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후 첫 외식을 이태원서... 동생이랑 있는 것 같아요"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해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 그간 '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으나, 이제는 실명을 밝히고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김초롱 기자]
▲ 벚꽃이 피는 계절. |
ⓒ PIXABAY |
선생님, 꽃 피는 봄이 왔어요. 모두들 벚꽃 피는 계절이라면서 꽃구경을 가네요. 저에게도 올봄, 벚꽃이 피면 꼭 같이 꽃 보러 가요, 하고 약속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태원 참사로 남동생(고 서형주씨)을 잃은 이현씨였어요. 이현씨를 처음 만난 날은, 올해 초 국회에서였습니다. 생존자 발언을 하러 공청회에 갔던 날, 누군가 많이 울어 빨개진 눈으로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해주었어요. 그 분이 이현씨였습니다.
우리는 그날 이후, 꼭 시간을 내 만나자고 약속을 했고, 저는 그녀에게 '괜찮으시다면 이태원에서 보실까요' 제안했습니다.
이현씨가 깜짝 놀란 것을 모르지 않았어요.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놀랄 수 있다는 것을요. 그래도 그녀가 용기를 내주기를 바랐고 답장을 받았습니다.
'이태원에서 보자는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어요. 그래도 초롱씨랑 가면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다른 게 아니고, 이런 걸 바란 거였어요"
그렇게 저는 유가족과 함께 사건의 그날로 들어가 봤어요. '사건 이후 분향소와 추모제를 방문하기 위해 이태원을 온 적이 있었지만, 직접 이렇게 거닐어 본 것은 처음'이라는 그녀를 데리고 이태원 세계음식거리를 지나던 중, 그녀가 제게 물었습니다. 나와 함께 그날 걸었던 길을 되짚어가며 설명해줄 수 있느냐고요. 마치, 견학처럼.
흔쾌히 알겠다고 했습니다. 유가족으로서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젊은이들의 생각은 무엇인지, 어떤 마음으로 이 거리에 놀러 온 건지, 그 거리에서 어떻게 돌아다녔으며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날의 진실이 궁금하다고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 내 가족의 마지막 모습을 그렇게라도 유추하고 이해해보고 싶어서, 1분 1초를 다 맞춰서 꿰어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면 아실까요.
이현씨의 남동생의 마지막 사진이 찍힌 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현씨에게 설명했어요.
"이곳은 참사 현장과 반대편인 곳이에요, 4번출구 쪽. 여기 골목에서 아마 밥을 먹은 것 같아요. 여기가 식당이 많거든요, 밥 될만한 것들이 있는 거리라서요. 그러고나서 길 건너 1번출구 쪽 사람들이 많이 올라가는 저 길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나봐요. 여기서 저 길까지 가는 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을 거예요.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되는 거리예요."
"이 뒷길은, 제가 참사 당일 녹사평역에서 이태원 세계음식거리로 걸어갔던 길이에요. 여기서부터 저랑 걸으실까요? 그날도 사람이 많았어요. 특히 녹사평 쪽은 외국인 가족들이 많았고, 이태원으로 넘어오면서 한국 젊은이들이 많아지던 모양새였고요.
▲ 조계종 노동사회위원회가 지난 10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을 방문해 헌화하며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
ⓒ 권우성 |
"이렇게 쭉 직진하다 보면, 유명한 라운지 펍, 클럽들이 있는 메인 공간이 나오는데요. 모두들 '이태원에 왔으니 그쪽으로 한번 가자' 하는 유명한 곳들이에요. 그 앞이 참사가 일어난 그 지점입니다. 지금 걷고 있는 길 끝에, 모두 위치해 있어요.
(도착해서) 이 클럽이 아까 말한 그 클럽이고, 그 옆은 라운지바, 아까 말했던 그곳이요. 그리고 여기를 진입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사람이 확 몰리는 느낌이었고요. 제가 서 있던 곳은 이쯤이었습니다. 그냥 모두들 같은 마음일 거예요. 자주 놀러 가던 곳들이었고,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은 마음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할 겸 온 거였어요.
남동생분도 그랬을 겁니다. 특히, 지방에서 올라와서 서울의 이런 풍경들이 얼마나 신기하고,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었겠어요. 남동생분은 참사 전날도 이태원에 구경을 나왔다고 하셨잖아요. 전날에도 본 곳인데 너무 재밌었나봐요. 혼자라도 또 구경가야지 하는 마음이었을 거예요. 저와 이 참사 장소로 들어오는 진입로 방향이 달랐을 뿐이었어요. 저는 반대 골목에서 현장으로 진입을, 남동생분은 곧장 1번출구 골목의 참사 현장으로 바로 진입했던 것 같아요."
