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여성 작가의 해? 시대가 주목하는 젊은 여성 작가 3인

2023. 4. 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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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상의 심사위원단은 “압도적인 기세와 풍채를 자랑하는 대상 수상작을 비롯해 세대와 젠더, 역사와 재현, 노동과 사회, 현실과 환상을 가로지르며 전개되는 창의적인 작품들”이라 평하며 여성 작가의 기세에 힘을 보탰다. 이미상, 김멜라, 성혜령, 이서수, 정선임, 함윤이, 현호정. 시대가 주목하는 젊은 여성 작가 7인의 찬란한 기록.
「 이미상 」
2018년 웹진 〈비유〉에 발표한 데뷔작 〈하긴〉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9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소설집 〈이중 작가 초롱〉을 펴냈다.

Q : 대상 수상 소감

A : 무척 기쁘고 감사하다. 여섯 분의 훌륭한 작가와 함께 상을 받아 좋지만 한편으론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글이 실리며 많은 분이 보게 되실 텐데 벌써부터 긴장이 많이 된다.

Q : 수상작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A :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다. 이 작품을 쓸 때는 돌봄 행위보다 돌봄을 둘러싼 담론에 좀 더 관심이 많았다. 작가가 되기 전까진 단편소설을 즐겨 읽지 않았지만, 몇 년 동안 단편소설을 쓰며 장편과는 다른 매력에 빠지게 됐다. 자연스레 단편소설의 고유한 형식은 무엇인지, 그것이 실제 삶에서 나타난다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단편소설에서는 여러 장면 중 유독 도드라지는 ‘한 방’, 즉 결정적 장면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우리의 삶에도 그런 특별한 순간이 있다. 문학과 일상 각각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순간을 겹쳐보고 싶었고, 특별함에서 탈락한 것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Q : 한국에서 여성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

A : 개인적으론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많이 의식하며 사는 것 같지만, 작가로서는 여성임을 크게 의식하진 않는다. 그러나 소설의 관점과 주제가 형성되는 데 있어, 전자가 후자에 흘려 들어가는 것 같다.

Q : 다양해지는 여성 서사 문학

A : 일단은 양이 많아져야 다양함을 보여줄 수 있다. 여성 서사가 너무 적으면 작가든 독자든 한 작품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되지만, 여성 서사가 보편화되면 그때부터 다양한 여성을 그릴 수 있다. 지적이고 도전적이고, 정의롭고 복잡하고 품위 있는 여성 캐릭터가 부재한 상태에서 여성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그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러저러한 여성 캐릭터는 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르고 다양한 여성 캐릭터는 바로 그 흔한 캐릭터를 딛고 탄생한다.

Q : 좋은 소설이란

A :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겠군’ 했는데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 소설. 또는 예측대로 흘러갔는데도 매혹되는 소설. 소설이 사람을 지속적으로, 전적으로 바꾸진 못해도 내일의 행동 정도는 좋은 쪽으로 바꾸기도 하는 것 같다. 한 달 정도 날 더 나은 버전의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소설은 정말 끝내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Q : 동시대 문학이 갖는 의미

A : 누구나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것. 직접 써보면 소설과 네이트판 썰이 어떤 점에서 다른지 몸소 알 수 있어 재미있는 것.

Q :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로서 가지는 책임감

A : 작가로서의 책임감을 묻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작가의 사회적 책임과 실제 긍정적인 영향 사이의 관계가 적다고 여겨 깊게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책임감을 가진다 한들 그것이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그저 즐거움을 위해 썼는데 황소 뒷걸음치다 쥐 잡듯 의외의 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깊게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다. 보다 오래, 그리고 복잡하게 생각해보려 한다. 그 생각하는 과정을 소설에 투영해 내보이거나 슬쩍 곁들이고 싶다.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 김멜라 」
2014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적어도 두 번〉 〈제 꿈 꾸세요〉가 있다. 문지문학상과 이효석문학상, 2021년과 2022년에 이어 올해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Q : 수상 소감

A : 수상 소식을 들을 땐 언제나 어리둥절하고 떨린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감사하고. 수상집이 매년 4월에 출간되는데, 덕분에 올해도 특별한 봄을 보내겠구나 생각했다.

