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희의 한반도평화워치] 미국의 현상 유지 정책, 단호한 북핵 대응 가로막는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높아지며 확장억제(핵우산) 방안의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이어 우리를 표적으로 하는 단거리 투발 수단 개발에 집중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단거리 투발 수단을 이용하여 핵 공격 시 짧은 작전 종심으로 방어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9일 북한이 발사한 ‘신형 전술 유도무기’를 군이 정확하게 탐지하지 못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북한 핵무기는 어떠한 경우라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억제해야 한다.
미국은 확장억제 정책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핵 추진 잠수함과 스텔스 폭격기,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을 대거 전개해 연합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핵실험을 막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이나 항구적 억제 방안으로는 한계가 있다. 최근 한·미·일 핵우산 협의체 구성과 공동 기획·운용 방안까지 제시하였음에도 논란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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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도발에 한·미 대응 미온적
긴장 조성 방지에 주력해온 탓
핵공격에 한국 궤멸할 수 있어
북핵 대응의지 더 확고히 해야
」
전광석화 같은 과감한 응징 필요
필자와 함께 일했던 커티스 스캐퍼로티 전 한미연합사령관과 배리 파블 랜드연구소 부회장, 오미연 존스홉킨스대 연구원은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고 한국은 수용하는 과거의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대서양조양기구(NATO)의 ‘핵 기획 그룹’ 같이 한국도 일정한 역할을 하는 통합 억지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억지는 이를 시행할 능력과 의지를 적이 인식할 때 가능하다. 그 핵심은 스피드와 파괴력으로 도발 시 전광석화 같은 무자비한 응징이 필요하다. 한·미의 군사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이를 시행할 의지에 대하여 북한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한다. 국제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미국의 능력과 한·미 연합방위체계 특성상 단호한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 무인기 도발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단호한 대응 지침에 5년 묵은 체증이 사라졌다. 도발에 백배, 천배 주저 없이 단호히 대응하라는 지침은 북한을 적으로 보지 않은 지난 정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군 통수권자의 지침은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지상명령으로, 단호하고 명쾌해야 한다.
이는 우리와 연합작전을 펼치는 미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주어지는 미 대통령의 지침은 어떤 것일까. 필자가 합참의장직을 수행하며 간접적으로 체득한 미 대통령의 지침은 한반도에서의 긴장 조성 방지, 즉 현상 유지였다. 따라서 유엔군 사령관 임무를 겸직하는 연합사령관은 단호한 대응보다 정전체제 유지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정전 후 북한이 자행한 3000번이 넘는 도발에 미온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국민과 장병이 목숨을 잃고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겪어도 그냥 참고 견뎌야 했다. 심지어 1·21 사태, 아웅산 테러,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전 같은 전쟁 수준의 고강도 도발에도 단호한 대응이 없었다.
긴 세월 이러한 행태가 계속되며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잘못 가르쳤다. 그 결과 보란 듯이 핵을 개발했고 한·미의 공동 억제방안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과거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도발은 참고 견디어도 나라가 망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핵무기를 이용한 도발은 한순간 우리를 궤멸시킬 수 있다. 지금처럼 한·미가 상반된 개념으로 대응하면 북한의 핵 위협은 억제할 수 없다.
한·미 공동 대응, 절차상 수일 걸려
한·미 연합위기관리 예규 또한 다분히 현상 유지를 위한 것으로, 독자적 의사결정과 단호한 대응이 불가하다. 북한의 도발에 한·미 공동 대응이 필요한 경우 절차상 수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최초 상황 통보에서 단계별 지휘계통을 거쳐 양국의 국가통수기구 합의까지 그야말로 지난한 과정이다. 북한 핵 도발 억제에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절차이다. 핵 공격은 신속·단호한 대응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독자적인 의사결정 권한이 필요하다. 망설이다 실기(失機)하면 응징 보복할 기회마저 없어지기 때문이다.
정전체제 아래 북한 도발에 대한 독자적인 대응은 자위권 차원에서만 가능하다. 미국이 전개하는 전략자산은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으나 이를 자위권 차원에서 우리가 운용할 가능성은 없다. 아무리 많은 전략자산과 전술핵을 전개하더라도 이를 운용할 독자적 의사결정 권한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말이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남조선 괴뢰는 우리의 주적”이라며 필요시 핵 공격으로 괴멸시키기 위해 “핵폭탄을 늘릴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북한의 명백한 핵 위협은 고전적인 너 죽고 나 죽자는 ‘확증파괴(MAD)’ 개념으로 억제할 수밖에 없다.
미 전략자산 운용 권한 공유해야
북한의 핵 위협은 핵무기로 억제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첫째,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한·미 모두 일전을 각오하고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둘째, 신속 단호한 대응을 위하여 핵무기를 포함한 미 전략자산에 대한 운용 권한을 대한민국에 보장해야 한다. 셋째, 새로운 확장 억제방안은 위 사항들을 충족해야 하며 아닌 경우 독자적 핵 능력 확보가 불가피하다.
미국은 한국전쟁 때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했고 이어서 체결한 동맹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 핵 위협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도발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적어도 북한 핵 위협을 확실하게 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실효적 억제 방안으로 북한 핵무기를 애물단지로 만들어야 한다. 과거 소련은 수만 발의 핵무기를 관리하며 국내총생산(GDP)의 10~20%를 사용해 붕괴의 한 요인이 되었다. 북한 핵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독자적 의사결정과 능력은 우리의 명운이 걸린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통수권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한 국민적 공감대와 여론은 크나큰 추동력이 될 것이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중원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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