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쓰레기통, 다다익선일까 과유불급일까 [투게더]
선택과 집중을 통한 쓰레기통 갯수 산정 필요
쓰레기 버리기는 ‘권리‘가 아닌 ‘책임’
영국인 굴 푸자(Gul Pooja·30대·여)씨. 새하얀 벚꽃잎이 수놓아진 봄 풍경을 기대하며 가족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그가 먼저 향한 곳은 창원시 진해군항제. 영국인도 알 만큼 유명한 벚꽃 축제다.
만개한 벚꽃을 보며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도 잠시… 길거리 음식을 먹은 후 생긴 쓰레기를 버리려 했지만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는다. 10분, 20분, 30분…. 넓은 축제 거리를 샅샅이 뒤져봐도 쓰레기통을 찾지 못했다. 결국 푸자씨는 그 날 생긴 쓰레기를 유모차에 모두 실은 후 호텔에 돌아와서야 버릴 수 있었다.
그는 “영국에는 100m 또는 200m 간격으로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쉽게 볼 수 있고 축제가 열리면 쓰레기통 수를 더 늘리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아 의아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또 “에어비앤비와 같은 숙박업소에는 분리수거통이 잘 마련되어 있는데 길거리에서는 재활용 쓰레기통이 없어 재활용을 잘 하지 않는 것인가 싶었다”고 토로했다.
누구나 테이크아웃한 커피 컵을 마땅히 버릴 곳이 없어 손에 들고 다닌 경험이 있다. 혹은 쓰레기통을 발견해도 이미 꽉 차 있어 쓰레기 위에 쓰레기가 얹혀 있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푸자씨 역시 “쓰레기통이 없다면 사람들은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집까지 가져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쓰레기통이 조금 더 늘어나야 한다는 의견인 거다.
하지만 마냥 쓰레기통을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오늘날 지방자치단체는 가로변 쓰레기통을 오히려 줄이는 중이다. 서울시는 2019년 6000여개였던 가로변 쓰레기통을 2021년 5000여개까지 줄였다.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가로변 쓰레기통에 무단 투기하는 가 하면 쓰레기통 주변이 너무 더러워진다는 민원이 발생해서다.
4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만난 한강공원 녹지 관리 근무자 김영근씨는 “쓰레기통은 이미 충분하다. 우리 곁에 너무 많이 설치돼도 거리 환경에 좋지 않다”는 의견을 전했다. 성북구 등 서울 일대에서 23년 째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그는 쓰레기통의 갯수보다 시민의식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쓰레기통이 있음에도 멀리 있는 쓰레기통을 직접 찾아 버리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는 이유에서였다.
쓰레기통을 늘릴 수도 없고 줄이기도 어렵고.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답한다. 늘리는 것도 줄이는 것도 아닌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의 설명이다.
“대학로와 같이 인구가 많은 중요 지점에는 쓰레기통 수를 유지해야 합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테이크아웃 전문점 이용객이 많은데 일회용컵을 버릴 곳이 없어져 무단 투기가 발생하고, 결국은 지자체가 치우게 돼요. 장소별 쓰레기통이 차는 속도를 측정해 수거 주기를 관리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국내 쓰레기통 관리 시스템이 해외에서 성공을 거둔 사례도 있다. 친환경 쓰레기 수거·관리 전문 스타트업 ‘이큐브랩’은 쓰레기통 폐기물 발생량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하울라(Haulla)’를 개발해 쓰레기 수거 업체의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2021년 출시 1년 반 만에 미국에서 사업장을 2000곳 이상 확장하며 세계 최대 쓰레기 생산국의 선택을 받았다.
쓰레기통을 늘리거나 혹은 줄이거나. 쓰레기통의 적정 갯수는 세계적인 논쟁거리다.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도 어렵다. 다만 한국에서는 점차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적정 쓰레기통 수를 산정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지적하는 문제가 있다. 인파가 몰린 축제 후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현상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쓰레기통은 이미 넘쳐났으니 길거리 아무 곳에나 버리는 이들. 내가 쓰레기를 버릴 권리를 지자체가 제공하지 않았으니 아무 곳에나 버리겠다는 인식이 내포돼 있다.
하지만 이런 발상은 어떨까.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권리가 아닌 책임이라는 발상이다. 행여 쓰레기통이 꽉 차서 버릴 공간이 없더라도 무단 투기는 하지 않겠다는 시민 의식. 또 과도한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는 곳에는 쓰레기통을 선제적으로 많이 배치하는 지자체의 능란함이 어우러진다면 모두가 좋은 기억만 남기고 축제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런 문제의식은 88 올림픽 때도 있었다. 관습을 바꾸기에 이미 늦은 건 아닐까.
고해람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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