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도착한 아이들... 울지 않고 씩씩하게, 엄마들의 인사
[이학후 기자]
▲ <장기자랑> 영화 포스터 |
ⓒ 영화사 연필 |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하며 수학여행을 떠나던 단원고등학교 학생 250명을 포함한 총 304명이 숨진 세월호 참사가 올해로 9주기를 맞이한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촉구하거나 추모하기 위해 많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다이빙벨>(2014), <업사이드 다운>(2015), <나쁜 나라>(2015), <그날, 바다>(2018), <부재의 기억>(2018), <당신의 사월>(2019)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4월 16일의 기억과 진실을 되새겼고 극 영화로는 <눈꺼풀>(2016), <생일>(2018), <악질경찰>(2018) 등이 세월호 참사가 낳은 공동체의 트라우마와 마주했다.
이소현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2022)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및 생존자 학생들의 엄마들로 구성된 극단 '노란리본'이 동명의 연극 <장기자랑>을 준비하고 공연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던 할머니와 그 곁을 지키는 손녀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과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할머니의 먼 집>(2015)을 연출한 바 있는 이소현 감독은 2019년 일본 NHK에서 제작하는 세월호 다큐멘터리에 스태프로 참여했는데 인터뷰 과정에서 고통스러운 질문을 너무 많이 한다고 느꼈다고 한다.
이후 이소현 감독은 자원봉사로 '노란리본'의 연극 홍보 영상을 촬영하면서 자신들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토로하는 엄마들을 접하며 그간 매체에서 다루지 않았던 유가족들의 진솔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담아 가까운 이웃으로서, 조금 더 내밀하게 관객과 만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 <장기자랑> 영화의 한 장면 |
ⓒ 영화사 연필 |
<장기자랑>의 특징은 참사와 그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전형성'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와 언론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언제나 식음을 전폐한 채로 슬픔에 빠져 있거나 아니면 투쟁에 나설 것이란 편견을 씌우려고 했다. 혹여 유가족들이 웃기라도 한다면 "애 보내고 나서 뭐가 그렇게 좋아서"라며 손가락질하기 일쑤였다. 그들에게 거대한 족쇄를 채우고 그 속에 있길 강요한 것이다.
<장기자랑>은 '피해자다움', '유가족다움'이란 틀을 깬다.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인 엄마(김명임), 동수 엄마(김도현), 애진 엄마(김순덕), 예진 엄마(박유신), 영만 엄마(이미경), 순범 엄마(최지영), 윤민 엄마(박혜영)는 세상을 떠난 아이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훔치며 아파한다. 반면에 원하는 배역을 맡지 못하자 갈등을 벌이는 촌극도 빚는다. 이렇듯 살아갈 힘을 준 연극을 통해 웃고, 다투고, 성장하는 등 상실의 고통과 새로운 시간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버텨내는 엄마들의 모습은 참으로 근사하다. 그들은 아이들을 위해 울지 않고 씩씩하게, 아이들은 다시는 그 무대에 설 수 없으니까 대신하여 오른다.
엄마들이 준비하는 연극 <장기자랑>은 극단 '노란리본'이 올린 세 번째 작품이자 첫 번째 창작극으로 2014년 안산을 배경으로 글쓰기를 좋아하는 한아영, 아이돌을 꿈꾸는 조가연, 패셔니스타 전지수, 거친 입담의 소유자 지백희, 엉뚱 발랄한 장하늘이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선보일 '장기자랑'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대사 한두 줄로 세월호를 언급했을 정도로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엄마들이 단원고 교복을 입고 연기하거니와 인물 설정엔 '4.16 단원고 약전'과 엄마들의 구술을 반영해 곳곳에 아이들의 흔적이 묻어있다. 연극을 통하여 엄마들은 아이들의 꿈과 사연을 기억하고, 아이들은 엄마를 빌려 다시 태어나는 특별한 추모인 셈이다.
▲ <장기자랑> 영화의 한 장면 |
ⓒ 영화사 연필 |
어느덧 9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세월호 참사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히는 중이다. 참사 이후 희생자 및 생존자 학생들의 엄마들이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살아가는지를 진솔하게 보여준 영화 <장기자랑>은 4월 16일을 기억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연극 <장기자랑> 역시 마찬가지다.
<장기자랑>은 "익숙한 피해자 서사를 넘어 애도와 극복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작품이자 "관객에게 피해자 재현과 애도의 형식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배주연 영화연구가) 작품이기에 값지다. 무엇보다 4월 16일의 기억들, 그리고 아이들이 영화 <장기자랑>, 그리고 연극 <장기자랑>에 영원히 살아 있어 소중하다. 영화를 연출한 이소현 감독과 연극을 연출한 김태현 감독은 정말 의미 있는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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