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간판도 없이 소박… 내면의 웅장 보여준 ㄱ자형 한옥교회

서윤경 2023. 4. 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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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 하나님을 만나다] <21> 강원도 고성 오봉교회
강원도 고성 오봉교회는 문화재청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한 왕곡마을에 있다. 초가와 기와집이 모인 마을 안에 100년 넘게 자리한 오봉교회 앞마당의 살구나무에 꽃이 만개했다. 고성=신석현 포토그래퍼

강원도 고성의 왕복 2차선 송지호로를 달리니 논두렁 너머 야트막한 산을 병풍 삼아 한옥과 초가집이 소담하게 자리한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언덕엔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가 보인다. 살구나무가 있는 그곳엔 팔작지붕에 ㄱ자형 한옥인 오봉교회(장석근 목사)가 있다.
2012년부터 건축을 시작한 오봉교회는 팔작지붕에 ㄱ자형 한옥으로 지었다. 북방식 ㄱ자형 가옥과 달리 외양간은 없다. 고성=신석현 포토그래퍼, 천지원건축사무소 제공


5개 산을 병풍 삼은 한옥교회

지난달 30일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왕곡마을의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을 오르니 한옥 건물이 고개를 내밀 듯 나타난다. 첨탑 위 십자가도, 눈에 띄는 간판도 없으니 작정하고 찾지 않으면 교회라는 걸 눈치채기 어렵다. 오봉교회다.

교회의 이름이 된 오봉리는 오음산과 두백산 공모산 순방산 제공산 호근산의 5개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어 붙여졌다. 1919년 인근 간성교회를 다니던 김정섭 속장의 기도처로 시작해 올해 104돌을 맞았다. 교회인 걸 확인시켜 주는 건 교회 마당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세워진 소박한 나무 십자가다.

장석근(66) 목사는 “교회 성도의 밭에 있던 버드나무다. 나무 그늘 때문에 농작물이 자라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잘라냈다”며 “성도에게 나무판을 받아 십자가를 만들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작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긴 나무판을 반으로 갈라 두 조각을 냈다. 장 목사는 “2개가 된 판에 가로선만 파 간격을 두고 세우니 하늘과 맞닿은 십자가가 됐다”고 설명했다.

오봉교회는 교회라는 걸 소박하게 알린다. 잘린 버드나무를 쪼개고 파내 만든 하늘과 맞닿은 십자가와 살구나무 옆에 세워진 종탑. 고성=신석현 포토그래퍼


마당에 세워진 종탑은 마을을 굽어보듯 서 있다. 종은 예전 교회 건물의 종탑에 달려 있었다.

장 목사는 목원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84년 오봉교회에 부임했다. 첫 부임지인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얼추 40년 됐다. 장 목사는 “와서 일하다 보니 순간처럼 시간이 지나갔다”고 했다. 그러더니 질문을 던진다.

“저게 무슨 나무인지 알아요.”

분홍 꽃이 흐드러지게 핀 마당 앞 나무다. “살구나무”라고 알려주더니 “꽃 하나에 살구 열매 하나가 열린다. 바로 생명”이라고 말했다.

예배당 벽에 붙은 벌레를 보고는 “‘긴허리노린재’다. 공격을 받으면 고약한 냄새를 내는 녀석”이라고 알려주기도 한다. 이 짧은 대화에서 장 목사의 목회 철학을 엿볼 수 있다. 1992년 고성에 핵폐기장 건립 문제가 생긴 뒤 시작한 환경운동, 생명운동이다. 인터뷰 후 배웅할 때도 길 위의 야생초, 마을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왕곡천 속 물고기도 지나치지 않고 알려준다.

오봉교회 장석근 목사는 예배당 제대를 매주 그림과 조형물로 꾸민다. 사순절 기간에 맞춰 십자가로 꾸민 제대. 고성=신석현 포토그래퍼


예배당에도 장 목사의 목회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제대엔 십자가가 없다. 대신 매주 말씀과 상황에 맞춰 그림과 조형물로 꾸민다. 교회를 찾았을 땐 사순절 기간에 맞춰 십자가로 꾸몄다. 솔방울에 나뭇가지를 꽂아 만든 십자가, 교회 건축 때 사용하고 버린 철사 끈으로 엮은 십자가, T자형의 타우 십자가 등 형태도 소재도 다양하다. 장 목사는 “설교 전 꾸며진 제대에 대한 성도들의 의견을 묻는다. 각자 생각과 입장에 따라 달리 해석하고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예배는 1, 2부로 진행한다. 전통 예배 방식인 말씀 그리고 성만찬이다. 정성스럽게 마련한 음식을 나누는 게 성만찬인데 의식도 있다. ‘밥 노래’를 같이 부르고 ‘오봉 밥 기도’를 함께 드린다. 장 목사는 “큰 교회는 선포하고 외쳐야 하지만 우리 교회는 작아서 가능하다”고 했다.

부임 당시 차편도 없고 성도도 20명 남짓이라 목회자들이 피하던 교회는 이제 젊은 목회자들이 선호하는 교회가 됐다. 2012년 문화재청 지원을 받아 교회를 한옥으로 지으면서 찾는 이들이 늘어서다. 한옥으로 짓기로 한 건 왕곡마을과 어우러지기 위한 결정이었다.

