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담화는 셔틀외교 결과물…노태우, 방일 극비 프로젝트 ‘서해사업’이 밀알
일본군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처음 인정한 1993년 8월 ‘고노 담화’는 92년 1월 방한한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일본 총리와 11월 전격 방일한 노태우 대통령 간의 ‘셔틀외교’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뒷받침하는 외교문서가 공개됐다.
6일 외교부가 공개한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1992년 외교문서 36만쪽)’를 보면 92년 10월 14일 당시 이상옥 외무부 장관은 오재희 주일대사에게 ‘서해사업’이라는 제목의 전보(2급 비밀)를 보냈다. 노 대통령의 방일 추진 계획을 설명하고, 일본 측과의 일정 조율 및 후속 조치를 지시하는 내용이었다. 당시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재 인물이었던 김학순 할머니(97년 작고)가 91년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하고,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었다.
노 대통령의 방일 추진에 앞서 미야자와 총리는 그해 1월 방한했다. 당시 환영 만찬에서 미야자와 총리는 “일본 국민은 과거의 한 시기에 일본의 행위로 말미암아 귀국(한국) 국민들께서 견디기 힘든 체험을 하셨던 사실을 상기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총리로서 다시 한번 귀국 국민께 반성과 사과의 뜻을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그해 2월 과장급 협의에서 한국 측은 “보상 문제, 교과서 기술 문제 등 응분의 조치가 수반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일본 측은 “무엇인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면서도 “청구권 협정을 문제 삼을 경우 한·일 관계의 기본 틀을 흔든다”고 우려했다.
교착 상황이 길어지자 노 대통령은 퇴임을 넉 달 앞두고 방일을 결단했다. 한국 측은 미야자와 총리가 방한 당시 앞으로 한·일 정상 간에도 격식을 차리지 않고 쉽게 회담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한 점을 상기시켰고, 이에 일본이 일정을 제시해 왔다.
양국 정상은 그해 11월 18일 일본 교토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방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의 해결 조짐이 보이지 않자 정부는 “보약을 먹으면 몸이 튼튼하게 되고 병도 잘 낫는 것처럼, 정상회교를 통해 우호 관계를 튼튼히 하고 현안 타결의 여건과 분위기를 조성하게 된다”고 대국민 설득에 나섰다.
이후 93년 2월 김영삼 정부가 출범했고 그해 8월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은 위안소는 당시 군(軍)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옛 일본군이 관여했다고 발표했다. 또 일본군 위안부들에게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올린다고 밝혔다. 이어 94년에는 일본 고교 교과서 23종 중 22종에 관련 내용을 기술했다.
또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관련, ‘개인 청구권’을 둘러싼 양국의 과거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내용도 담겼다. 윤석열 대통령은 3월 21일 국무회의에서 “한·일 청구권협정은 한국 정부가 개인 청구권을 일괄 대리해 일본의 지원금을 수령한다고 돼 있다”며 개인 청구권이 소멸했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공개 문서에 따르면 91년 8월 3~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후 보상 국제포럼’에 청구권협상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던 민충식씨는 “교섭대표 간에도 동 협정은 정부 간 해결을 의미하며 개인의 권리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암묵적인 인식의 일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시나 에쓰사부로 외무상도 동일한 견해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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