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냐, 대국민이냐…'北 심리전' 해석 엇갈린 尹 지시

장희준 2023. 4. 7.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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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북한, 불순한 간첩공작…심리전 대응하라"
"올바른 대북관"…통일부, 국민 상대로 심리전
국정원 산하 연구원 "강력한 대북심리전 준비"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의 간첩 공작에 맞대응할 '심리전'을 주문한 것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통일부는 올바른 대북관 정립을 위한 '대국민 심리전' 구상을 밝힌 반면, 전문가들 사이에선 "심리전은 적국을 상대로 한 공작"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6일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의 대응 심리전 지시에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묻는 질문에 "최근 간첩 사건과 같은 북한의 불순한 기도에 우리 국민들이 넘어가지 않도록 심리전 대응을 잘해야 하고, 이를 위해 국민들이 올바른 대북관을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심리전 대상이 우리 국민인지' 재차 묻는 말에 "그렇다"고 답했다.

'北 맞대응' 지시에…통일부 "對국민 심리전 할 것"
윤석열 대통령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재한 제2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최근 수사 결과를 보면 국내 단체들이 북한의 통일전선부 산하 기관들 지시를 받아서 간첩 행위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북한의 통일 업무를 하는 곳에서 그런 일을 한다면, 우리 통일부도 국민이 거기에 넘어가지 않도록 대응 심리전 같은 것들을 잘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의 간첩 공작을 국민에게 알리는 한편, 북한인권 실상 등 대북 압박 요인들을 바탕으로 심리전에 나설 것을 주문한 것으로 읽힌다. 여기서 통일부는 '간첩 행위에 넘어가지 않도록'이라는 내용에 주목하고 심리전 대상을 '국민'으로 해석했다. 올바른 대북관을 정립하는 데 주력, 국민들이 북한의 간첩 활동에 기만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북한인권대사를 지낸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심리전은 기본적으로 외부의 적에 대한 공작을 뜻하는데 통일부가 대내적으로 국민에게 심리전을 하겠다고 말한 건 잘못됐다"며 "통일부 관료들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질타했다. 이어 "통일부가 할 일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대북전단금지법 해석 지침부터 하루빨리 고치는 것"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대북 심리전 수단으로 꼽히는 건 전단 살포와 확성기 가동이다. 윤 대통령이 '북한인권법의 실질적 이행'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고 여당에서 대북전단금지법 폐지를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통령의 '맞대응 심리전' 주문은 위헌성 논란에 휩싸인 대북전단금지법으로 막혀 있는 심리전 수단을 재가동할 방법을 모색하라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 법을 개정하는 것은 여소야대인 국회에선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심리전 수단을 재가동할 방법으로 통일부의 자체적인 해석 지침을 개정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법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 살포 등을 금지하고 있지만, 통일부 지침은 '군사분계선 이남'으로 확대·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침은 사실상 한반도 전역에서 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초법적 해석으로 평가된다.

국정원 산하 연구원 "심리전은 핵무기보다 강하다"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이사장이 5일 연구원이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변화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개최한 2023 NK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국가안보전략연구원]

윤 대통령이 '심리전'을 주문한 날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은 "심리전은 '유일한 대북 우위의 비대칭무기'로 폐쇄된 북한 체제에 대해 핵무기보다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면서 북핵 위협에 대한 상쇄전략으로 심리전을 제시한 바 있다.

연구원은 사단법인 형태로 국정원 산하에 있는 국책연구기관으로, 정부가 요청하는 외교·안보·국방 분야 연구를 수행한다. 연구원 차원에서 수행하는 과제는 국정원이 관심을 가진 전략적 방향성에 기반을 둔다는 뜻이다. 특히 유성옥 이사장은 국정원 심리전단장 출신인 만큼 이번 발언이 대통령의 의지를 간파한 '준비된 발언'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정보 당국에 따르면 그동안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에 더해 내부 분열을 노린 '와해 전략'으로 대남 심리전을 벌여왔다. 최근 불거진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이 대표적 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중앙정보부(중정)-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등으로 이어지는 역사로, 정보기관에 대한 특유의 반감이 있어 미국 등과 달리 정보기관이 적극적 심리전에 나서기 어려운 상태다.

정보 관계자는 "한미 정보 당국이 북한의 내부적인 정보나 무기체계를 세세하게 공개하는 것도 하나의 심리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미는 북한의 주요 도발마다 김정은 정권의 내부 정보를 공개하고 있는데, 지난달 초 국회 정보위원회에선 김정은의 딸 김주애가 승마·스키 등을 즐기며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는 세세한 사실까지 알아내 보고한 바 있다.

한편, 김대중 정부 시절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강인덕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석좌교수는 지난해 12월 발간한 회고록을 통해 "대북 방송과 전단은 강력한 비대칭 전략자산"이라며 "이젠 북한에 대한 적극적 심리전을 전개할 때"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중앙정보부에서 북한정보국장, 심리전국장 등을 거친 대북 심리전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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