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러치 박’ 박정아가 끝냈다
박정아(30)가 여자배구 한국도로공사의 ‘V2’를 이끌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활약을 펼친다는 뜻에서 얻은 ‘클러치 박’의 명성을 재확인했다.
도로공사는 6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흥국생명과의 챔피언결정전(5전3승제) 5차전에서 세트 스코어 3-2(23-25, 25-23, 25-23, 23-25, 15-13)로 역전승했다. 도로공사는 1·2차전을 내주고도 세 경기 연속 승리를 거두는 ‘리버스 스윕’을 거두면서 극적으로 정상에 올랐다. 2017~18시즌 이후 5년 만에 차지한 두 번째 우승이다. 여자부 정규시즌 3위 팀이 플레이오프를 거쳐 우승한 건 2007~08시즌 GS칼텍스와 08~09시즌 흥국생명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도로공사 캣벨은 기자단 투표에서 17표를 얻어 각각 7표를 얻은 박정아와 배유나를 제치고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박정아는 “20대 때도 많이 힘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30대가 되니 더 힘들다. 하지만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모두가 힘들다”면서도 6100여 명의 만원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또 한 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박정아는 이번 우승으로 현역 선수 최다 타이인 5회 우승(임명옥, 박정아, 황연주)을 달성했다.
박정아는 ‘우승 청부사’다. 2011년 신생팀 우선 지명으로 IBK기업은행에 입단해 6시즌 동안 김희진과 함께 세 차례 우승을 합작했다. 2017년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은 뒤엔 창단 첫 우승에 기여했다. 올 시즌 뒤 자유계약(FA)선수가 되는 박정아는 감격의 우승으로 ‘라스트 댄스’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여정은 쉽지 않았다. 김연경의 뒤를 이어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은 박정아는 비시즌에도 쉬지 않고 뛰었다. 체력이 떨어진 탓에 대상포진에 걸려 개막전엔 뛰지도 못했다.
그러나 박정아는 시즌 중반부터 서서히 살아났다. 팀 전력상 봄 배구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지만, 박정아가 이끄는 도로공사는 3위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선 2위 현대건설을 2연승으로 제압했다. 박정아는 두 경기 합쳐 38점을 쏟아붓고, 통산 8번째 챔프전을 맞이했다.
30대 박정아의 챔프전은 험난했다. 1차전에선 10점(공격 성공률 23.81%)에 그쳤다. 2차전에선 아예 선발에서 빠졌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3차전에서 괴물같이 살아나 반격의 실마리를 만들었다. 4차전에선 지쳐서 비틀거리면서도 스파이크를 때려내 역전승을 이끌었다.
5차전 초반에도 박정아는 부진했다. 제대로 타점을 잡지 못해 블로킹을 뚫지 못했다. 1세트는 흥국생명의 승리. 하지만 2세트부터 도로공사의 끈질긴 수비가 이어졌고, 박정아와 캣벨이 잇따라 점수를 뽑아냈다. 두 팀은 두 세트씩을 주고받은 뒤 마지막 5세트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쳤다.
마지막 고비에서 ‘클러치 박’의 스파이크가 다시 불을 뿜었다. 서브 득점으로 기선을 제압했고, 흥국생명 옐레나의 공격을 가로막아 점수 차를 벌렸다. 7-6에서 연속 득점을 올린 데 이어 흥국생명이 2점 차까지 추격한 마지막 고비에서 14점, 15점째를 올려 경기를 끝냈다.
박정아는 경기 뒤 "저희도 우승할 지 몰랐는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을 해내서 기분좋다. 이겼는데도 맞는 건가 싶다. 너무 좋다"며 "1세트 첫 랠리에서 10개 공격한 뒤부터 '죽을 것 같다'고 느꼈다. 나만 힘든 건 아닌데 너무 힘들어서 티가 났는데, 옆에서 많이 도와줬다"고 했다.
5세트 13-12에서 박정아는 3인 블로킹을 앞에 두고 공격했다. 아웃이 선언됐으나 두 차례 비디오 판독을 통해 터치아웃이 확인돼 14-12, 매치포인트가 됐다. 박정아는 "(김)해란 언니가 따라가서 잡는 줄 알았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안 했는데 '제발 (공을)주지마'라는 생각도 했는데, 또 올라왔다"고 웃으며 "다행히 점수가 났다. 내 손에 정확하게 안 맞아서 완전 아웃인 줄 알았다"고 했다.
이날 인천에는 도로공사 팬들도 많이 찾았다. 박정아는 "우리 팬들이 소리를 많이 질러주시고, 많이 와주셨다. (1·2차전 때는 상대 응원 때문에 기죽었지만)오늘은 그런 거 없었다. 팬들이 많이 와주셔서 홈인지 원정인지 헛갈릴 정도였다"고 했다.
15~16시즌 처음 V리그(GS칼텍스) 무대를 밟은 캣벨은 지난 시즌 흥국생명에서 뛰었다. 올 시즌 도중 대체선수로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5차전에서 팀 내 최다인 32점을 쏟아부었다. 은퇴의 기로에 놓인 김연경은 30점을 올리며 맹활약했지만, 끝내 정상에 오르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김연경은 "많은 분들이 뛰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고민중"이라며 은퇴 여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인천=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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