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역물관리위원회 건너 뛴 환경부 가뭄 대책…물기본법 절차 무시
환경부가 호남 지역 가뭄 대책을 추진하면서 법에서 정한 절차를 건너뛰고 결정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유역의 물 문제는 기본적으로 해당 유역의 주민 의견에 바탕을 둔다는 이른바 '물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3일 환경부 한화진 장관은 ‘광주‧전남 지역 중장기 가뭄 대책안’을 발표했다.
먼저 장흥 댐과 주암 댐을 도수관로로 잇고, 주암댐 여유 물량을 여수 산업단지에 공급하기 위해 이사천 취수장과 여수산단 사이에 도수로를 건설하고, 주암조절지 댐에서 광양 산단으로 직접 공급하는 비상 시설을 설치하겠다는 내용이다.
함께 발표한 2단계 대책에는 섬진강 물을 추가 취수해 여수‧광양산단에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이런 대책을 관계 기관 협의와 국가 물관리위원회(이하 국가위) 심의·의결해 이달 중에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물관리 기본법에서 정한 절차 어겨
'물관리 기본법' 제24조 제3호에서 '물의 적정 배분을 위한 유역 내 물 이동'을 유역 물관리위원회(이하 유역위)의 심의·의결 사항으로 규정했다.
전국에는 4개 유역위가 있고 그중 하나가 영산강·섬진강 유역위(이사 영섬위)다.
이번 광주·전남 가뭄 대책의 핵심 내용을 이 영섬위에서 심의·의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가위에서는 '물의 적정 배분을 위한 유역 간 물 이동'을 심의·의결하는 것이어서 유역 내 물 이동에 대해 심의·의결할 권한은 없다.
더 큰 문제는 영섬위의 제1기 위원들이 지난해 8월 3년 임기를 마쳤고, 2기 위원회는 다른 유역위와 마찬가지로 아직 구성이 안 됐다는 것이다.
광주환경운동연합 이경희 사무처장은 "위원과 위원장 후보를 오래전에 추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 구성이 안 된 모양"이라고 말했다.
영섬위 지원단 관계자는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이달 내에 영섬위 구성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국가물관리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현재 환경부가 문재인 정부에서 제1기 유역위 위원을 지낸 분들을 다시 위원에 임용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워낙 인재 풀이 좁아 위원 선정이 늦어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유역계획과 맞는지도 따져야
당연직인 유역위 대표들이 빠진 상황에서 정족수만 채워 정부 대책을 통과시키는 게 법 취지에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허재영 전임 국가물관리위원장은 "광주·전남 가뭄 대책은 영섬위 심의·절차를 거치는 게 타당하다 본다"고 말했다.
각 유역위에서는 '유역 물관리종합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는데, 수립도 못 하고 지난해 임기를 마쳤다.
염섬위에서 심의했던 영산강·섬진강 유역 물관리 종합계획 초안에는 "섬진강 유역에서는 댐 물의 88%를 다른 유역으로 보내는데, 이런 유역 변경을 줄인다"는 내용도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섬진강 유역의 물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이번 가뭄 대책의 경우 이런 유역물관리 종합계획과 조화를 이루는지도 검토해야 할 상황이다.
염해 피해 어민 반발도 우려
현재 섬진강에서는 현재도 다압취수장에서 최대 하루 40톤의 물을 취수, 수어 댐을 거쳐 여수산단으로 보내고 있다.
취수로 섬진강 유량이 줄면서 강 하구에서는 바닷물이 역류하면서 어민들은 재첩 채취량이 줄었다고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환경부 영산강 유역환경청에서는 지난 2020년 9월부터 2021년 12월 사이 재첩 어획 피해 조사를 1차로 진행했다.
당시 재첩 서식환경 조사를 현장 조사 없이 문헌 조사로 대체한 데 대해 어민들이 반발, 현재 2차 피해 조사를 진행하기로 하고 연구용역 업체를 선정 중이다.
이 때문에도 이번 가뭄 대책을 반드시 영섬위에서 심의·의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물 민주주의 어기는 건 심각한 문제"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생명의강 특위 부위원장은 "물관리 기본법이 유역의 물 문제를 유역민이 먼저 논의하자는 기본 정신이 바탕에 깔렸는데, 환경부가 이런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않는 것은 '물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천권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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