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익이 영업익 10배…팜젠의 기발한 투자 [BUSINESS]
영업이익 74억원, 당기순이익 700억원. 코스피 상장 기업 팜젠사이언스(이하 팜젠)의 지난해 실적이다. 당기순이익이 영업이익의 10배다. 일회성 특별이익 없이는 보통 기업의 당기순이익이 영업이익보다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눈에 띄는 지표다. 일반적으로 영업이익은 회사의 본질적인 영업 활동을 통해 창출한 이익을 말한다. 당기순이익은 여기에 영업 외 손익이 더해진 수치다.
팜젠이 영업이익의 10배가 넘는 순이익을 기록한 것은 관계사 엑세스바이오 덕분이다. 팜젠은 지난해 말 기준 엑세스바이오 지분 25.2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엑세스바이오는 항원진단제품과 자가진단키트를 생산, 판매하는 진단키트업체다. 지난해 매출은 1조380억원, 영업이익은 4711억원에 달한다. 이에 지분법이익 명목으로 881억원이 팜젠에 반영되면서 팜젠 당기순이익이 급증했다.
다만 엔데믹으로 인해 올해부터 엑세스바이오 실적은 꺾일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로 늘었던 진단키트 수요가 엔데믹으로 감소세에 접어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엑세스바이오에 의해 좌우되는 팜젠 수익성도 크게 악화할 전망이다. 이에 팜젠과 엑세스바이오는 암 진단 시장 사업 진출을 통해 실적 감소세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수익성 바닥에서 지분 투자로 환골탈태
팜젠은 1966년 수도약품공업주식회사로 출발한 제약회사다. 1990년 주식 시장에 상장했고 2008년 우리들생명과학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듬해 우리들제약과 우리들휴브레인으로 인적분할, 우리들제약이 존속회사로 남았다. 우리들제약은 2021년 팜젠사이언스로 또 한 차례 사명을 바꿨다.
주요 수입원은 혈압 강하제 바르디핀과 혈관 치료제 리바틴 등 전문의약품(ETC)이다. 다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바르디핀과 리바틴 등의 가격을 고시하기 때문에 사업성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에 수익성은 늘 바닥에 가까웠다. 여기에 이렇다 할 영업 외 수익도 없었다. 실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팜젠의 순이익률은 0~5% 사이에 머물렀다.
하지만 팜젠은 2019년 9월 엑세스바이오에 지분 투자하면서 환골탈태한다. 2019년 7월 엑세스바이오 구주 265만9000주를 138억원에 인수한 데 이어 3자 배정 유상증자에도 참여해 650만2729주를 110억원에 사들였다. 249억원에 지분 25.26%를 확보한 셈이다. 당시 팜젠은 한국 기업이면서도 미국에서 활동하는 엑세스바이오의 글로벌 네트워킹 경쟁력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엑세스바이오의 진짜 경쟁력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듬해 코로나19가 유행하자 엑세스바이오는 주력 사업을 전환했다. 2019년 기준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던 말라리아 진단키트 사업을 대폭 축소하고, 코로나19 진단키트에 사실상 올인했다. 코로나19 진단키트는 말라리아 진단키트와 유사한 생산 공정으로 이뤄진다. 그렇기에 사업 구조 전환은 빠르게 이뤄졌다.
주력 제품 변경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2019년 482억원이던 매출이 2020년 1348억원, 2021년 5763억원으로 급증하더니 지난해 1조450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수익성도 90억원 영업손실(적자)에서 지난해 4742억원 흑자로 전환했다.
엑세스바이오의 고공행진은 팜젠에도 쾌재였다. 종속기업이 아닌 관계기업으로 분류해 팜젠 연결 재무제표에 엑세스바이오 실적이 그대로 반영된 건 아니지만 지분법이익으로 순이익이 큰 폭으로 개선됐다. 팜젠의 지분법이익은 2019년 5억원 적자에서 2020년 121억원, 2021년 470억원, 2022년 881억원으로 커졌다. 이 기간 순이익은 2019년 2억원에서 지난해 700억원으로 폭증했다.
여기에 팜젠은 올해 엑세스바이오 배당이익도 받았다. 엑세스바이오는 지난해 설립 이후 첫 배당을 집행했다. 배당 금액은 현금 298억원. 지분 25.26%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팜젠은 75억원의 배당금을 수령했다. 팜젠의 지난해 영업이익(74억원)을 웃도는 금액이다.
4분기만 보면 어닝 쇼크
다만 팜젠의 수익성을 이끈 엑세스바이오의 고속 성장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역설적으로, 엑세스바이오의 코로나19 진단키트 매출 의존도가 약점이 되고 있다. 사업 구조를 전환한 2020년 이후 전체 매출의 80% 이상이 코로나19 진단키트에서 발생했다.
지난해 엔데믹 전환과 함께 코로나19 진단키트 수요는 급감하고 있다. 이미 관련 업체 실적은 줄줄이 급락 중이다. 엑세스바이오도 지난해 4분기만 놓고 보면 적자다. 엑세스바이오는 지난해 4분기 매출 501억원, 영업손실 10억원을 냈다. 이전의 실적을 고려하면 ‘어닝 쇼크’다.
이에 엑세스바이오는 지분 투자를 활용해 신사업을 발굴하고 있다. 암 진단 시장 진출이 대표적이다. 엑세스바이오는 암 진단 기업 진캐스트에 60억원을 투자, 지분 일부를 확보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진캐스트는 액체 생체 검사를 활용해 암을 진단하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액체 생체 검사는 타액(침)과 소변 등에 존재하는 핵산 조각을 분석, 암 등 질병의 진행 정도를 실시간 추적하는 기술이다.
액체 생체 검사 시장이 빠르게 성장 중인 만큼, 진캐스트가 엑세스바이오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베리파이드마켓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액체 생체 검사 시장은 2019년 10억6371만달러(약 1조3214억원)에서 2027년 50억2746만달러(약 6조2431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최영호 엑세스바이오 대표는 “현재 급부상하고 있는 액체 생검 암 진단 시장에서 민감도 이슈를 해결했다는 게 진캐스트가 가진 매우 큰 장점”이라며 “단순한 투자가 아닌 지분 확보를 통한 긴밀한 기술 협력과 공고한 파트너십을 통해 글로벌 조기 암 진단 시장을 정복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유망 기업 투자 행보도 보이고 있다. 이종 산업이더라도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면 투자하는 방식이다. 그간 엑세스바이오가 펀드와 지분 투자 등에 보수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큰 변화다.
엑세스바이오는 지난해 GCT세미컨덕터에 500만달러(약 64억원)를 투자했다. GCT세미컨덕터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통신용 칩 생산·판매업체다. 최근 미국 나스닥 상장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엑세스바이오는 지난해 스틱이노베이션펀드와 메이슨헬스케어펀드에도 각각 약 23억원, 55억원의 자금을 집행했다.
엑세스바이오는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이 같은 행보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기타 유동 자산을 포함한 엑세스바이오 현금성 자산 규모는 5000억원에 달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3호 (2023.04.05~2023.04.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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