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1인가구] 호텔에서 쉬는 사진 올리는 친구들, 왜 그런 걸까?
1인 가구 여성들이 혼자 살면서 알게 되는, 새롭게 깨닫고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들에 대해 씁니다. <편집자말>
[정누리 기자]
호캉스를 왔다. 혼자서는 처음이다. 휴식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굳이 10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자취방 원룸에서 호텔 객실로 이동한 것은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호기심이었다.
이전까지 내게 여행은 안에서 밖을 향한 것이었다. 실내에서 야외로, 국내에서 해외로, 일상에서 모험으로. 그런데 요새 SNS를 보니, 여행의 트렌드가 조금 바뀐 것같다. 안에서 안으로 이동한다. 단순히 '여행의 마무리'에 그쳤던 숙박시설이 '여행의 시작점'이 되어 있다.
주말이 되면 친구들은 홀로, 많으면 2~3인이서 호텔에서 쉬는 사진을 올린다. 대체 그들이 어떤 점에서 호캉스를 즐기는지 궁금했다. 오늘밤, 나는 그 비밀을 알기 위해 낯선 곳에서 머무른다.
▲ 호캉스 |
ⓒ 정누리 |
과거의 여행이 '소통'이었다면, 현재의 여행은 '단절'에 가깝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느낀 것은 '내 흔적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본래 살던 자취집이라면 엄두도 못 냈을 새하얀 침구, 몇 번 쓰고 구석에 처박혔을 실내용 슬리퍼, 낯선 섬유유연제 냄새가 나는 전용 가운. 어디에도 내 취향이 반영되어있지 않다.
이곳은 해가 뜨면 모든 것이 리셋된다. 이곳에선 어떤 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완전한 고립을 원치는 않는다. 무인도에 떨어지는 것은 반대로 또다른 책임을 낳는다. 살아야한다는 부담감이 생긴다.
바캉스의 어원인 바카티오(Vacatio)의 뜻이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텅 빈'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청년들은 도심 속의 작은 여백을 원한다. 안전하면서도 고립된 공간. '밀집 속의 공백'. 그것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호텔은 좋은 안식처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기성세대에게는 호캉스가 새로운 '소통'이 될 수 있다. 몇 년 전, 엄마와 함께 호텔로 놀러간 적이 있다. 강남에 있는 일본 계열의 비즈니스 호텔이다. 홋카이도에서 종종 이용하곤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삿포로에서 이용하던 것들이 모두 그대로 있었다. 지하 1층의 사우나, 비즈니스 호텔 특유의 꽉꽉 찬 인테리어, 심지어 조식 메뉴까지.
엄마에겐 그 자체가 여행이었다. 당신은 예전부터 여러 번 일본에 가보고 싶었지만, 여권이 없었다. 비행기 공포증도 있었다. 호텔에서 엄마와 여행 추억을 공유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본 호텔은 이런 소재의 바닥을 쓰는구나. 어머, 여기도 수납 공간이 있네." 주부의 시각에서 보는 호텔은 또 달랐다. 그제야 알았다. 숙박 시설에도 나름의 아이덴티티가 있다. 일종의 작은 나라다. 호캉스는 내게 단절의 공간이었지만, 엄마에겐 소통의 공간이었다.
▲ 조식 |
ⓒ 정누리 |
객실 내 TV를 보며 초밥을 먹어치웠다. 그 후 1층 로비로 내려왔다. 소파에 앉아 사람들을 둘러본다. 다양한 장면이 눈에 띈다. 휴대폰으로 브이로그를 찍는 사람, 친구와 야식을 먹으러 1층 식당에 들어가는 사람, 운동 장비를 들고 지하 헬스장을 가는 사람…. 마치 작은 마을같다.
숙박 시설은 단순히 자는 곳을 넘어 다양한 의미로 분화되고 있다. 자는 곳은 같아도, 그곳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가지각색이다. 친구들이 왜 그리 호캉스를 즐기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렇다면 나에게 호캉스는 어떤 의미였나. 난 나의 일상을 다시 사랑하게 됐다. 아무래도 내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은 일상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까워지는 쪽인 것 같다. 바스락거리는 호텔 침구에 누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 느꼈다.
▲ 호캉스 |
ⓒ 정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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