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30년 산 부부의 ‘무서운’ 잠수 체험

2023. 4. 7.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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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체력 (‘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


낡아빠진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라탔다.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땀내 전 젊은이의 허리춤을 꽉 껴안았다. 나무들 사이로 꼬불꼬불한 외길을 달렸다. 겨우 10여분 탔을 뿐인데 잔뜩 긴장해 어깨가 딱딱해졌다. 한적한 모래밭에 당도하니 현지인 서너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간단한 사전 교육을 받았다. 강사는 수신호 하는 것부터 알려줬다. 주먹을 쥔 채 엄지를 위로 세우면 업. 바닥 쪽으로 내리면 다운.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붙이고 손을 펴면 오케이. 만약 문제가 있다면 손바닥을 아래로 한 채 흔들라고 했다.

‘엉? 무슨 문제?’ 기압 차이로 귀에서 고통을 느낄 수 있단다. 비행기를 타고 오르내릴 때처럼 말이다. 통증이 심해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이런! 생각지도 못한 장벽이 있었네. 남들보다 심한 통증으로 고생하는 나로선 시작도 하기 전에 걱정부터 앞섰다. 그럴 경우 검지로 귀를 가리키라고 했다. 고무호스를 입에다 무는 법, 만약 물안경에 물이 들어갈 경우 빼는 방법도 알려줬다. 교육은 끝났고 바로 산소통 메고 출발. 놀이공원에 있는 ‘유령의 집’으로 들어갈 때처럼 마음과 다리가 무거웠다.

여기는 필리핀 보홀섬. 산이 평지가 되고, 논밭이 되고, 다시 빌딩이 들어설 만큼 긴 세월을 부부로 살았다. 그 기념으로 야심차게 떠나온 여행이었다. 결혼 20주년에는 함께 히말라야를 올랐으니 이번에는 바다 체험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안 그래도 독자들이 다음 버킷리스트가 뭐냐고 물을 때면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고 싶다고 쉽게 대답했다.

‘이래 봬도 바다 수영 경험자인데, 유리하지 않겠어?’ 결론부터 말하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강사는 절대로 발이나 팔을 휘저으며 수영하지 말라고 경고했으니까. 또한 바다 위에 떠 있기와 바다 밑으로 내려가기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겨우 3m 내려왔을 뿐인데 심장이 벌렁거리면서 터질 것 같았다. 입에다 호스를 잘 물었고, 시야도 멀쩡하게 보였다. 더구나 내 뒤에는 잠수 마스터가 한 명 따라붙었다. 그런데 문제는 망할 공포심이었다. 귀가 아플까 봐, 잘못해 호스가 빠질까 봐, 숨을 못 쉴까 봐 겁이 났다.

몇 m쯤 더 내려간 걸까. 나도 모르게 호흡이 가빠졌다. 귀가 아프다고 거짓 핑계를 대서라도 그냥 바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손바닥을 마구 흔들고 싶은 유혹이 가슴을 조여 왔다. 나중에 들으니 남편도 똑같은 맘이었다고 한다. 이럴 때는 버릇처럼, 처음 철인삼종 대회에 나갔던 기억을 소환해 내곤 한다. 태풍이 몰아쳐서 눈앞의 호수는 끔찍한 황토물이었다. 당연하게도 발이 닿지 않았고, 붙잡을 만한 지지대도 없었다. 물속으로 뛰어들면서 엉겁결에 팔과 다리를 휘저었지만 5m도 못 가 호흡 곤란을 일으켰다.

수영을 못해서가 아니었다. 물에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존 본능에 가까운 공포심이었다. 결국 달려온 구명보트에 매달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마도 그때 무섭다고 포기해 버렸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 공포심을 누르고 다시 호수로 들어가 수영을 완주해낸 경험은 값졌다.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꺼내 보는 훈장이 됐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커다란 거북이 한 마리가 눈앞을 휙 지나갔다. 길을 가다가 공룡이라도 만난 듯 눈이 똥그래졌다. 그제야 바닷속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징그러운 돌기로 이뤄진 바다 생물, 니모처럼 생긴 물고기들이 코앞에서 꼬리를 살랑거렸다. 내 생전에 바다 밑까지 구경할 줄이야. 어느새 호흡하는 요령을 깨달았고, 바위 같던 커다란 공포심은 구슬만 한 크기로 쪼그라들었다. 육지로 되돌아갈 시간이 되자 아쉬울 지경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힘을 쫙 빼고, 오토바이의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어라? 한 번 타봤다고, 아까보다 훨씬 덜 무서웠다. 부부가 손을 잡고 함께 공포심을 이겨냈으니, 또 10년쯤은 끄떡없이 잘 살겠네.

마녀체력 (‘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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