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산없다'던 삼성전자, 감산카드 왜..."반도체 업황 바닥 봤다"

박해리 2023. 4. 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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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반도체 업황 악화에 삼성전자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96% 가까이 증발하며 1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어닝 쇼크’(실적 충격)를 맞은 삼성전자는 처음으로 메모리 감산을 공식화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뉴스1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96%가량 쪼그라드는 ‘어닝쇼크’(실적충격)를 기록한 삼성전자가 결국 메모리 반도체 감산(減産)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 불황에도 “인위적 감산은 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굳건히 이어오다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업계 1위 삼성전자가 공식적으로 감산을 발표한 것은 2000년대 들어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7일 올해 1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하며 감산을 공식 인정했다. 회사는 이날 설명자료를 통해 “이미 진행 중인 라인 운영 최적화와 엔지니어링 런(시험생산) 비중을 확대하는 것 외에 추가로 공급성이 확보된 제품을 중심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인위적 감산없다→기술적감산→감산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이어온 메모리 반도체 불황에도 꿋꿋하게 감산 카드를 꺼내지 않고 있었다. 업계 2위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내년에는 투자 규모를 올해보다 50% 이상 감축한다. 웨이퍼(반도체 원판) 캐파(생산능력) 투자도 최소화한다”고 선언했다. 3위인 미국 마이크론도 지난해 이미 설비투자와 생산량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단기적 수급을 위한 인위적 감산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올해 초부터 기류는 조금씩 변했다. 지난 1월 31일 4분기 컨퍼런스콜에서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생산라인 유지보수 강화와 설비 재배치 등을 진행하고 미래 선단 노드로의 전환을 효율적으로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당장 웨이퍼 투입량을 줄이진 않지만, 라인 효율화를 통해 출하량을 조절하는 기술적인 감산은 있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이번 발표에서는 이러한 기술적 감산 비중을 확대하는 것에 더해 웨이퍼 투입량까지 줄이는 인위적 감산도 최근에 시작했음을 공식화했다.

삼성전자가 외부에 감산을 발표했던 건 1990년대 말이 마지막이었다. 1998년 9월 4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7~9월 매달 일주일간 기흥 메모리공장 가동을 일시중단했다. 당시 공급과잉으로 D램 가격이 연일 떨어진 영향으로 삼성전자뿐 아니라 국내 메모리 반도체 3사였던 현대전자와 LG반도체도 매달 감산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후 일본·대만업체를 중심으로 치킨게임을 벌이던 2007~2010년에도 삼성전자는 생산량을 줄인 적이 없었다. 독일 키몬다와 일본 엘피다가 이 과정에서 파산했지만, 업계 1위 삼성전자는 해외업체들과 격차를 확대하며 현재까지 부동의 왕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월17일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사업전략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21세기 들어 첫 감산...“업황 바닥 확인한 것”


이에 삼성전자의 이번 결정은 메모리 반도체 불황의 골이 깊다는 방증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수요가 회복될 만한 요인들이 별로 없다”며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단기적 업황 반전이 힘들다는 내부분석이 있었을 것”이라며 “어느 정도 감산을 통해 출혈을 막자는 판단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감산에 대해 “그동안 안정적인 공급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왔다. 특정 메모리 제품은 향후 수요 변동에 대응 가능한 물량을 확보했다는 판단으로 생산량을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공급 측면에서 생산량에 대해 판단한 것으로 영업이익과 감산이 직접 연관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이번 감산이 향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안정화에 도움을 줄 것이라 분석한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공급량을 크게 늘리지 않아 수급 균형 시점이 앞당겨지고 수요도 더 빨리 개선될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업황 바닥을 확인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반기부터는 살아날 거라는 전망이 더 탄력 받을 것”이라며 “공급 측면 조절은 이뤄졌으니 공은 고객에게 넘어갔다. 고객사 주문이 언제 재개될지에 따라 시장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해리·김수민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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