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은 출장중] “100% 관광” 지적에도 다 떠났다

이강민,이정헌,김승연 2023. 4. 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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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무실 심사로는 부실 출장 못 막아
일정, 비용 짜여진 대로 통과시켜
지난해부터 세계 각국에서 코로나19 관련 입국 제한조치를 완화하면서 ‘의원님’들의 해외 출장(연수)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국민일보는 다시 시작된 지방의회 의원들의 해외 출장 내역을 꼼꼼히 뜯어보고 있습니다. ‘정책 입안에 참고’ ‘국제적 감각 제고’ 등 거창한 단어들로 포장돼있지만 실상은 단순 ‘관광’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각 의회 홈페이지에는 의원들의 출장 계획서와 결과보고서가 공개돼있습니다. 현재 거주하고 계신 지역 의회의 해외 출장 내역 중 수상한 점이 있으면 이메일이나 카카오톡(ID : pandan22)으로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시민들의 세금으로 떠난 ‘외유성 출장’은 아니었는지 꼼꼼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외유성 해외출장 문제가 잇따르자 행정안전부는 민간 심사위원 확대, 심사회의록 공개 등을 통해 출장 심사 기능을 강화했다. 여행 필요성 및 여행자 적합성, 여행국과 여행기관의 타당성, 여행 기간 타당성 및 여행경비 적정성을 심사 기준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국민일보가 전국 243개 지방의회의 해외 출장내역 및 심사회의록을 전수 분석한 결과, 심사위원회는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행안부는 출장 필요성, 방문국 타당성, 출장자 적합성, 경비의 적정성 등 총 19개 문항으로 구성된 심사기준표를 제시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적합·부적합 기준은 따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결국 심사는 심사위원들의 재량에만 오롯이 맡겨져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심사위원은 통상 의회 의장이 위촉한다. 민간위원의 참여가 늘었다고 할지라도 결국 의회의 입맛에 맞춰 심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행정안전부가 2019년 2월 '지방의회의원 공무국외출장규칙 표준안'을 통해 제시한 심사기준표. 기준표는 출장 필요성, 방문국 타당성, 출장자 적합성, 경비의 적정성 등 총 19개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경상남도 양산시의회의 심사회의록에는 지방의회의 출장 심사가 얼마나 허술한지 적나라하게 기록돼있다. 양산시의회는 지난해 10월 17일부터 25일까지 7박 9일 일정으로 미국 서부로 출장을 다녀왔다. 의장과 부의장을 포함한 의원 17명이 단체로 출장길에 올랐다. 계획서에 따르면 그랜드캐니언·브라이스 캐니언·자이언 캐니언·요세미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와 같은 관광 일정이 대거 포함됐다.

출국 불과 13일 전에 열린 양산시의회 심사회의록에는 무력한 심사 과정이 고스란히 기록돼있다. “사실상 (심사가) 요식행위에 도장 찍는 것밖에 안 된다”, “이미 가려고 계획 다 세워놔 (심사)할 필요도 없고 잘못된 거다”, “벌써 미국 간다고 소문 다 나 있다” 등 위원들의 지적이 쏟아졌다.

양산시의회가 공개한 심사 회의록. 심사위원장은 “이 위원회가 참 유명무실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코스를 바꿀 수도 없고 금액을 바꿀 수도 없고 다 정해놔 놓고 가도 되나, 안 가도 되나 찬반만 물어보니까 이 위원회가 참 별볼일 없는 위원회다 이말이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양산시의회 제공


심사위원장은 “이 위원회가 참 유명무실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탄했다. 그는 “코스를 바꿀 수도 없고 금액을 바꿀 수도 없고 다 정해놔 놓고 가도 되나, 안 가도 되나 찬반만 물어보니까 이 위원회가 참 별 볼 일 없는 위원회다 이 말이다”며 “이거는 사실 우리가 (의회) 분위기 맞춰주는 것밖에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심사위원장조차 위원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인한 셈이다.


당시 심사에서 위원들은 “기준대로 하면 탈락”이라며 외유성 일정에 대한 지적을 내놨다. “국립공원은 그냥 관광” “일정표를 외유성이 아닌 형태로 바꿀 필요가 있다” 등 구체적인 지적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해당 출장 계획은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다만 위원장은 ‘다음엔 사전 심의를 거치고, 심의위원회에 견학 보고서를 제출한다’는 2가지 조건을 달았다.

특히 시군구에 해당하는 기초의회의 경우, 유럽 대도시로 향하는 출장 계획은 현실적으로 기초의회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전국에서 공통으로 제기됐다.

충청북도 진천군의회는 이번 달 7박 9일 일정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해외 출장을 떠날 예정이었다. 군의회 의장과 의원 8명 모두 떠나는 일정이었다. 계획서에는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족성당), 누에보 다리, 몬세랏 수도원 등 스페인 여행의 주요 명소들이 여럿 포함돼 있었다.

