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하고 일부러 전학 가고... 이게 대입전략이라니 [아이들은 나의 스승]

서부원 2023. 4. 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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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경쟁 내몰리는 아이들... 누가 돌 던질 수 있나

[서부원 기자]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통지일인 2021년 12월 10일 한 고등학교3학년 학생들이 성적표를 받은 후 확인하고 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친구가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고 싶어요. 정원 미달 학교라 학기 중이라도 신청만 하면 갈 수 있다고 들었어요." 

이쯤 되면 백약이 무효일 성싶다. 어떻게든 상위권 대학으로 '간판'을 바꿔 달려는 아이들의 자퇴와 전학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몇몇 최상위권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너도나도 주판알 튕기며 가능성을 타진한다. 전염성이 상당히 강한 현상이다.

중학교 때 성적이 자기보다 뒤처졌던 친구가 고등학교의 내신 등급은 자기보다 높다는 사실에 약간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배정된 학교에 따라 내신 성적이 달라질 수 있는 현재의 시스템을 아이들은 '복불복'이라고 표현했다. 전학이 대학 진학의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모양새다.

오로지 내신 등급을 올리기 위해 관내 외곽은 물론, 다른 지역 학교로의 전학까지 불사하고 있다. 기숙사 시설이 갖춰진 학교라면 두말할 나위 없고, 두어 시간의 등하교 시간도 문제 없다고 한다. 같은 점수라도 등급을 올릴 수 있는 학교라면, 나머지는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다.

최상위권은 자퇴 결행, 상위권은 전학 타진

특별한 사정이 아닌 한 관내 일반고에서 다른 일반고로의 전학은 규정상 불가하다. 그러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지역마다 모집 기간을 달리하는 이른바 '특수지 학교'가 있고, 통상 지원한 학교에서 탈락한 아이들을 수용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특성화고가 아닌 일반고에 가려는 최하위권 아이들의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학령인구의 감소까지 겹쳐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라, 해당 학교에선 학기 중에도 전학을 허용하고 있다. 이곳 광주광역시의 경우,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몇몇 아이들은 학교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민망해하던 곳이었는데, 내신 등급이 대입의 결과를 좌우하게 되자 어느새 상위권 아이들이 눈길을 주는 학교가 됐다. 애초 중3 때 '특수지 학교'를 지망하는 아이도 드물지 않다.

참고로, 고교 평준화 지역의 경우 근거리 강제 배정 원칙이 적용되지만 학생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여러 배수로 지망 학교를 사전 선택케 한다. 선호하는 학교가 비슷해 1지망에 적은 대로 배정되는 경우도 드물지만, 그렇다고 지망하지 않은 학교에 배정되는 일도 없다. '특수지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최상위권은 내신 1등급을 위해 자퇴를 결행하고, 상위권조차 '공부 못하는' 학교를 찾아 전학 가는 현실은 예전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내신 성적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학생부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이 가져온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은 한두 번 교내 시험에서 미끄러지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선선히 말하곤 한다.

뒤처진 내신 등급을 만회하는 방법은 성적을 '리셋'하거나 정시를 준비하는 것뿐이다. 자퇴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라면, 전학은 상위권 아이들이 어렵지 않게 최상위권으로 올라설 수 있는 유용한 대안으로 여겨진다. 요즘 들어서는 중위권 아이들조차 이런 행태에 부화뇌동하는 모습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들은 학교의 다양한 비교과 활동도 별 의미가 없다고 일축했다. 적어도 같은 일반고 사이에선 학생부의 기록이 큰 힘을 발휘하긴 힘들다는 거다. 서울 지역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려면 무조건 내신 등급이 높아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내신 등급이 우선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비교과 활동 기록이 풍부해도 그 내용을 인정받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일반고 아이들의 도토리 키재기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해 11월17일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도교육청 제32지구 제5시험장 효자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전광판의 문자 응원을 받으며 고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비교과 활동 기록은 특목고나 자사고 아이들을 선발하기 위한 장치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알다시피, 학교 간 성적 격차를 대입에 반영하지 못하도록 제출되는 학생부에 지역명과 학교명을 가리고 있다. 그뿐 아니라, 항목별 내용을 기재할 때도 지역명은 쓰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대학의 고등학교 간 차별을 최소화하기 위한 교육 당국의 고육지책이다.

정확히는,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에 대한 암묵적인 우대를 막아보려는 취지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는 법, 대학에선 고등학교의 교육과정과 3년 동안 이수한 과목만 보면, 해당 학교가 어디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지역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일반고의 학생부와 특목고, 자사고의 학생부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만큼 확연한 차이가 있다.

