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가 처음 설법을 한 곳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갠지스 강 인근 가트 변에서 복잡한 골목을 통과해 큰 길로 나옵니다. 버스를 탈 수도, 시간만 맞으면 기차를 탈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쉬운 방법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오토릭샤를 타고 바라나시 교외의 사르나트로 향합니다.
교통체증 속에서 오토릭샤는 거의 한 시간여를 달렸습니다. 사실 달린 시간보다는 서 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그렇게 사르나트에 도착합니다. 제 일정에서는 마지막 불교 성지순례입니다.
▲ 사르나트 유적 |
ⓒ Widerstand |
석가모니는 보드가야에서 걸어서 사르나트로 향합니다. 갠지스 강에서는 강을 건널 뱃삯을 낼 수 없자 날아서 강을 건넜다는 전설도 있죠. 처음에는 석가모니가 타락했다고 생각한 다섯 수행자는 그를 무시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저절로 일어나 석가모니를 모시고 설법을 들었습니다.
▲ 다섯 제자가 석가모니를 만난 곳에 세워진 영불탑 |
ⓒ Widerstand |
한국 불교에서는 여름과 겨울에 스님들이 하안거와 동안거에 들죠. 이 전통은 석가모니 당대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원래 당시의 출가 수행자들은 특별한 거처 없이 각지를 유랑했습니다. 그러다 이동이 어려운 우기가 되면 한 곳에서 몇 달 정도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 vassa)'라고 합니다.
▲ 사르나트 양식의 불상 |
ⓒ Widerstand |
사르나트 석주의 상단부를 장식한 동물 장식 역시 아주 유명하죠. 아쇼카 왕이 사르나트에 세웠다는 석주 위에 장식되어 있던 조각품입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네 마리의 사자가 있고, 그 위에 법륜이 올라가 있는 형태죠. 아쇼카 왕의 석주도, 그 위에 있던 동물 장식도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지만 사르나트에서 발견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금으로 재현한 사르나트 석주 |
ⓒ Widerstand |
하지만 사르나트에서 만들어진 불상은 살아남았습니다. 생명력을 갖고 각지에 확산됐죠. 후대에도 석가모니를 묘사한 불상은 처음 설법하는 순간을 묘사한 경우가 많습니다. '초전법륜인'이라 부르는 독특한 손 모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죠.
▲ 초전법륜인 |
ⓒ Widerstand |
불교 성지에서는 여러 국적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불교를 믿는 순례객일 수도 있겠지만, 아닐 수도 있겠죠. 외국인보다 훨씬 많았던 인도인들이, 모두 불교 신도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은 교외에 있는 일종의 역사유적을 찾아온 것 뿐이었을 테죠.
아니면 다른 종교의 순례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불교의 성지는 남아시아 다른 종교의 성지와 겹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드가야 인근에는 비슈누 신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는 힌두교 성지가 있습니다. 4대 성지는 아니지만, 8대 성지에 드는 라즈기르는 사실 불교 성지보다는 자이나교의 성지로 유명하죠. 사르나트 역시 자이나교의 성지입니다.
▲ 공사 중이던 사르나트의 사원 |
ⓒ Widerstand |
저는 이러나 저러나 불신자입니다. 불교뿐 아니라 다른 어떤 종교를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전투적인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종교를 가질 수 있는 성격의 사람은 또 아닙니다. 불신자인 저는 당연히 성지에서 어떤 성스러움을 느끼거나, 종교적 체험을 하진 못했습니다.
▲ 사르나트 유적 |
ⓒ Widerstand |
저는 여전히 사르나트의 사원을 쌓아올렸던 한 장 한 장의 벽돌을 인상 깊게 기억합니다. 그 벽돌이 입체감을 갖고 제 눈 앞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부처님의 가르침도, 사원을 쌓은 벽돌도, 현실에 존재하는 실체였습니다. 시간도 공간도 초월해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허울 뿐인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야 저는 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역시 그들의 현실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것을 우리의 현실 위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힘은 무엇이고, 이제는 잊혀져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불신자다운 생각을 하며, 사르나트의 푸른 잔디를 바라보고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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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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