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대법원의 법률 해석 문제삼은 위헌심판제청 '각하'
대법, 법관의 불법행위 성립에 가중된 요건 제시
헌재 "규범통제 범위 벗어나" 판단
대법원처럼 법률을 해석할 경우 해당 법률 조항은 위헌이라는 취지로 제청된 위헌법률심판이 헌법재판소에서 각하됐다.
대법원의 법률 해석은 구체적인 개별 사건에서 법률에 대한 해석기준을 제시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법률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청구로 볼 수 없다는 이유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서울중앙지법 민사211단독 서영효 부장판사가 제청한 국가배상법 제2조 1항 본문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재판관 5(각하)대 4(기각)의 의견으로 최근 각하했다.
각하는 헌법재판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본안에 대한 심리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절차다.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한 전상화 변호사는 과거 자신이 수임한 소송에서 1심 재판부가 법률 적용을 잘못해 패소 판결하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며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그리고 1심 재판 도중 재판부에 국가배상법 제2조 1항 본문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전 변호사는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며 '대법원이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와 관련해 고의·과실에 따른 불법행위로 인한 국가의 배상책임을 판단할 때 다른 공무원과 달리 가중된 요건을 포함시키는 것은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국가배상법 제2조 1항은 공무원이나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 직무 집행 과정에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그 손해를 배상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법관의 재판과 관련된 국가배상책임이 문제가 된 사건에서 국가배상법상의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라는 요건의 충족 여부를 따질 때 '당해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했다거나 법이 법관의 직무수행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는 등 법관이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했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를 판단기준으로 여러 차례 제시한 바 있다.
전 변호사는 이처럼 판사에 대해서만 가중된 요건이 필요한 것처럼 국가배상법을 해석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에 반해 다른 공무원들과 차별적 취급을 하는 것이고, 그 같은 대법원의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해당 법률조항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그리고 전 변호사의 위헌제청 신청을 받은 재판부도 해당 조항에 그와 같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 헌재에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재판부는 헌재에 위헌심판을 제청하면서 "대법원은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 정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과 관련해 일반 공무원의 직무집행과 달리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에 대해서만 '위법 부당한 목적' 또는 '현저한 기준위반' 등의 가중된 요건이 요구된다고 일관되게 해석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국민의 헌법상 국가배상청구권을 지나치게 축소했다"라며 "이러한 법률 해석은 일반 공무원의 직무집행과 비교해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에만 일종의 특전을 부여하는 것이므로 평등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제청 이유를 밝혔다.
헌재에서는 전 변호사가 문제삼은 국가배상법 제2조 1항 본문의 위헌성, 즉 해당 조항이 평등원칙이나 명확성 원칙에 반해 위헌인지 여부에 대한 본안심리까지 가지 못하고 헌법소송 요건에 관한 본안 전 심사에서 걸러졌다. 9명의 헌법재판관 중 다수인 5명의 재판관이 이번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법률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위헌법률심판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각하' 의견을 낸 5명의 재판관은 이번 사건의 심판대상을 "국가배상법 제2조 1항 본문 중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부분에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의 경우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 '현저한 기준 위반' 등 가중된 요건을 포함시키는 것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제청법원은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경우 대법원이 해석을 통해 이 사건 법률조항에 없는 요건인 '위법 부당한 목적' 또는 '현저한 기준위반' 등의 가중된 요건을 창설함으로써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이 구체화됐다고 주장한다"라며 "그러나 이 사건 법률조항은 법관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으로 그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를 다른 공무원의 직무행위와 달리 취급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만 대법원은 공무원의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인정 여부가 문제된 구체적 사안에서 해당 직무행위의 내용과 양태, 특수성 등을 고려해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 정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 해당 여부의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라며 "법관의 오판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인정 여부가 문제된 사안 등 각각의 사안에서 구체적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 변호사나 위헌심판을 제청한 법원은 대법원의 일관된 법률해석에 따를 경우 해당 조항이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대법원의 판결로 법률 조항의 성립요건이 가중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취지다.
