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규·정민용의 '법카루팡' 차원이 달랐다, 그 막전막후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공판이 진행되고 있다. 남욱 변호사가 마련한 8억4700만원 중 6억원이 김 전 부원장에게 전달됐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그 전달 경로를 검찰은 남 변호사 측근인 '이○○ → 정민용 → 유동규 → 김용'으로 보고 있지만, 특히 '유동규 → 김용' 전달 상황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군부독재 이후 처음으로 제1야당 당사 압수수색을 검찰이 강행하게 만든 사건, 공판 과정에서 나오는 물음표들을 따져본다. <편집자말>
[이정환 기자]
"남욱, 정민용 등 관여자들이 '대선 경선 자금으로 김용에게 줘야 하니까 안전하게 조성해달라'는 (유동규) 말에 속아서, 이런 표현 죄송하지만 유동규에게 놀아난 것일 수 있다."
지난 3월 7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의 정치자금법 위반 1차 공판 당시 검찰 스스로 언급했던 가능성이다. 물론, 이런 가능성을 검찰은 '0'으로 본다.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던 남욱 변호사가 대선 경선자금이란 위험성을 고려하여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방법으로 현금을 마련했다는 점, 그리고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전달된 8억4700만 원 중 남 변호사 요청에 1억원을 유 전 본부장이 바로 반환했다는 것 등이 그 이유다. 한 마디로 '보통 돈'이 아니었기에 나왔던 사정들이란 것이다.
그런데, 8억4700만 원 중 김 전 부원장에 도달하지 않고 유 전 본부장에 이르러 배달사고가 났다고 검찰 스스로 판단한 돈도 있다. 1억4000만 원이다. 다소 황당한 것은 공판 과정에서 이와 관련한 유 전 본부장의 진술 태도다. 그는 "어디에 썼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거나 "주위에 어렵게 사는 분들 생활비를 주거나 측근을 챙겼다"는 진술 정도로 넘기고 있다. 관련하여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했다면 나오기 어려운 모습이다. 이 때문에 김 전 부원장 측은 "상당한 액수를 본인이 중간에서 가로채서 사용했다고 하는데도 그에 대해서는 검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며 의문을 표한다.
이 사건의 핵심은 김 전 부원장이 아니라 유 전 본부장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유 전 본부장이 '멋대로' 1억4000만원을 사용했다는 것인데, 이는 '보통 돈'이 아니었다는 검찰 논리와 상충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보기에 따라 "유동규에게 놀아난 것"이란 가능성을 오히려 높이는 정황이다. 물음표는 그래서 나온다. 이처럼 남 변호사의 돈을 애초 목적과 달리 유 전 본부장이 사용했던 전력을 검찰이 2021년 수사 과정에서 이미 확인했다는 점이다.
▲ 대장동 개발 관련 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남욱 변호가 3월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 이희훈 |
2021년 검찰 수사에 따르면 남 변호사는 2020년 9월부터 12월까지 자신이 대표였던 엔에스제이홀딩스(천화동인 4호)를 통해 투자자금 명목으로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35억 원을 정민용 변호사에게 송금했다. 다시마 비료 사업을 하겠다는 유 전 본부장의 뜻을 정 변호사가 전달하면서 이뤄진 것이었다. 정 변호사는 유 전 본부장과 함께 설립한 유원홀딩스(전 유원오가닉)에 35억 원 중 14억7765만 원만 입금한다.
그리고 남 변호사도 모르게 11억8000만원을 입금한 곳이 유 전 본부장의 전 부인과 현재 부인이었다. 2021년 10월 10일 2차 피의자신문조서에 따르면 정 변호사는 유 전 본부장 요구에 따라 이혼 자금과 재혼할 여성의 주택 마련을 위해 돈을 빌려준 것이라고 진술한다.
문 : "유동규에게 돈을 보내준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유동규가 계속 달라고 하는 상황이었고, 초기 예상했던 사업자금 35억 원 중 예상과 달리 세이브가 되는 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중략, 유 전 본부장 측 개인 사정) 돈이 모자라지 않게 갚아줄테니 남욱에게 말하지 말고 15억 원 갖고 먼저 사업을 시작하라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중략) 유동규가 이 부분은 금방 갚아질 수 있다고 하니까 빌려준 것입니다."
문 : "남욱이 피의자(정민용)에게 보내주는 돈을 유동규에게 보내주면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요."
답 : "남욱이 자주 이야기했던 것이 '유동규 저 사람 자꾸 돈 달라는 사람이다'라고 말을 했었고, 저에게 '왜 계좌로 보내는지 알지?'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문 : "그게 어떤 의미인가요."
답 : "함부로 유동규에게 돈을 주면 안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법카 루팡
▲ 정민용 변호사는 2021년 10월 9일 검찰에 출석해 1차 피의자 조사를 받기 전 자술서를 제출했다. |
ⓒ 이정환 |
남 변호사 입장에서 황당할 수 있는 사정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2021년 수사 당시 검찰은 유원홀딩스에 입금된 14억7765만원 중 상당액을 유 전 본부장과 정 변호사가 개인적으로 쓴 것으로 파악했다.
문 : "유원오가닉 내지 유원홀딩스 계좌로 14억7765만 원이 송금되었는데, 2021년 9월 15일 ○○○과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4억 원을 송금해 준 것을 빼면 10억 원 가량이 남아야 하는데, 2021년 9월 29일 유원홀딩스 계좌 잔액은 1억7950만 원입니다. 어떻게 된 것인가요."
