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명의 파시오네] 예술로 승화한 제주 4·3의 아픔

2023. 4. 7.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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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떼죽음당한 마을이 어디 우리 마을뿐이던가. 이 섬 출신이거든 아무라도 붙잡고 물어보라. 필시 그의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아니면 적어도 사촌까지 중에 누구 한 사람이 그 북새통에 죽었다고 말하리라.’(현기영의 단편소설 ‘순이삼촌’ 중)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온 제주의 4월,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던 한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제주에 봄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일까.

「 4·3사건 기억하는 문화제 열려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염원
‘순이삼촌’ ‘화산도’ ‘지슬’ 등등
역사 상처 씻어내려는 창작혼

제주 4·3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2013). [사진 영화사 진진]

제75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지난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렸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 처음 열린 이번 추념식에는 1만5000명의 유가족과 관계자들이 참석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의 아픔을 달랬다. 지난해 당선인 신분으로 처음 추념식에 참석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한 추념사에서 “정부는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생존 희생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잊지 않고 보듬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기현 대표 등 여당 지도부가 불참하며 제주 홀대론 논란마저 일었다.

정치인의 행보는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큰 역할을 하지 않아도 그가 서 있는 자리가 그의 진심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민생과 경제, 외교 안보가 중요하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국민은 없다. 하지만 1년 중 하루, 국가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수만 명의 죽음을 위로하고 다시는 이 땅에 그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억하는 것 또한 윤 대통령이 추념사에서 언급한 ‘국가의 당연한 의무’가 아닐까 싶다.

올해 추념식에서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의미 있는 행사가 거행됐다. 문화로 4·3을 조명하려는 취지에서 열린 식후 문화제다. ‘동백, 바람을 타고’를 주제로 현재 제주도가 추진하고 있는 4·3 유네스코 기록 유산 등재 염원을 담았다. 제주도립무용단의 창작무와 흥산초등학교 교사와 학생이 부른 ‘동백이 되어 다시 만나리’ 등이 공연됐다.

오늘날 제주 4·3이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기까지 문화예술인들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그들의 창작 활동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마중물이 됐다. 앞에 인용한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이 대표적이다. 과거에 봉인됐던 제주의 아픔을 우리 사회 복판으로 끌어냈다.

김석범의 장편 『화산도』, 이산하 시인의 『한라산』, 강요배 화백의 ‘동백 꽃지다’,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등도 4·3의 고통과 함께해 왔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영국 맨부커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또한 제주 4·3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밖에도 많은 예술인들이 4·3의 평화적 가치를 조명하며 예술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기여해 왔다. 사회 공동체의 노력으로 4·3의 가치가 미래세대에 전승될 중요한 정신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올해 안타까운 장면도 있었다. 일부 우파 진영의 4·3 흔들기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의힘 최고위원 태영호 의원이 4·3 김일성 지령설을 꺼낸 데 이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위원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4·3 추념일은 3·1절, 광복절보다 격이 낮다”고 말해 4·3 유족들의 상처를 덧나게 했다.

이는 집권 여당 최고위원의 일탈로 넘어갈 일이 아닌 것 같다. 일례로 태 의원의 발언 이후 제주 곳곳에 ‘4·3은 김일성 지령에 따른 공산폭동’이라고 주장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제주 4·3 특별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공공연하게 희생자나 유족을 비방할 목적으로 제주 4·3사건의 진상조사 결과 및 제주 4·3사건에 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여 희생자, 유족 또는 유족회 등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여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아직 관련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구속력은 없는 상황이다. 말뿐인 명예 회복이 아닌 실질적 대책 마련을 위한 정부와 국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더는 소모적 갈등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바로 그간 많은 예술가가 애써온 이유일 것이다.

2023년 제주의 봄은 아름답다. 앞으로 다가올 제주의 수많은 봄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제주는 말한다. 눈부시게 빛나는 제주의 4월, 그 아름다운 봄꽃 사이로 사라져간 수많은 목숨이 있었음을 기억해 달라고…. 1년 중 단 하루, 4월 3일 만이라도…. 그렇게 올해도 제주는 싱그러운 신록을 맞이하고 있다.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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