Q : 수상작 〈제 꿈 꾸세요〉

A : 슬픔에서 시작한 이야기다. 집필 당시에는 감염병이 심할 때라 혼자 고립돼 죽어가는 사람이 많았다. 기사에서 20~30대 여성의 자살률이 높다는 통계를 보면 먹먹함이 들었다. 누군가를 잃은 상실감, 또 누군가를 떠나야 할 때의 안타까움. 한편으론 이별이나 죽음을 함부로 말하는 태도에 속상하고 화가 나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 노트에도 적었지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건네는 작별 인사 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

Q : 소설을 쓰며 염두에 뒀던 것

A : 피할 수 없는 불행이나 아픔 속에서 조금이라도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을 담고자 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소중한 존재들에게 난 어떤 기억을 주고 싶을까?’ 그런 질문을 거듭하며 화자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바깥으로 열려 있기를 바랐다.

Q : 한국에서 여성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

A : 나 자신을 어떤 카테고리나 관습에 짜 맞추지 않고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 같다. 작가이기 전에 독자로서 이분법적 성별이나 가부장제, 인간중심주의와 같은 장벽을 뛰어넘어 자유로운 시선을 주는 글을 좋아한다. 더불어 내 글이 누군가에게 그런 신선함을 줄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

Q : 여성 서사를 쓰는 일

A : 특정 이데올로기나 인물 유형을 반복하는 관습적인 이야기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는 것을 쓰고 또 읽고 싶다. 지금 이곳에 여성이 있고, 그들이 사랑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시선을 불어넣어주는 글을 대할 때마다 많이 배우는 동시에 나 역시 나의 길을 깊고 명랑하게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Q : 눈여겨보는 여성 작가의 작품

A : 젊은 여성 평론가의 글을 읽으며 새로운 인식의 활로를 연다. 평론은 작품을 매개로 어떤 사유를 펼쳐나가는 것인데, 그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한 곡의 음악을 깊이 감상한 기분이다. 소설이나 시뿐 아니라 다른 이의 작품을 성실하게 읽어나가는 분들의 노력도 내게 빛을 가져다준다.

Q :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

A : 사랑의 순간. 그리고 천진함. 구체적으로 무구한 자연의 존재들이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인간도 그 자연의 일부다. 커다란 전체 안에 내가 녹아 있다는 걸 체감할 때, 그 자각의 경험을 글로 쓰고 싶다. 최근엔 로맨스에 관해 생각한다. ‘로맨스란 무엇일까? 그것은 성욕과 어떻게 다를까? 몸과 몸이 접촉한다는 건 무엇이고, 물질적으로 닿고 융합한다는 건 무엇일까?’ 그런 뜬구름 잡는 생각을 한다. 5월에 발표할 단편소설에 그런 생각을 실마리로 이야기를 써보았다.

Q :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로서 가지는 책임감

A : 기존 질서에 의문을 던지고 자신의 논리로 세상을 다시 그리는 작가들의 시도에 용기를 얻는다. 보여지는 화려한 장식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책임감, 즐겁고 자유롭게 계속 쓰겠다는 포부로 답하고 싶다.

〈제 꿈 꾸세요〉

「 현호정 」
2020년 박지리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단명소녀 투쟁기〉, 희곡 〈그리고 거북이는 고개를 끄덕였다〉를 발표했다.

