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준호 “정치적 야망 無..빚진 마음 갚으려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참여" [인터뷰]
전형화 2023. 4. 7. 06:00
“영화계에 빚진 마음이 있어서 고심 끝에 수락했어요.”
배우 정준호가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심경이다. 정준호는 지난 4일 서울 KG타워 일간스포츠를 찾아 집행위원장을 맡게 된 경위와 각오, 그간의 논란들에 대한 심경, 그리고 영화제에 대한 비전을 설명했다.
그는 “진심으로 한국 영화 배우로서, 제작자로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기에, 항상 빚진 마음이 있었다”면서 “집행위원장 제안이 왔을 때 여러 차례 고사했다가 정말 한국영화계에 빚진 것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수락했다”고 말했다.
정준호의 이 같은 토로는, 영화제를 위한 자신의 진심을 곡해하지 말아달라는 뜻인 동시에 이제는 영화제에 대한 응원을 부탁한다는 당부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12월 정준호가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에 위촉된 뒤로, 팬데믹 이후 온전히 치러지는 첫 행사에 관심이 쏠리기 보다는, 정준호 흔들기에 더 초점이 맞춰졌던 터다.
지난달 30일 열린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발표 기자회견에서조차 정준호 집행위원장 위촉에 대한 질문과 답이, 영화제 상영작에보다 더 관심이 쏠렸다. 정준호는 “청문회에 선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싶더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전주시장과 인연 없었다, 제안 받고 여러 차례 고사
정준호는 지난해 12월 민성욱 전 부집행위원장과 같이 전주국제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위촉됐다. 24년만에 전주영화제 첫 공동집행위원장이다.
영화제 측은 당시 “그간 독립과 대안이라는 가치를 표방하며 탄탄한 마니아 층을 형성했고, 국내외 독립예술영화 지원 및 상영을 통해 고유의 기반을 다졌지만 한편으론 일반 대중에게 진입장벽이 높을 수 있다는 견해가 공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동 집행위원장 체제로의 전환이 정체성 확립과 대중성 확보라는 두 목표를 모두 달성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화제의 바람과는 달리 정준호 위촉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쏟아졌다. 당연직으로 영화제 조직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우범기 전주시장이 정준호 임명을 강행한 데 대한 반발과 그로 인한 영화계 인사들의 반대가 이어졌다.
실제 정준호 선임을 놓고 조직위원회 이사 7명 가운데 방은진 감독과 배우 권해효, 한승룡 감독 등 영화인 이사 3명은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이들은 정준호 임명이 확정되자 항의 차원에서 사퇴 의사를 밝혔다. 정준호가 독립, 실험, 대안 영화에 초점이 맞춰진 전주영화제와 별 인연이 없으며, 조직 운영 경험이 없다는 게 명분 중 하나로 거론됐다. 이는 마치 영화계가 정준호의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위촉을 반대하는 것처럼 비추어지기도 했다.
마침 지자체장이 바뀌면서 강릉국제영화제가 폐지되고 평창국제영화제가 예산 삭감으로 존폐 위기에 놓이자, 지자체장이 영화제에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뒤흔든다며 한 데 묶여서 거론되기도 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영화제 밥그릇 싸움에다 지자체가 예산의 대부분을 지원하는데 정작 시민들과는 동떨어져 진행되는 행사에 칼을 빼든 것에 대한 반발인데 마치 영화계 전체 의견인양 과대 포장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준호는 우범기 전주시장이 위촉을 강행했던 터라, 그가 우 시장의 선거를 도와서 낙하산으로 내려왔다는 풍문도 상당했다.
정준호는 “우범기 시장과 인연이 전혀 없었다”며 손사레를 쳤다. 그는 “우범기 시장 주변에 있는 문화, 영화계 관련한 분들이 영화제를 더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저를 추천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제안을 받고 바로 고사했어요. 제가 배우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두 회사의 대표로 사업을 하고 있기에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고, 그간 전주영화제에 두어 차례 배우로 참가했을 뿐 영화제 특색에 맞춰 큰 참여를 못했기 때문이었죠.”