이현씨를 모시고 이태원의 문화를 설명했습니다. 또 어떤 집이 어떤 이유로 유명한지, 이 길에 왜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지 세세하게 말했습니다. 그걸 듣던 이현씨가 이런 이야기를 하던 게 생각납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어서 정부에 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한 건 다른 게 아니고, 이런 거였어요. 초롱씨처럼 이렇게 옆에서 서서, 그날의 상황, 그날의 이야기, 내 가족의 휴대전화 속 사진을 기반으로 이곳에서 아마도 이렇게 진입했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 대충이라도 내 가족의 마지막을 예상할 수 있게요.
아이가 집에서 떠나기 직전에, 나가는 모습이 집 CCTV에 찍혔더라고요. 사람이 그런가봐, 내 가족이 죽으면 그 죽기 직전의 모습 어느 하나라도 수집하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인가봐. CCTV를 보면서 내가 그렇게 말을 걸었어요. 야 이놈의 자식아, 가지마. 뭐가 좋다고 폴짝 폴짝 뛰어서 집을 떠나냐 이눔아."
우리 같은 사람이, 분명히 이 세상에 있다는 것
선생님, 저에게 저의 일상이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시고, 다시 극복하는 것도 보시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지요. 절로 눈물이 나신다고요. 저는 이현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선생님과 같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현씨는 남동생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누나였어요. '올해는 꼭 결혼해야지' 하며, 참사 당일에 수줍게 소개팅을 하고 계셨다고 했어요. 내 남동생이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모르는 남자와 밥을 먹고 하하호호 웃고 떠들며 집에 돌아온 그날 밤, 자신의 소개팅을 무척이나 후회하고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소개팅을 하고 그랬을까. 애가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라는 말 한마디에 제가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저 이현씨도 자신의 일상을 산 것뿐일 텐데요. 소개팅 한 번 한 것이 무슨 그런 큰 잘못이라고 그토록 후회를 하며, 자기혐오를 하며 자신의 일상을 망가지게 하는 것일까요. 이런 게 유가족들의 삶일까요.
이현씨에게 가장 듣기 힘든 말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봤습니다. "떨쳐내야지 어쩌겠어"라는 말이었다고 해요. 참 모질게 들렸다고 했습니다. 말이 쉽지, 그게 그렇게 되는 마음이 아니니까요. 우리 사회는 참, 위로하는 법을 모르는 사회입니다.
이번에는 이현씨에게 어떻게 버티세요, 하고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그냥, 시간이 흐르길 바라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머리를 감고 말리는 것도 귀찮고, 의미 없는 것 같아서 온 머리를 뽀글뽀글 볶아버렸더니, 주위 사람들이 '이제 좀 살만한가 보네' 하고 말을 걸었다고 해요. 어떻게든 의미 없는 것에 에너지를 쓰지 않게 취해버린 행동이, 타인에게는 괜찮아진 것으로 비친 건지, 본인들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인지. 여러모로 아팠다고 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 참석한 회식 자리에서도,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그 속에서 사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어요. 웃는 것에 공감을 하지도 못하겠고, 그래도 나도 살아야겠으니 참석은 했지만, 괴로워 죽겠는 마음. 아직도 출퇴근길 자동차 안에서는 펑펑 울다가 집에 들어가고 회사로 나오는데,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회식에 참석한 사실만으로 '이제 괜찮아졌나 보다' 함부로 이야기를 한다고요. 이현씨는 갑자기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 일상이 무너졌다고 해도, 다시 일으켜 세워드릴 수만 있다면. |
ⓒ unsplash |
남동생이랑 따릉이 타고 잠수교 라이딩을 자주 했다고 말하면서, 작년 봄에 같이 동생이랑 꽃봤다는 이야기를 하던 이현씨에게, "우리 봄에 같이 꽃보러 가요. 저랑 꽃도 보고요, 자전거도 타고요. 그렇게 천천히 원래 하던 것들, 저랑 같이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친구들도 다른 지인들도, 내 마음을 절대 알 수 없을 거라는 마음일 거예요. 그래서 그들과 할 수 없는 일상일 텐데, 제가 같이 해드릴게요. 꼭 같이 해요"라고도 덧붙였어요.
일상이 무너졌다고 해도, 다시 일으켜 세워 드릴 수만 있다면. 선생님, 저는 제가 그거 해드리고 싶네요. 이현씨가 다시 웃고, 차 안에서 혼자 울지 않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그렇게만 된다면, 저에게도 행복일 것 같아요.
이 글을 보고 계실 유가족들에게, 어떻게들 버티고 계세요, 여쭙고 싶습니다.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계시지는 않으신지, 아직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주변의 작은 반응에 마음 아파하고 계신지.
외로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해도, 그 이야기를 다 이해해드릴 수 있는 제가 있어요. 그리고 저와 같은 사람이 반드시, 분명히 우리 세상에는 있어요.
글이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마음이 깊게 전해져서 유가족들 마음에 후시딘처럼 치유제로 발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시간이 지날수록 덜 우시기를. 덜 괴로워하시기를. 덜 아파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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