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 읽기] 소나무를 베야 숲이 산다

2023. 4. 7.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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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슬 약사·작가

최근 산불이 잦다. 식목일을 앞두고 며칠 사이 53건의 산불이 발생한 탓에, 올해는 1986년 이래 최단 기간 가장 많은 산불이 일어난 해로 기록됐다. 이렇게 산불이 급작스레 늘어난 이유는 기후변화 때문이다. 예년보다 봄철 기온이 부쩍 오르고, 건조한 날씨가 오래 지속하니 산불이 나기 쉬운 조건이 갖춰져서다. 그렇지만 원인의 가장 큰 몫을 기후변화가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크게 의미가 없다. 기후변화라는 장기적 흐름을 단기간의 예방 정책만으론 바꿀 순 없어서다. 그러니 원인 비중은 적어도 쉽게 바꿀 수 있는 원인을 찾는 게 우선인데, 그게 바로 소나무다.

우리나라 삼림에는 소나무 비중이 유독 높다. 2022년 산림임업통계에 따르면 전체 삼림 면적의 36.6%를 소나무가 차지하고 있는데, 최근 대형 산불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경북 지역은 소나무 비중이 49.6%에 달한다.

이런 경향은 최근에만 국한된 것도 아닌 게, 1991년에서 2010년 사이에 발생한 대형산불(100ha 이상의 피해 면적을 낸 산불) 발생지와 2016년에 국립산림과학원에서 발표한 소나무 숲 분포도를 겹쳐보면 산불과 소나무숲 간에 높은 상관성이 보이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첫 번째는 소나무라는 종 자체가 불에 취약하다. 소나무는 불이 붙기 쉬운 송진(松津)을 분비하는 것에 더해, 사시사철 잎이 푸른 상록침엽수다. 선비들에게는 이것이 절개의 상징으로 보였겠으나, 화마(火魔) 눈엔 소나무 잎도 겨우내 바싹 마른 좋은 산불 연료일 뿐이다.

두 번째는 산림관리 정책 때문이다. 조선시대부터 소나무는 귀한 목재로 사용되어, 소나무를 벌채하는 것을 막는 송금(松禁) 정책이 오래 시행되었다. 그렇게 귀하게 조성된 숲이지만, 정작 그 목재를 사용할 건물이나 선박이 숲보다 먼저 사라지며 벌채 필요성은 사라졌다. 방치된 숲은 보호림인 국립공원이 되었고, 소나무 밀도는 지나치게 높아졌다. 가뜩이나 화재에 취약한 종인데, 빽빽하게 붙어서 자라기까지 하니 소나무숲이 산불 취약지대가 된 건 당연한 결과다.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산불이 발생한 지역은 생물 다양성이 극적으로 감소한다. 나무는 물론 작은 동물과 곤충도 타죽은 탓에 다시 숲으로 복귀하는 데 최소 30년이 걸린다. 그러니 숲을 살리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웃자란 소나무를 베어내야만 한다. 소나무가 무가치해졌으니 마구 베어내자는 게 아니다. 과도하게 빽빽하게 붙어 자라는 소나무는 솎아내기를 하고, 상대적으로 산불에 강한 활엽수를 섞어 심어 산불이 커지는 걸 막자는 뜻이다. 벌목이 주는 정서적 거부감은 이해하지만, 산불 피해에 노출된 자연과 인간 모두를 지키기 위한 최선을 고민할 때다.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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