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암도 찾아냅니다"…'세계 0.1%' 한국 과학자의 무기
윤주영 이화여대 석좌교수
Q : 형광은 흔히 접해도 원리는 잘 모른다.
A : “물질이 색을 갖는 건 물질을 이루는 분자의 특성 때문이다. 형광물질은 에너지를 흡수한 뒤 자기 고유의 빛을 낸다. 원자가 들뜬 상태에서 바닥 상태가 되면서 에너지를 내놓는데, 그걸 우리가 형광으로 본다.”
Q : 예를 든다면.
A : “야광 스티커의 경우 빛에너지를 흡수해 들뜬 상태가 됐다가 불을 끄면 바닥 상태가 되면서 형광을 낸다. 빛에너지가 충분치 않으면 형광이 안 나온다. 반딧불이는 생체 안의 화학에너지로 형광을 낸다.”
Q : 형광으로 어떤 연구를 하나.
A : “처음에는 원하는 물질에 형광을 내서 선택적으로 검출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형광 화학센서 또는 형광 프로브(probe·탐침)라 부르는 기술이다. 그러다가 검출을 넘어 암세포 등을 검출하는 동시에 치료 역할까지 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두 개 이상 분자의 결합체가 ‘초분자’인데, 자신과 맞는 특정 물질과만 결합한다. ‘주인-손님 이론(Host-guest theory)’으로 설명한다. 초분자 화학 개념을 정립한 과학자 3명이 1987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그중 도널드 크램 교수가 윤 교수의 박사 후 과정 지도교수다. 이 이론이 윤 교수가 연구하는 형광 센서의 기본이 된다. 혈흔 검출 때 쓰는 ‘루미놀’ 용액이 핏속 철분과 반응해 청백색을 내는 대표적 물질이다.
Q : 암은 어떻게 형광으로 찾아내나.
A : “암을 인식하는 바이오 마커가 여럿 있다. 예컨대 효소가 과발현할 경우를 선택적으로 인식하게 해 암을 찾아낸다. 수술할 때 형광 프로브를 뿌리면 아주 작은 암도 찾아서 절제할 수 있다.”
Q : 교수님의 대표적 업적이라면.
A : “우선 2009년 발표 논문이 생체 내 ATP(아데노신3인산)를 선택적으로 인식해 형광으로 볼 수 있게 한 연구였다. 이쪽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친 연구라 많이 인용됐다. 차아염소산(HOCl)이란 활성산소종을 감지하는 프로브를 개발하면서 나온 논문도 중요한 연구였다.”
Q : 치료는 어떻게 할 수 있나.
A : “에너지를 받으면 형광을 내는 물질도 있지만, 활성산소를 발생시켜 치료 효과를 내는 물질도 있다. ‘광감응제’라고 한다. 이런 치료제를 만들면 개복하거나 몸에 구멍을 뚫지 않고도 치료가 가능하다.”
Q : 크램 박사에게 뭘 배웠나.
A : “연구에 대한 자세가 가장 크다. 일흔을 넘긴 분이 몇 시간 동안 분자 모형을 조립해 와서 설명하는데, 표정이 어린애처럼 밝다. 연구는 그렇게 재밌게 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Q : 여대라서 연구 환경이 좀 다를 것 같다.
A : “석·박사 학생과 유학생이 다 여학생이다. 화학 분야는 꼼꼼한 여학생이 잘할 수 있다. 요즘엔 여성 과학자라고 불리할 건 없다.”
Q :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A : “어떤 분야가 각광받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꾸준히 유지되는 대부분의 학문은 우리 사회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트렌드를 따른다고 전공을 바꿀 필요는 없다.”
윤 교수는 연구에 대한 질문에는 아주 자세히, 길게 설명했다. 반면에 자신을 포장하는 질문을 경계했고, 연구 외의 것에는 조심스러워 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묻자 낯간지러워했다. 어렵게 얻은 답변은 이랬다. “인간성 좋은 사람이었다, 괜찮은 과학자였다, 이거면 충분하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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