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원의 시대...구조조정 파고 속 '잔인한 봄'
미국 서부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감원 바람이 미 동부 월가를 거쳐 유럽까지 번지고 있다. 파산 문턱까지 갔다가 경쟁사에 인수되며 기사회생한 크레디스위스(CS)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감원 태풍이 불어오고 있다.
미 블룸버그 통신은 4일(현지시간) 스위스 현지 언론을 인용해 스위스 1위 은행 UBS가 최근 인수한 CS 직을 최대 30%가량 해고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스위스에서 1만1000명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최대 3만6000명의 직원이 해고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6개월 새 인력 감축을 단행한 전 세계 기업 중 단일 기업으론 최대 규모라고 이 통신은 전했다.
CS를 인수한 UBS는 사실상 기업해체 수준의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UBS는 인수 발표 당시 이후 CS의 IB 부문을 축소할 계획이며 인력 감축에 대해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혔으나 이후 랄프 하머스 UBS 최고경영자(CEO)가 합병을 통한 비용 절감분 80억달러(약 10조5000억원) 중 60억달러(약 7조9000억원)가 인력 부문에서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감원 태풍의 진원지는 빅테크
블룸버그 뉴스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6개월간 전 세계적으로 해고된 인력은 약 53만8000명에 달한다. 이 중 UBS에 이어 가장 많은 인력을 내보낸 기업은 미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3만명), 미 소셜미디어 기업 메타(2만1000명), 아일랜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경영 컨설팅 기업 액센추어(1만9000명), 구글 모기업 알파벳(1만2240명), 페덱스(1만2000명), 마이크로소프트(1만1120명) 등 빅테크 기업에 집중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급격히 사세를 팽창했던 빅테크는 지난해부터 고강도의 인력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다. 불확실한 경제 전망 속에서 비용 절감과 수익 방어를 위해 수십만명의 일자리를 줄여온 것이다.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미 빅테크 중 유일하게 감원 태풍에서 비켜나 있던 애플마저도 최근 일부 팀을 감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는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애플이 기업 소매팀 내 일부 자리를 없애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은 애플이 전 세계 소매점과 시설 건설 및 유지를 담당하는 '개발 보존 팀'이라 불리는 팀 내 자리를 줄이고 있다면서 이번 감원으로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없어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애플은 이번 조치를 해고가 아닌 효율성을 높이는 차원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이 직원들을 해고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자율주행 자동차 관련 부서 직원 수백명을 감축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경기 침체 덮친 소매·제조업
빅테크 등 일부 기술 기업에서 시작된 감원 물결이 소매업체와 제조업체 등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미 소매업의 상징인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날드도 최근 감원 대열에 합류했다. 맥도날드가 이번 감원에서 얼마나 많은 인원을 해고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맥도날드는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에 따른 원료비 상승분을 만회하면서 지난 분기 매출과 이익 모두 성장세를 보였으나, 금리 인상 등 거시경제 악화와 이익률 하락 압력에 대응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지난 1월 정리해고 방침을 공식화한 맥도날드는 미국 소비자들이 매장 방문을 줄이고 있고, 일부 매장에서는 객단가가 낮아지고 있다며 매출 부진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반면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폭등의 영향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에너지 기업은 감원 회오리의 영향에서 비켜났다.
미국의 3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6.3으로 2020년 5월 이후 3년 만에 최악의 수치를 기록하는 등 미 제조업 위축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외신들은 신규 주문이 급감하면서 3월 미 제조업 활동이 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고금리로 자금 조달 비용이 커지면서 기업 활동도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유가 급등 가능성도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며 제조업 경기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 간 협의체인 OPEC 플러스는 내달부터 대규모 감산에 돌입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한 이번 감산 결정은 앞서 지난해 10월 발표한 총 200만 배럴 규모의 감산 결정과는 별도로, 총 감산 규모는 일일 166만 배럴(bpd)에 이른다. 유가 급등은 최근 둔화 조짐을 보여온 인플레이션을 다시 끌어올려 미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상 경로 강화를 촉발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높아지고 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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