정준호는 그 뒤로 몇 차례 고사했지만 거듭된 제안에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렇다면 내가 전주영화제를 위해서 무엇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면서 “배우 활동뿐 아니라 사업도 오래해서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하니 그걸 활용하면 영화제와 전주시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25년간 상업영화계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제작도 하면서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면서 “그동안 독립, 저예산 영화에는 큰 관심을 못 두고 편한 길만 걸어왔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정준호가 정치적인 야심이 있어서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을 한다며 흔드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는 “저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봤다”면서 “정치적인 야망과 꿈이 있다면 왜 내 고향인 충청도가 아니라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준호는 “진심으로 영화계에 빚진 것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맡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주영화제 후원회 발족과 시민과 즐기는 영화축제 비전
정준호는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비전을 두 가지로 꼽았다. 그는 “전주영화제는 독립, 대안, 실험영화에 집중하는 분명한 색깔을 갖고 있고 그간 많은 분들이 잘해 오셨다”면서 “그 색깔을 유지하면서 전주영화제가 발굴하고 지원하는 감독들을 보다 많이 늘리고 꾸준히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정준호는 이를 위해 기업인 50여명이 참여하는 전주국제영화제 후원회를 발족했다. 친분 있는 기업인들에게 두루두루 연락해 단발성 후원이 아니라 전주국제영화제와 영화제가 발굴하는 감독들을 꾸준히 지원할 수 있는 기금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정준호는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셔서 벌써 2억원 가량이 모아졌다”면서 “그 기금으로 지원하는 프로젝트와 독립영화 감독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주영화제가 추구하는 색깔은 민성욱 공동집행위원장을 비롯해 그간 영화제의 색깔을 잘 지켜오신 분들이 이끌고 저는 제가 잘 하는 일을 하려 한다”면서 “만일 공동 집행위원장 체제가 아니었으면 결코 맡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정준호는 두 번째 비전으로 영화제와 전주시민들이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영화축제를 지향하겠다고 밝혔다. 정준호는 “영화제 기간 동안 영화의 거리뿐 아니라 전주 시내 곳곳에서 시민들이 같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영화 축제가 되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화제 기간에는 많은 분들이 전주를 찾다가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게 아니라 영화제 이후에도 전주가 부산처럼 한국영화산업에서 중요한 위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주는 영화 촬영지로서 손색이 없는 풍광과 문화의 도시예요. 그래서 더 많은 영화를 비롯해 K콘텐츠 촬영 유치를 위해 각종 지원과 인허가를 원스톱 서비스로 시행되도록 영화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과 전주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에서 최대한 협조하려 해요. 전주시와 전북도에서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어요.”
영화제 색깔을 지키면서 더 많은 후원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 그리고 영화제와 시민이 함께 즐기는 영화축제와 K콘텐츠 산업을 유치해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게 그의 비전인 셈이다.
골프웨어 벤제프와 웨딩업체 해피엔젤라를 운영 중인 정준호는 “하와이 호텔사업부터 시작해 20여년 가까이 사업을 하고 있다”면서 “사업을 하면서 쌓은 경험과 조직 운영 노하우, 그리고 인적 네트워크로 전주영화제가 더욱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정준호가 배우로서 일을 접은 건 아니다. 그는 재미 교포 여소영 감독이 연출한 미국 독립영화 ‘스모킹 타이거’를 올 초 촬영을 끝마쳤다. 이민 1세대 아버지로 출연한다. 또 올 상반기 작품 활동도 계획 중이다.
배우로서, 사업가로서, 이제는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이제 정준호는 더욱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됐다. 그럼에도 그는 현재 가장 우선순위를 단연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꼽았다.
정준호는 “올해 전주영화제 출품작이 역대 최대”라면서 “아이디어가 독특하고 신선한 작품들이 많아서 영화제를 찾을 관객들이 좋아할 프로그램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간 영화의 거리에 있는 전주돔에서 여러 행사를 했는데 그 자리에 전주독립영화의집이 건립될 예정이라 사용할 수 없게 됐다”면서 “그래서 올해는 오거리문화광장, 한국소리문화의전당,팔복예술공장 등 전주 곳곳에서 행사가 진행된다. 영화제를 찾는 분들과 전주시민들이 고루 즐길 수 있는 영화 축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얼마 전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방문했어요. 배우로 영화제를 찾았을 때는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들었을 뿐이었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이제는 제가 밥상을 차려야 하는 만큼 전주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도시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이번 영화제를 즐기시길 진심으로 바라요.”
정준호가 집행위원장으로 처음 참여하는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오는 27일 개막해 5월6일까지 진행된다.
전형화 기자 brofir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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