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수땐 집주인-세입자 누구 책임? 명쾌하게 답해 드려야죠”
장난기 가득한 눈빛에 “인생에 큰 계획을 갖고 살아본 적도 없고 지금도 별 생각 없이 산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그는 법조계에서 ‘정의의 사도’로 통한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신민영(45) 변호사 얘기다. 강남 금수저 출신 이미지지만 대학 입학 이후 막노동, 전단지 배포, 편의점 근무 등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가난한 청춘’이었다. 판·검사임용이 될 사법연수원 성적에도 국선변호사로 시작해 1000건 이상의 형사소송으로 실력을 키워 돈 없고 빽없는 사람들 변호에 앞장서고 있는 그를 지난 3일 만났다.
만난사람 = 이성규 경제부장
-로펌 이름이 호암이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관계가 있나.
“아무런 관계없다. 로펌을 차린 지 1년 됐다. 처음에는 ‘법무법인 꿀벌’이라고 이름짓고 싶었다. 부지런히 일하는 이미지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주변에서 그런 이름으로 하면 기업들이 수임료를 자꾸 깎자고 할 거라고 걱정하더라. 그래서 절대 수임료 깎이지 않는 이름을 찾아봤더니 호암이란 이름이 비어있더라. 이름 탓인지, 우리가 적게 받아서인지 수임료 깎자는 얘기는 안 듣고 있다.”
-왜 로펌을 차렸나.
“부동산 관련 원스톱 서비스를 할 생각이다. 부동산 개발 사업으로 돈도 벌면서 생활밀착형 임대차 분쟁 해결을 돕는 법률 서비스 시스템도 구축할 예정이다. 한 달에 한 번씩 구청에서 법률 무료 상담을 하고 있는데 절반 이상은 임대차 관련 분쟁들이다. 예를 들면 누수가 발생하면 집주인과 세입자 중 누구 책임인가, 층간소음 발생 시 해결방법은 없나 등이다. 이와 관련한 분쟁은 많은데 소위 ‘돈 되는’ 사건은 아니다. 이런 수요를 끌어안는 법률 서비스도 없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콘셉트의 애플리케이션을 만들던지 해서 쉽고 편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
예상대로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서울대 법대 졸업-사법고시 패스’ 코스를 밟았지만 일반적인 성공공식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왔다. 2012년부터 6년 간 국선전담 변호사로 활동하며 1000건 이상의 형사소송과 50건 이상의 국민참여재판을 맡았다. 재판정 대기시간에 소일거리로 휴대폰으로 쓴 글이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라는 책이다. 이 책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원작이 됐다. 국선변호사 활동 이후에는 사무실에서 전직 직원을 무차별 폭행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공분을 샀던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폭행 피해자, 경비원 폭행사건 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 변호에 힘썼다.
-왜 돈도 경력에도 큰 도움이 안 되는 국선변호사를 6년이나 했나.
“대학 졸업 이후 공부를 시작해 법대 동기들보다 5~6년 늦게 사시에 붙었다. 사법연수원에서 나름 상위 성적으로 졸업했는데 석연찮은 이유로 판검사 임용이 되지 않았다. 그때가 사법연수원과 로스쿨 졸업생이 함께 배출되는 첫 해였다. 불러주는 대형 로펌이 없었다. 그래서 갔는데 법원장께서 국선변호인 임명장을 주면서 “역대 최고 성적의 연수원 수료자가 왔다”고 박수를 쳐줬다. 그래서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새 6년이 지났더라. 김영하 소설을 보면 ‘인생이란 게 원했던 걸 옆에다 살짝 두는 거, 그게 인생 아닐까’란 대목이 있는데 내 인생이 그랬던 것 같다.”
-우영우 드라마 나오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국선변호인을 하면서 법정에서 모순을 많이 느꼈다. 법이라는 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써내려간 게 아니라 모자이크처럼 그때 그때 땜질하면서 왔다. 많이 질문받는 것 중 하나가 ‘어떻게 그런 악인을 변호할 수 있느냐’인데 100대 맞을 사람이 1000대 맞지 않게 하는 변호도 있다. 변호사는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갖고 쓴 게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이다. 책 낸지 5년이 넘어도 1쇄 찍은 책이 다 팔리지 않아 좌절할 때 드라마가 나왔다. ‘드디어 내 인생도 폈구나’ 싶었는데 생각만큼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역시 열심히 일하는 수 밖에 없다.”
-앞으로 어떻게 열심히 살건가.
“일반적으로 법률하면 내수 서비스라고 생각하는데 전 수출상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외를 나가보면 영미계 로펌들이 주름잡고 있지만 국내 변호사들이 그들보다 더 우수하다. 새 영역을 개척하고 은퇴하기 전에 해외진출이라든지 수출상품 같은 걸 만들고 싶다. 지대추구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가치 생성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 틈나는 대로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어주고 싶다.”
인터뷰 말미에 가서야 장난기를 거둔 그에게 사무실 인테리어가 감각적이라고 칭찬을 했다.
“이거요? ‘깽 값’ 받은 거예요. 전도유망한 청년이 해외 유명 브랜드 판매권을 사서 국내에서 엄청 키웠어요. 그런데 5년이 지나고 계약 갱신할 때가 되자 패션 유명 대기업이 가로챘어요. 마치 상가임대차보호법 생기기 전처럼 상가 주인이 계약 갱신 안 해주고 잘 되는 가게 뺏어간 꼴이죠. 대기업 행태가 하도 고약해서 국회의원 사무실 찾아다니면서 그 대기업 국정조사 때 갑질로 문제제기를 해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 기업에서 상표 키워 준 것에 대한 명목으로 일부 보상을 해줬어요. 그 청년이 고맙다고 인테리어를 해줬어요.”
법이든 ‘공갈포’든 불의를 보면 해결 본능이 이는 신 변호사.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1순위로 권하고 싶은 변호사다.
이성규 경제부장 zhibago@kmib.co.kr, 김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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