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검은 백이 '핵가방'이었나…김정은 자랑한 '핵 방아쇠' 실체 [북핵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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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 한국과 미국과의 정상 회담을 열면서 비핵화 협상을 벌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핵·미사일 고도화에 필요한 시간을 벌었다. 결과는 한반도 전역은 물론 일본까지 동시다발로 타격할 수 있는 전술핵 8종 세트로 돌아왔다. 북한이 그동안 억제 수단이라 주장했던 전략핵에 선제공격에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힌 전술핵까지 손에 쥐면서 한국이 맞닥뜨릴 현실은 완전히 달라졌다. 북핵은 더는 '칼집 속의 칼날'이 아닌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온 셈이다. 중앙일보는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4년 간 키워 온 북한의 핵 능력이 어디까지 왔는지 긴급 점검했다.
」
북한이 지난달 28일 총알형 전술핵탄두인 '화산-31형'과 함께 처음 공개한 ‘핵 방아쇠’는 핵무기의 실전성이 제 궤도에 올랐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핵무기의 기술적 타격 능력을 확보하는 수준을 넘어 최고 지도자의 핵 공격 결심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절차도 정립하고 있다는 의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핵 단추’가 ‘핵가방’으로도 현실화한 모양새다.
핵 방아쇠, 김정은 명령 수행하는 핵 통합 운용 시스템
핵 방아쇠는 한 마디로 김정은의 결심에 따라 즉각 핵 공격이 가능한 지휘통제 체계다. 실제 북한 매체는 핵 방아쇠를 ‘국가 핵무기 종합관리체계’로 소개하며 “다각적인 작전 공간에서 각이한 수단으로 핵무기를 통합 운용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또 핵 방아쇠 능력이 최근 검증됐다고 밝혔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자유의 방패’ 기간인 지난달 18~19일 북한은 핵반격 가상 종합전술훈련을 실시하면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을 목표지점 800m 상공에서 폭파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최고 지도자의 핵공격 결심, 이후 명령 전달·발사·폭발 등 일련의 과정을 처음 진단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2018년 김정은 입에서 나온 ‘핵 단추’ 발언
핵 방아쇠와 같은 핵 관리체계는 핵 단추로도 불린다. 북한은 미국과 러시아 등 핵 보유국들이 이미 보유한 핵 지휘통제 체계를 오래전부터 개발해왔다. 북한의 해당 장치의 존재를 처음 알린 건 김정은의 입을 통해서였다. 북핵 위기 국면이 절정으로 치닫던 2018년 1월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는 것은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이 “내 핵 단추는 김정은의 것보다 훨씬 크고 더 강력하다"고 응수한 일화는 유명하다.
지난해 8월 북한이 발표한 ‘핵무력 법제화’도 핵 방아쇠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핵무력 정책법은 법령 6조에서 핵의 선제적 사용을 위한 조건으로 ‘국가지도부 등에 대한 핵 및 비핵 공격 감행 또는 임박’ 등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또 3조에선 “국가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체계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 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고도 했다. 김정은이 핵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권한을 제도적으로도 정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오로지 김정은 위해…미·러와 같은 듯 다른 북한판 핵 단추
군 당국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유일 체제 특성상 북한판 핵 단추는 미국과 러시아 등 핵 보유국의 기존 모델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 핵 방아쇠에는 다른 핵 보유국과 달리 핵탄두의 분배 체계가 포함된 것으로 본다”며 “평시 평양 인근에 핵탄두를 보관했다가 유사시 동·서·중부 전선에 배치된 전술핵 운용부대에 나눠 공급하는 방식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극단적 유일 통치 체제에서 쿠데타 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핵 공격시 명령의 진위를 따지는 보안 체계는 다른 나라의 핵 단추 원리와 유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명령이 해킹 또는 전파 방해를 극복하려면 암호화가 필수인데 이를 위해 암호책과 비화기를 갖춰야 한다. 최종적으로 명령의 진위를 확인한 최소 2명이 동시에 발사 버튼을 눌러 우발적 발사나 오발을 방지하는 식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달 12일 노동당 중앙군사위 회의에서 포착된 검은 가방이 이목을 끌었다. 박수일 총참모장 혼자 오른손에 든 사각형 검은색 가방이 ‘핵가방’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등 핵 보유국 정상들이 출장을 갈 때마다 곁에 두는 핵가방에는 암호책과 비화기 등이 담겨있다. 핵 방아쇠를 설계하고 있는 북한 역시 실제 작동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를 참고해 핵가방의 운영을 예고했을 수 있다.
김정은 곁 ‘모자이크맨’…핵 방아쇠 관련 인물 가능성
최근 얼굴을 숨긴 북한군 장성의 정체도 핵 방아쇠와 관련돼 눈여겨 볼만하다. 북한 매체는 지난달 핵반격 훈련 보도에서 김정은 곁에서 미사일 발사를 지켜보는 군인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채 등장시켰다. 이를 놓고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에 오르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왔지만, 핵 방아쇠의 명령 체계를 수행하는 역할 때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분이 노출돼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핵 지휘 시스템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 아니냐는 뜻이다. 정보당국이 그를 전술핵부대 운용을 지휘하는 연합부대장으로 추정하는 점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북한이 최근 핵개발 핵심 관계자들을 중용하는 기류도 핵무기 체계를 확립하는 국면에서 주목된다. 지난달 28일 북한 매체의 화산-31형 공개 보도에서 오랜만에 모습을 나타낸 강경호 핵무기연구소 부소장이 대표적이다. 2018년 5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당시 브리핑을 맡은 그는 5년 만에 중장(별 둘)에서 상장(별 셋)으로 승진한 채 공식 석상에 나왔다. 지난해 1월 모라토리엄 선언 철회 후 김정은이 신뢰할 수 있는 측근 위주로 핵무기연구소를 재정비한 것 아니냐는 의미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때 나온 인물을 재등장시켜 자연스럽게 핵실험 재개를 추론하게 만들었다”며 “주요 인물의 의도적 노출로 대남·대미 압박 효과를 노린 듯하다”고 말했다.
정영교·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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