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처음 공개된 북한인권보고서

2023. 4. 7.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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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미국인이 볼 때 가장 풀리지 않는 한국 정치의 미스터리가 있다. 인권 수호의 최전선에 섰던 한국의 진보가 북한 인권에는 왜 가장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느냐는 것이다. 2002년 2월 한국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민주주의 투사로 목숨을 잃을 뻔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혹한 실상에 대해서 어떻게 침묵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당시 김 대통령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배석자를 모두 물리고 40분 동안 북한 주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은 열망을 부시 대통령에게 전하며 북한과의 대결이 아닌 화해와 대화의 길을 택하겠다고 역설했다. 김 대통령의 진심 어린 말에 감동한 부시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후 김 대통령을 깊이 존경하게 됐다는 일화가 있다.

「 진보 정부, 북한 인권에 눈감아
윤 정부, 한국의 국제위상 회복
아·태 민주주의와 인권에 도움

북한의 인권 침해, 두고만 볼 것인가. [일러스트=김지윤]

그러나 김 대통령을 이은 진보 대통령들은 북한 주민의 인간 존엄성 회복에 대한 열정이 식은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과 386세대에게선 열정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독재 정부를 진정한 적으로 간주했고, 노 대통령의 참모들은 북한 인권 유린을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정부의 국내 민주주의 운동 억압 수단으로 조작된 허구로 치부했다.

이런 시각이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지만 노 대통령 주변의 지식인들이 북한의 참상에 눈감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든 한국이든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열정이 크지 않아 보여서 놀라웠다. 대북 외교에만 몰두했다. 인권 문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한국 방문 가능성을 낮추고 역사적 평화협정 체결의 걸림돌로 여겨질 뿐이었다.

이로 인해 한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부문에서 목소리를 잃었다. 한국의 목소리는 중요하다. 북한의 인권 유린을 미국 혼자 떠들면 북한은 신경 쓰지 않는다. 2002년 이후 일본이 미국과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미국은 일본에 적대적인 북한에 대해 그 전보다 더 나은 지렛대를 확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유럽 등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자 북한과 중국은 북한 주민 모두가 행복하다고 더는 주장할 수 없게 됐다. 북한 인권 문제는 한국 정부가 인권 문제에 대해 나서지 않으면 전 세계 어떤 나라도 선뜻 나서기 힘들다.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세계가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윤석열 정부가 북한의 인권 유린 참상의 세부적인 사항을 담은 ‘북한인권보고서’를 최근 발표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보고서는 2017년부터 작성됐지만 문 정부는 기밀로 지정했다. 보고서가 기밀이었다기보다 당시 청와대가 북한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윤 대통령은 “북한 주민의 처참한 인권 유린의 실상이 국제사회에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혹한 고문과 처형 실태를 고발하는 이 보고서를 계기로 국제사회는 북한 인권 유린의 실상을 제대로 알게 될 것이다.

윤 정부는 민주주의 부문에서도 대한민국의 위상을 원상회복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침묵했다. 스탠퍼드대 신기욱 교수는 문 정부가 이전 보수 독재정부가 사용하던 소프트한 민주주의 억압 도구들을 차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출범시킨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올해 두 번째 열렸는데, 윤 정부가 이번에 공동 주최한 것은 고무적이다. 한국은 아시아와 대서양의 간극을 메우고 민주주의 규범의 보편성과 평화롭고 번영하는 역내 질서에 대한 공감대를 다시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필자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민주주의 회복력 재강화를 위한 제3차 서니랜드 이니셔티브(Sunnylands Initiative) 연례 회의를 이번 주 주최한다. 한국의 민주주의 정상회의 주최와 북한인권보고서 발간 소식은 회의 참석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한국의 재확립된 목소리를 통해 학자와 정책 입안자들만 힘을 얻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정치범이나 다른 아시아 사람들이 독재자로부터 해방되면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의 분명한 입장이 어떻게 그들에게 견딜 힘을 줬는지 들을 날이 꼭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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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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