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몰린 전북과 삼성, '응원 보이콧' 굴욕도
[이준목 기자]
2023시즌 전북과 수원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추락하는 성적에 민심도 등을 돌렸다.
수원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K리그 판도를 뒤흔들었던 강팀이었고, 그 뒤를 이은 전북은 2000년대 후반부터 2020년 초반까지 절대강자의 자리를 유지하며 초유의 리그 5연패를 차지했던 왕조였다. 전성기에는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보유하며 성적과 재미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고, 팬덤 역시 K리그에서 가장 두텁고 충성심이 강하기로 소문난 인기 구단들이었다.
하지만 두 구단은 올시즌 약속이나 한 듯 나란히 시즌 초반부터 위기에 몰려있다. 우승후보로 평가받았던 전북은 개막 후 5라운드까지 1승 1무 3패로 8위(승점 4)에 그치고 있다.
지난 시즌 리그 6연패가 좌절된 전북은 절치부심하며 이동준, 정태욱, 아마노 준, 하파 실바 등을 영입하고 조규성까지 잔류시키며 승부수를 띄웠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과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디펜딩챔피언이자 라이벌 울산 현대가 개막 5연승으로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도 초반 독주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수원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5경기에서 2무 3패로 아직까지 첫 승도 거두지 못했다. 승점 2점으로 K리그1 12개구단 중 최하위 제주에게는 다득점 1골차로 겨우 앞선 11위에 그치고 있다.
최근 두 팀은 부진한 성적에 실망한 홈팬들로부터 잇달아 '응원 보이콧'을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K리그에서도 열성적이기로 소문난 전북과 수원 팬들은, 홈구장에서 구단의 운영과 감독-프런트를 성토하는 비판 걸개를 내거는가 하면, 경기 후에는 버스 가로막기에 이어 감독 퇴진을 외치며 집단행동으로 분노를 드러냈다.
최근 비난의 초점은 자연히 사령탑의 거취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김상식 전북 감독과 이병근 수원 감독은 벌써부터 나란히 올시즌 K리그1 1호로 경질 혹은 사임하는 사령탑이 될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두 감독이 선수 시절부터 구단을 대표하는 레전드였다는 사실이다. 이병근 감독은 1996년 수원의 창단멤버로서 1998-99시즌 K리그 2연패, 99시즌 국내 대회 전관왕, 2001-02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2연패 등 수원의 전성기에 크게 기여한 주전 수비수였다.
김상식 감독은 30대가 넘어 선수생활 후반기에 합류한 전북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선수-코치-감독으로 한 팀에서 전북이 기록한 모든 우승을 함께한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가히 최강희 전 감독-이동국(은퇴)과 더불어 전북을 대표하는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상식 감독은 전북 사령탑 부임 이후 리그 우승-준우승 1회, FA컵 우승 1회를 기록하며 표면적으로는 성적이 결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부임 이후 전임 감독들 시절에 구축한 전북 특유의 '공격축구'가 점점 사라지고 결과와 내용 모두 놓치고 있다는 점에서 팬들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여기에 선수 혹사와 전술 부재, 잦은 인터뷰 설화, 팬들과의 갈등이 반복되며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
특히 김상식 감독과 전북 팬들의 관계는 현재 사상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장면이 지난 4월 1일 포항전(1-2) 역전패 이후, 팬들과의 대치 사태였다. 팬들은 성적부진에 대한 김 감독의 해명과 사퇴를 요구하며 경기장을 빠져나가려는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고 시위를 벌였다. 김 감독이 이에 바로 응하지 않으면서 대치상태는 무려 2시간 넘게 지속됐다.
결국 마지못해 김 감독이 팬들 앞에 뒤늦게 나섰지만. 이미 감정의 골이 상할대로 상한 양측은 서로 날선 대화만 주고받으며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했다. 김 감독은 "팬들을 항상 존중했다. 감독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전북 팬들은 김 감독의 무성의한 태도를 꼬집으며 "팬에 대한 미안함이나 소통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김 감독과 함께 사퇴 압박을 받고있는 허병길 전북 대표이사는 지난 3일 공식 홈페이지와 SNS 등을 통하여 성적부진에 대한 사과문을 올리며 팬심 달래기에 나섰다. 하지만 김 감독은 별다른 언급없이 침묵을 지켰다.
이병근 감독은 지난해 부임 첫 시즌부터 정규리그 10위에 그쳐 승강 플레이오프(PO)까지 떨어지는 굴욕을 당한 바 있다. 간신히 잔류에 성공하며 기사회생했지만 명가를 자부하던 수원 팬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비시즌에는 주포인 오현규(셀틱)가 유럽으로 떠나면서 그 공백을 메우지 못했고 초반부터 하위권으로 추락하면서 팬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 수원은 최근 2경기 연속으로 팬들에게 '버스 막기'를 당하기도 했다
그나마 이병근 감독은 똑같은 상황에 처하고도 김상식 감독에 비하면 발빠른 사과와 부드러운 대응으로 팬들과의 충돌이 더 악화되는 사태는 피했다. 수원의 경우, 이미 이 감독이 부임하기 전부터 투자 부족으로 4시즌 동안 6→8→8→6위에 그칠만큼 하락세가 뚜렷했다는 점에서 최근의 부진이 이 감독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동정론도 일부 존재한다. 그러나 부임 1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색깔없는 전술-높은 주전 의존도 등에서 이병근 감독의 리더십 역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사실 이 사태의 본질은 현재 구단 운영을 둘러싼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전북과 수원 팬들은 이구동성으로 구단이 몇 년 째 팬들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비판한다. 문제는 그 비난의 화살이 현장 최전선에 있는 감독에게만 지나치게 집중되는 분위기라는 데 있다.
구단이 전면에 나서서 적절하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감독 뒤에만 숨어서 무책임하고 소극적인 행보로 일관하다 보니,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일부 강성 팬덤을 위주로 무분별한 집단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는 언제든 자칫 더 큰 사건사고로 이어질 위험성도 높다.
축구팬들은 이번 주말 두 팀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수원은 8일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최강 울산을 원정에서 상대해야 한다. 전북은 하루 뒤인 9일 홈으로7위 인천을 불러들인다. 사면초가에 몰려있는 두 팀이 이번에도 결과와 내용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예측하기 힘들다. 어쩌면 김상식과 이병근, 두 감독의 운명이 조기에 결정될 '단두대 매치'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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