답 : "그러니까요."
문 : "유원홀딩스 계좌에 있던 돈을 누가 다 쓴 것인가요."
답 : "저도 쓰고, 유동규도 사용하였습니다."
2021년 10월 25일 정 변호사에 대한 3차 피의자신문조서를 보면, 검찰은 약 47건에 달하는 유원홀딩스 법인카드(체크카드) 결제 내역을 추궁했다. 그중 2건을 제외한 나머지 결제 내역에 대해 모두 정 변호사는 자신 또는 유 전 본부장이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법인카드는 총 세 개가 발급되어 있었고 유 전 본부장과 정 변호사가 각각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사실상 사업 진행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들 두 사람이 보인 씀씀이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어려운 수준이었다.
당시 조서를 보면 제주도에서 유원홀딩스 법인카드가 결제된 경우는 2020년 12월 16일, 12월 24일, 2021년 5월 12일, 5월 21일 등 네 차례였다. 이중 세 번이 평일에 결제가 이뤄졌는데 호텔 숙박비는 물론 횟집 등 음식점, 공항 면세점 등에서 법인카드가 사용됐다. 다음은 그 예다.
문 : "2020. 12. 24. 11:19경 '(주)호텔신라제'에서 4,185,800원을 결제하였는데, 피의자가 제주 신라호텔에 묵었던 것인가요."
답 : "제주 신라호텔에 묵은 적은 없습니다. 그 부분은 유동규가 사용한 것 같습니다."
문 : "유동규가 제주 신라호텔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요."
답 : "네, ○○○과 함께 크리스마스에 갔다고 들었습니다."
▲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3월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대장동 개발 배임 혐의로 출석하고 있다. |
ⓒ 이희훈 |
이른바 '법카 루팡', 딱 그 모습이었다. 당시 정 변호사는 평일 법인카드 사용은 주로 유 전 본부장이 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그에 따르면 유 전 본부장은 제주는 물론, 강원도 홍천, 속초 등지를 돌아다니며 호텔이나 음식점 등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했다. 평일 대낮 주거지 근처 빵집이나 편의점 등에서 법인카드 결제가 이뤄지는가 하면, 누가 사용했는지 특정되진 않았지만 골프장이나 백화점 명품관에서도 거침없이 법인카드가 사용됐다. 정 변호사 경우도 씀씀이가 컸다.
문 : "2021. 7. 25. 17:27경 (주)호텔신라에서 370만원을 결제한 내역이 있는데, 서울 신라호텔에 묵은 것인가요."
답 : "네, 가족들하고 같이 갔었습니다."
문 : "숙박료가 왜 이렇게 고가인가요."
답 : "성수기 때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패키지로 묶여 있는데 야외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는 방이어서 비쌌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월급 루팡'이기도 했다. 유 전 본부장의 급여는 921만원, 정 변호사의 경우는 918만원이었다. 조서에 나타난 유원홀딩스 직원은 모두 5명이었는데, 그 중 2명이 또한 이들 두 사람의 가족이었다. 한 사람은 유 전 본부장 현 부인의 처남이라고 했다. 정 변호사는 유 전 본부장이 회사에 채용해달라고 청했다고 주장했다.
문 : "○○○이 실제로 일을 한 것이 있나요?"
답 : "당시에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일을 한 것은 없었습니다."
▲ 정민용 변호사가 지난 3월 21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불법 정치자금·뇌물 수수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정민용의 자술 이유 "일종의 사기극... 유동규는 나쁜 사람"
▲ 정민용 변호사는 2021년 10월 10일 2차 검찰신문 당시 자신이 자술서를 제출한 이유에 대해 "유동규를 처벌받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 이정환 |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정 변호사 또한 유 전 본부장에게 속았다는 주장을 당시 검찰을 상대로 한 것이다. 그는 "유동규 사장이 다시마 비료사업하자고 한 게 사실은 유 사장의 이혼 자금이 필요해서 날 속인 것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심지어 자신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자술서를 제출한 이유 또한 유 전 본부장 때문이었다고 강조했다.
문 : "진술서를 검찰에 조사를 받으러 오기로 한 날 당일에 제출한 것은 왜 그런 것인가요."
답 : "유동규가 저에게 돈을 빌려가기 위해 벌인 일종의 사기극이 괘씸하고, 유동규가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문 : "그러면 유동규를 처벌받게 하기 위한 것인가요."
답 : "네. 유동규는 나쁜 사람입니다."
정 변호사의 2021년 검찰 진술로 봤을 때는 남 변호사가 눈뜨고 코를 베인 격이고, 2022년 검찰 수사팀 표현을 빌리면 '유동규 등에게 놀아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가능성을 김 전 부원장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공판에서는 배제하고 있는 것이 현재 검찰이다. 결국 가장 큰 물음표는 이것이다. 2022년 검찰은 이 사건의 핵심인 유 전 본부장 진술을 얼마나 철저하게 검증했는가.
[김용 공판 분석 기사]
④ 유동규 '법카 이용 내역', 검찰은 왜 안 밝히나 https://omn.kr/23do0
③ '쇼핑백' 목격했다는 남욱, 그날 유동규-김만배 통화내용 봤더니 https://omn.kr/23an0
② [단독] 남욱 청담동 건물, 검찰 1011억원 추징보전 https://omn.kr/2386w
① 'Lee-list' 1억·다음날 남욱 '3백억 건물' 구입...커지는 물음표 https://omn.kr/2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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