국가가 보호하는 마을

왕곡마을은 조선왕조 건국에 반대한 고려시대 함부열이 은거하며 형성됐다. 이후 양근 함씨와 강릉 최씨 집성촌을 이뤘다. 19세기를 전후해 지어진 집들은 양통집(겹집) 구조를 갖췄다. 방과 부엌 식량창고인 도장 등이 모두 한 지붕 아래 모여 있는 게 겹집이다.
왕곡마을은 방 부엌 도장 등이 한 지붕 아래 모인 겹집구조, 지붕을 연결해 부엌 옆에 외양간 공간을 둔 ㄱ자 형태를 갖춘 북방식 가옥이 모여 있다. 고성=신석현 포토그래퍼


가로로 긴 본채의 끝 처마 밑에 세로로 지붕을 연결해 부엌 공간을 확장하면서 ㄱ자형 배치 형태도 갖췄다. 확장된 공간은 외양간이다. 덕분에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나오는 온기는 방부터 외양간까지 모든 공간에 퍼졌다.

긴 겨울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북방식 가옥으로, 관북지방이나 강원 북부 등 추운 지방에서 만날 수 있다.

왕곡마을길 42-5 ‘큰상나말집’도 다르지 않았다. 고성군청 관광문화과 소속 조효선(58)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가옥 안으로 들어섰다. 설명대로 안방 도장방 사랑방 마루 부엌과 외양간이 한 건물 안에 있었다.

조 해설사는 “마을 주민들 말로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소 두 마리가 실제 이곳에 살았다”고 소개했다. 겨울 맞춤형 가옥이라는 걸 알려주는 요소는 이뿐만이 아니다. 폭설이 오면 지붕에 쌓인 눈이 무게를 이기도록 굵은 서까래를 촘촘히 박았다. 동남향의 집에는 대문과 담장을 만들지 않았다. 햇볕과 동남풍이 집 안에 들어오고 눈은 쌓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대신 뒤채는 높은 돌담을 둘러 북풍을 막았다. 굴뚝으로는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항아리를 덮었다.

이런 북방형 가옥이 모여 마을을 이루는 곳은 왕곡마을뿐이다. 지은 지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여년 이상인 가옥들이다. 문화재청은 2000년 1월 북방식 가옥의 원형을 보존하는 왕곡마을 18만1000㎡를 국가민속문화재 235호로 지정했다. 1998년부터 2년간 조사한 결과다.

기와집 31채에 초가집은 20채다. 실제 초가집은 기와집에 딸린 부속건물까지 합하면 105채다. 이 중 빈집이 된 8채는 문화재청이 구입해 숙박체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큰상나말집도 여기에 포함된다.

북방형 가옥에 담긴 교회

오봉교회의 설계를 맡은 건 천지원건축사무소 천상섭(64) 소장이다. 건축사였던 천 소장은 2000년 한옥·문화재실측설계 면허를 따고 한옥 건축에 힘을 쏟았다. 한옥을 모티브로 한 속초 신흥사 유물전시관, 홍천향교충효관 등도 그가 설계했다.

천 소장은 “기존 교회와 유사한 서양식과 한옥 형태를 두고 장 목사, 문화재청 자문위원과 꾸준히 이야기했는데 북방식 가옥이 모인 마을에 어울리는 한옥으로 짓자는 데 생각을 같이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대신 문화재 복원정비계획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교회라는 공간의 특성을 담아내는 데 힘썼다.

예배당 층고는 최대한 높였다. 성도들이 갑갑하지 않았으면 하는 장 목사의 바람을 담았다. 이를 위해 천정은 대들보에 종보를 덧댔다.

예배당은 층고를 높이고 기와의 선을 살리기 위해 대들보 위에 종보, 그 위에 중도리를 얹었다. 서까래는 눈이 많이 오는 지역에 맞게 촘촘히 박았다. 고성=신석현 포토그래퍼


천 소장은 “20평 작은 공간에 층고를 6m로 높여야 했다. 지붕의 곡(선)을 만들려고 아랫보인 대들보 위에 종보를 올리고 마지막에 동그란 중도리를 얹었다”고 설명했다. 중도리는 서까래나 지붕널을 받치기 위해 가로로 덧대는 구조물이다. 서까래는 북방형 가옥을 따랐다. 날씨를 고려해 촘촘히 박았다. ㄱ자형 구조는 달리 쓰였다. 외양간 공간엔 화장실이 들어섰다. 교회를 찾는 이들을 위해서다.

마당을 향한 격자형 창호문 하단은 일반가옥과 달리 공판을 넣었다. ‘교회’라는 걸 알리기 위한 건축가의 배려다.

목조건축 형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지붕 아래 절반은 네모꼴의 우진각지붕, 위는 박공 형태인 맞배지붕의 합각식 지붕이다.

“포는 하나도 넣지 않았다”는 천 소장의 말은 마을 속 교회답게 화려함은 배제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포란 공포(栱包)를 말한다. 공포는 선반을 아래에서 받쳐 주는 까치발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지붕 끝 하중을 분산해 받치고 기둥으로 전달하는 기능적 역할로 시작했지만, 처마를 밖으로 길게 빼 건물의 외관을 웅장하게 처리하는 장식적 요소로도 쓰인다.

고성=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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