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美 불평등 그려낸 조지 손더스의 ‘블랙유머’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248쪽, 1만5000원
미국 작가 조지 손더스(George Saunders·65)는 2017년 맨부커상 수상작 ‘바르도의 링컨’으로 유명하다. 앞서 그의 네 번째 단편집 ‘12월 10일’이 국내에 소개됐다. 올 초에는 그의 시큐러스대 소설 창작 수업을 옮겨놓은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가 번역됐다.
한국 독자들에겐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가들과 출판계는 그를 계속 주목해 왔다. 이번에 나온 ‘패스토럴리아(Patoralia)’는 2000년 발표된 손더스의 두 번째 단편소설집이다. ‘영어권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 ‘미국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가’로 불리는 손더스 특유의 스타일과 주제의식을 잘 보여주는 단편 6편이 담겼다.
표제작 ‘패스토럴리아’는 테마파크 내 인디언 구역에서 인디언 역할을 하는 젊은 남자가 주인공이다. 여기서는 매일 동료 평가를 해야 하고, 평가가 안 좋은 직원은 해고를 당한다. 주인공은 동굴 속에서 함께 일하는 여성 동료의 불성실한 근무 태도를 사실대로 보고할지, 아니면 이 가여운 여성을 보호해야 할지 고민한다. “평균 이하의 동료를 짊어지고 있소” “그 여자는 혹이오”라는 관리자의 목소리와 “그 여자는 친구입니다”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계속 충돌한다.
처음에는 배경도 인물도 갈등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이한 분위기와 유머러스한 문체에 이끌려 계속 읽게 된다. 다 읽고 나면 이야기가 명료해진다. 비현실적이거나 특수한 이야기처럼 읽혀지다가 나중에는 상징도 우화도 아닌 현실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도 놀랍다.
‘시오크’라는 단편 역시 처음엔 무슨 이야기인지 알기 어렵다. “이어 ‘셔츠 벗기’ 시간이 왔다고 선언한다”라니? 주인공은 파일럿을 컨셉으로 한 스트립바에서 일하는 젊은 남성이다. 이 일을 통해 못 배우고 직업도 없는 부모와 형제들을 부양하고 있다.
어느날 가난하지만 누구보다 착했던 이모가 죽고, 묻혔던 이모가 귀신의 형상으로 집으로 찾아온다. 돌아온 이모는 평생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현실에 감사하고 세상을 긍정하던 과거의 이모와는 180도 다른 이모다. “내 인생은 똥이었어! 나는 심지어 빌어먹을 비행기도 못 타봤어.” “왜 어떤 사람은 모든 걸 갖고 나는 아무것도 못 가졌을까?”
소설가 이미상은 이번 소설집에 추천사를 쓰면서 ‘시오크’를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이미상은 “나는 그의 한 문장이 훌륭한 단편소설 너덧 편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의 최고작 중 하나인 ‘시오크’는 웬만한 장편소설은 다 바른다”고 썼다.
손더스의 두 책 ‘패스토럴리아’와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를 번역한 정영목은 손더스의 문학에 대해 “어찌 보면 낡았다고도 할 수 있는 민중의 이야기”라며 “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못난 사람들, 뒤처진 사람들, 패배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고 평가했다. ‘이발사의 불행’이라는 단편은 중년이 되어서도 결혼을 하지 못한 채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이발사의 연애담이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를 보면 손더스의 민중적이고 사실주의적 스타일과 단편 위주의 문학은 체호프,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고골 등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작가들과 존 스타인벡,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20세기 미국 사실주의 문학의 전통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유전 현장에서 일하던 중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읽으며 작가를 꿈꾸었고, 습작기에는 헤밍웨이를 모델로 삼았다. 또 시큐러스대에서 19세기 러시아 단편소설들을 함께 읽는 수업을 25년간 진행했다.
손더스는 사실주의 문학 전통 위에 형식의 실험성과 블랙 유머를 더해 21세기 미국의 불평등을 그려낸다. 그가 19세기 러시아 문학에 대해 한 말 “그들은 소설을 장식물이 아니라 긴요한 도덕적·윤리적 도구로 보았다”, 소설 작법에 대해 한 말 “단 한가지를 제외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합리적 인간이 네 번째 줄을 읽다가 다섯 번째 줄로 넘어갈 만큼 마음이 흔들릴 것인가?”는 손더스 문학을 설명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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