Q : 수상 소감

A : 유튜브에서 ‘뽀구미’라는 분의 클립 하나를 봤는데, 시청자들을 향해 “예쁘잖아, 나 예쁘잖아. 이 정도면 예쁘지! 왜 나에 대한 예쁨의 기준이 그렇게 엄격한 건데!”라고 하는 영상이었다. 젊은작가상 심사 기간에 “잘 썼잖아. 이 정도면 잘 썼지! 왜 나에 대한 씀의 기준이 그렇게 엄격한 건데!”라고 바꿔 부르곤 했다. 막상 수상 소식을 듣고 인터뷰도 하게 되니 솔직히 멋쩍은 마음이 가장 크다. 그게 쑥스러워서 아직은 실감이 안 난다.

Q : 수상작 〈연필 샌드위치〉

A : 자전적인 이야기, 글에 대한 글은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래도 살면서 딱 한 번은 써야겠더라. 그게 이 소설이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이 소설이 〈2023 올해의 문제소설〉에도 선정됐는데, 해설을 써주신 김종옥 선생님께서 ‘출사표’라는 표현을 해주셨다. 정말 그랬던 것도 같다. 이 소설에 ‘악몽에 붙인 다섯 개의 각주’라는 부제가 있었다. 힘든 시기를 보내던 시기에 악몽을 매일 꾸었고, 잠에서 깬 후에도 악몽을 계속 앓아야만 했다. 그것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분석하려는 시도는 스스로를 달래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악몽 속에 심어져 있는 단서들을 소설 안에서 스스로 풀어보고 각주를 사용해 해석에 입체성을 부여하는 형태의 소설을 구상하게 됐다.

Q : 할머니라는 존재

A : 이 소설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를 합친 존재다. 집에 두 할머니를 다 모셨는데, 친할머니와는 같은 집에 살았고 외할머니와는 같은 건물, 다른 층에 살았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할머니들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2022년 1월에 친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바로 다음 달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예전에도, 지금도 종이를 펼치면 가장 먼저 두 분이 그 위에 자리를 잡는다. 다만 지금은 병 많고 눈물 많은 여자 노인의 모습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소녀일 때도, 두꺼비일 때도, 이런 표현은 너무 소설가 같지만 꽃일 때도, 바다일 때도 있다. 그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Q : 나를 작가로 키운 어린 시절의 책

A : 굉장히 위엄 있고 오만한, 동화책 읽는 것을 싫어했던 어린이였다. 책에 그려진 삽화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경어체로 적힌 문장들도 싫었다. 어린이를 싫어하는 어린이라 책에 등장하는 어린이 캐릭터도 싫었다. 그래서 가장 많이 읽은 책은 동물 백과였다. ‘베텔스만’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왔던 〈어린이 동물백과〉를 걸레짝이 될 때까지 봤는데, 찾아보니 절판됐더라. 박쥐나 파충류 페이지를 읽고 있으면 수시로 온몸에 전율이 일어 어린 시절은 늘 하이퍼 상태로 지냈는데,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다른 이들은 늘 차분하고 침착한 어린이라 말해준 적이 있어 그게 참 신기했던 기억도 있다.

Q : 눈여겨보는 여성 작가의 작품

A : 평소 송섬 작가님 생각을 많이 한다. 오해 없으셔야 할 텐데, 내 안에서 무언가 가물었다고 느낄 때 〈골목의 조〉를 펼쳐본다. 평소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도 그 책을 읽고 나면 꼭 혼자 한두 잔을 하게 된다.

Q : 다양해지는 여성 서사 문학

A :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너무 다른데, 어떤 이에게는 한 명의 여성이 이름만 바꿔가며 등장하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같은 위치에 겹쳐놓을 수 있는 여성의 이야기처럼 읽혀질까 봐 무서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것도 나름대로 흥미로운 것 같다. 수천, 수만 개의 눈과 손과 성기를 가진 단 한 명의 여성(캐릭터, 서사, 퀴어…)이라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Q :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로서 가지는 책임감

계속 쓰고 생존하는 것. 언젠가 ‘늙은작가상’을 타는 그날까지.

〈연필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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