대한민국이 출신 학교와 거주지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신분 사회로 변모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아래에서 대다수 일반고 아이들이 '도토리 키재기'식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꼴이다.

출신 학교·거주지 따라 대학 진학마저 결정되는 현실

학교 이름을 감추는 걸 두고 아이들조차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라고 조롱하는 이유다.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항목별로 기록하면서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임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방법은 차고도 넘친다. 이게 어디 학생부만의 문제일까 마는, 이런 어설픈 지침만으로 난무하는 온갖 편법을 제어하는 건 불가능하다.

요컨대, 낮은 내신 등급을 만회할 수 있는 학생부 기록은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 아이들에게 해당할 뿐이다. 지난해 한 명문대의 인기 학과 합격생 중에 특정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이 광역자치단체의 일반고 전체 졸업생을 더한 합격생 숫자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이는 비단 명문대의 특정 한두 학과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서울대의 경우, 해마다 신입생의 절반가량이 특목고, 자사고 출신과 서울 강남 지역 일반고 졸업생으로 알려져있다. 거칠게 말해서, 대한민국이 출신 학교와 거주지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신분 사회로 변모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아래에서 대다수 일반고 아이들이 '도토리 키재기'식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꼴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특목고, 자사고 등에 진학하지 못한 아이들은 일반고 입학과 동시에 내신 성적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일반고의 본격적인 대입 수험생활은 고1 때부터다. 공통과목 중심인 고1 때의 내신 성적이 대학의 '간판'을 결정한다는 건 이미 상식이 됐다. 고1 때의 뒤처진 내신 성적을 고2와 고3 때 만회할 수 있다고 믿는 아이는 없다. 

대부분의 일반고에서 고2와 고3 때는 개별 선택과목 중심인 데다 내신 등급을 환산하지 않는 진로 과목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 내신 성적의 부담을 줄이고 수능 준비에 최선을 다하라는 학교 차원의 배려다. 동시에 이는, 내신 성적만 반영하는 학생부교과전형과 내신 성적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학생부종합전형은 이미 판가름이 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근래엔 한술 더 떠 대학의 '간판'이 중3 때 이미 결정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심지어 중1 때 성적이 고3 때까지 그대로 이어진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고1은 대입 수험생활의 시작이 아니라, 도전의 마지막 기회일 뿐이라는 이야기도 공공연하다.

희망 대학의 '간판'을 낮춰 잡는다면 모를까, 고1 때 내신 등급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지금껏 남은 선택지는 정시 아니면 자퇴, 이 둘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중상위권 아이들을 위해 '공부 못하는' 학교로의 전학이라는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참 부박한 교육 현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통지일인 2021년 12월 10일 경남 창원시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이 성적표를 받은 후 확인하는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지금 지방의 일반고에서는 맹목적인 내신 경쟁이 불붙었다. 오로지 내신 등급을 올리기 위해 의도적인 유급과 전학이 횡행하고 있다. 법적으로 문제 될 건 없다지만, 인생의 황금기라는 아이들의 고등학교 학창 시절은 만신창이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등급을 놓고 피 말리는 경쟁을 이어가야 하는 마당에 학창 시절이라는 말조차 남우세스럽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다시 친구를 사귀는 건 무척 부담스러운 일일 거다. 신중하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말에 학생은 이렇게 답한다. 

"어차피 고등학교 3년은 대입을 위한 전쟁터고, 어느 학교에 있든 대입에 보탬이 되는 친구가 아니라면 서로에게 짐만 될 뿐이죠. 친구는 대학에 가서 사귀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짜고짜 전학을 가겠다는 아이를 설득하려다 되레 면박만 당했다. 그는 대입으로 고등학교 생활 3년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선선히 말했다. 명색이 인문계 고등학생인데 대입 말고 다른 곳에 한눈을 팔 시간이 어디 있느냐며 되묻기도 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조차 대학에 가서 해도 늦지 않다는 말도 했다.

낯설다 못해 당혹스러운 아이의 답변에 할 말을 잃었다. 수능이 도입되기도 전인 30여 년 전 나의 학창 시절, 그 때도 온존한 학벌 구조에다 점수 경쟁도 치열했지만 지금의 이 정도는 아니었다.

자퇴와 전학조차 대입 전략으로 활용하게 되는 부박한 교육 현실 앞에 교사로서 자괴감이 든다. 동시에 이렇게 돼 가는 아이들을 향해 누가 자신있게 돌을 던질 수 있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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