진천군의회 공무국외출장 심사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 8일 열린 심사위에선 "사람들이 오해하기 딱 좋다", "리스본,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는 서울 같은 도시인데 진천과 안 맞는다", "이거대로라면 100% 관광성"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진천군의회 제공


심사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심사에서는 “이대로 공개하면 놀러 간다고 오해받는다. 사람들이 오해하기 딱 좋다”며 “리스본이나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는 서울 같은 도시인데 진천군하고는 안 맞는다. 진천군하고 접목할 수 있는 게 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른 위원도 “이대로면 100% 관광성”이라며 “사실 저희(진천군)하고 (출장국) 환경도 안 맞는 것도 있다. 이대로 가다 보면 관광성 (논란)이 염려돼 말씀드린다. 실무하시는 분들이 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럽의 대도시들이 지방의회 출장국 성격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반복된 것이다.

그런데도 해당 출장 계획은 참석 위원 5명 모두 동의해 원안 가결됐다. 군의회 관계자는 “미흡한 내용을 수정해서 진행하라는 의미로 의결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민일보 보도를 통해 부실 심사 내역이 알려지자 군의회는 결국 출장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국민일보는 지난 24일 온라인 기사를 통해 진천군의회의 해외 출장 일정이 내부 심사 단계에서 '외유성 출장'이라는 지적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충청북도 청주시의회 심사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청주시의회 행정문화위원회는 지난해 9월 22일부터 29일까지 6박 8일 일정으로 프랑스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일정에는 루브르박물관, 베르사유 궁전, 모네의 집, 몽생미셸 수도원, 파리 생제르맹 스타디움, 프랑스 시립현대미술관 등의 유명 관광지가 두루 포함됐다.

출국 불과 7일 전에 열린 심사위원회의에서 한 위원은 “어차피 외유성 연수”라며 “연수 내용과 청주시를 끼워 맞추기 한 것밖에 더 되냐. 청주는 소도시로 별로 큰 도시가 아닌데 (프랑스 출장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너무 큰 데만 가면 관광성밖에 안 된다. 우리하고 맞는 걸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위원도 “프랑스 국립도서관과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은 세계 3대 도서관인데 이거랑 청주도서관하고 연결하면 안 될 것 같다”며 “프랑스 변두리의 소도서관, 작은 문화재, 민속 보호처, 도시 재생 현장 이런 게 있다. 그것을 청주하고 접목할 것을 포인트 해서 와달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행정문화위원장이 “말씀하신 내용을 겸허하게 받아 충실하게 연수를 마치고 오겠다”고 대답하면서 심사는 싱겁게 끝났다. 해당 출장 계획은 ‘이의 없음’으로 가결됐다. 하지만 계획서와 결과보고서 일정을 비교해 보면 지적받은 방문지는 그대로인데 오히려 공식 기관인 프랑스 관광청은 빠져 있었다.

청주시의회 결과 보고서 주요 일정. 행정문화위원회는 지난해 9월 22일부터 29일까지 6박 8일 일정으로 이뤄진 프랑스 출장에서 루브르박물관, 베르사이유 궁전, 모네의집, 몽생미셸 수도원, 파리 생제르맹 스타디움 등 유명 관광지를 방문했다. 청주시의회 제공


청주시의회 관계자는 심사 과정에서 나온 지적이 반영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당시 일정 변경을 위해 알아봤지만, 소도시의 경우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었다”며 “작년에 지적받은 사항은 올해 보완해 반영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해외출장 심사에서 ‘의원들의 친목 도모’라는 명분이 수용되기도 했다. 인천 미추홀구의회는 다음 달 9일부터 7박 9일 일정으로 독일, 스웨덴 출장을 계획하고 있다. 의회 소속 의원 15명 전원과 직원 등을 포함해 21명 규모로, 1억 500만원이 예산으로 소요된다.

지난 2월 열린 심사위원회에서는 한 심사 위원이 “특별히 위원회 별로 안 가고 다 같이 가는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계획 설명을 맡은 의원은 “이번에 처음으로 다 같이 해외를 가는 것”이라며 “저희 15명밖에 안 되는데 협동하는 게 좀 부족할 것 같고 처음이기도 해 한 번에 다 같이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심사는 무리 없이 진행됐다. 심지어 한 심사위원은 “이번에 이런 좋은 기회를 통해서 의원님들과 소통하고 또 서로를 조금 더 알아가고 했으면 한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서 의원님들끼리 좀 친해져서 그러면 조금 더 화합되고 구의회 발전이 더 잘 될 것 같다”고출장을 격려했다. 해당 출장 계획은 참석 위원 7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이 같은 부실 심사 내역이 알려지자 인천평화복지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심사 회의록을 공개하며 “심지어 한 심사위원이 다 같이 가는 이유에 관해 물으니 의원들의 단합을 위해 간다고 밝혔다”며 의원들의 ‘친목 도모’ 단체 출장을 비판했다. 논란 이후 일부 구의원은 출장 일정에 동행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강민 이정헌 김승연 기자 riv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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