는 게 맞지 않냐”고 되물었다. 서울에 사는 대기업 직원 진모씨는 “근로시간 유연화가 MZ세대를 위한 정책이라는데, MZ세대가 뭘 원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눈치가 보여 있는 휴가도 못 쓰는 판에 근로시간 유연화가 가당키나 하냐”고 말했다.
다만 자영업자 김씨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전 정부에서 출산휴가나 실업급여 등 중소기업 고용주를 힘들게 하는 제도를 너무 많이 만들어냈다”면서 “현 정부 정책의 실효성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고 현재는 일단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동성 박성영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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