결국 다수 재판관은 "이처럼 제청법원이 위헌 여부를 다투는 내용은 대법원이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인정 여부가 문제된 사안에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인 고의 또는 과실 및 법령 위반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한 것일 뿐 이로써 새로운 성립요건이 가중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국 제청법원이 다투는 내용은 규범 자체에 대한 위헌 주장으로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위헌법률심판제청은 현행 규범통제제도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번 사건은 헌재가 과거 위헌 결정의 주문 형태 중 하나로 채택했던 법률에 대한 '한정위헌' 결정과 관련이 있다.
'한정위헌' 결정이란 어떤 법률 조항에 대해 '~로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는 형태로 내리는 결정을 말한다. 헌재는 출범 초기 이와 같은 형태의 위헌결정을 다수 내린 바 있다. 헌재는 법률 전체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는 만큼, 양적인 일부 위헌이나, 특정 적용 사례에 대해 위헌성을 인정하는 질적 일부 위헌 결정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와 같은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위헌 결정의 일종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두 기관은 극할 갈등을 빚은 바 있다. 대법원이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배척한 것은 법률에 대한 최종 해석기관은 대법원이기 때문에 헌재가 법률에 대한 대법원의 해석에 관여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헌재는 언젠가부터 이와 같은 한정위헌 결정 주문을 내지 않았다.
결국 이번 사건에서의 헌재 법정의견(각하)은 제청법원의 제청 취지가 법률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으로 볼 수 없고, 대법원의 법률에 대한 해석을 문제삼으며 한정위헌 결정을 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헌재의 규범통제 권한 밖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반면, 4명의 헌법재판관은 다수의견과 달리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적법하지만, 헌법에 위반되지는 않는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이선애·이은애·이종석 3명의 재판관 등은 이번 사건의 심판대상이 다수의견과 달리 국가배상법 제2조1항 본문 중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부분이기 때문에 법원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적법하며, 본안판단을 해야 한다고 봤다.
3명의 재판관은 "제청법원은 한정위헌을 구하는 형식으로 이 사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으나 그 전체적 내용을 보면 국가배상법 제2조 1항 본문 중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부분이 명확성원칙과 평등원칙에 위배돼 헌법에 위반된다는 취지로서 법률조항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 재판관은 "심판대상조항이 지나치게 불명확해 법 집행기관의 자의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법률조항이라거나, 수범자의 예측가능성을 해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심판대상조항은 명확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심판대상조항은 법관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으로 그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 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결국 입법자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같게 취급한 것으로 차별취급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마지막으로 문형배 재판관은 "나는 법정의견과는 달리 이 사건 심판대상을 국가배상법 제2조 1항 본문 중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에 관한 부분으로 봐야 하고 이 사건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적법한 한정위헌 청구에 해당하므로 본안판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적법한 청구라고 판단했다. 다만 문 재판관은 해당 조항이 평등원칙에 반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한편 문 재판관은 이번 결정에서 한정위헌 청구에 대한 입장을 상세하게 밝혔다.
그는 "종래 헌법재판소는 한정위헌 청구는 원칙적으로 부적법하고 다만 ①법률조항 자체의 불명확성을 다투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 ②심판대상규정에 대한 일정한 해석이 상당기간에 걸쳐 형성·집적돼 법원의 해석에 의해 구체화된 심판대상규정이 위헌성을 지닌 경우 ③위 두 가지 경우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법률조항 자체에 대한 위헌의 다툼으로 볼 수 있는 경우 등 3가지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적법한 청구로 보았다"고 전제했다.
이어 "이후 헌법재판소는 한정위헌 청구의 적법성에 관한 종래의 선례를 변경해 구체적 규범통제절차에서 제청법원이나 헌법소원청구인이 심판대상 법률조항의 특정한 해석이나 적용부분의 위헌성을 주장하는 한정위헌 청구 역시 원칙적으로 적법하다고 결정했다"라며 "이에 따르면 법률조항에 포함돼 있는 사회적 생활관계로부터 추출해 구획할 수 있는 일정한 규범영역의 위헌성을 지적하면서 그 제거를 구하는 유형의 한정위헌 청구 즉 변경 전 선례에서 말하는 두 번째 유형의 한정위헌 청구는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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