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온공주 손녀가 남긴 '한글 궁체' 진수…"K-컬처 새 가능성은 서예"
먹을 머금은 붓이 흰 종이를 힘차게 가른다. 신진·중진 작가가 함께 써내려 간 한글에는 글자마다 꿈틀대는 생명력이 담겨있다.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진행된 휘호 퍼포먼스에서 종이 위에 모습을 드러낸 문장은 '한글, 나랏말씀이 세계로 나르샤'. 한국서예단체총연합회(회장 김성재)와 한국서예진흥재단(이사장 홍석현)이 공동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의전당이 후원하는 '2023 한국 서예 큰마당 축제'의 표제다.
한국 서예 큰마당 축제가 이날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막을 올렸다. 한국의 근·현대 서예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다. 한글 창제 이후의 고전 서예부터 근대 이후의 전통 서예 등 서예 작품 460점이 관객을 맞는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로 불리는 덕온공주의 손녀, 고 윤백영(1888∼1986) 여사가 1964년에 남긴 친필 글씨다. 윤백영은 한글 궁체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궁중에서 쓰인 봉서(임금이 종친이나 신하에 내리는 사서) 수십 편에 송·수신자 이름과 내용 개요 등을 기록해 남겼고, 이는 이름이 기록되지 않아 누구의 글씨인지 알지 못했던 궁중 봉서의 필사자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주형 한국미술협회 서예분과위원장은 "이번 전시는 조선 말기 궁에서 쓰인 한글 서체를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라고 설명했다.
한글 서예 작가들만 전시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 한문 서예가, 문인 화가, 캘리그라피 작가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서예 작품과 한글 디자인을 입힌 생활용품 등도 선보인다. 한국 서예의 발전상과 세계 속의 한글 서예를 두루 볼 수 있는 자리라는 게 주최 측 설명이다.
이 위원장은 "한글이 세계로 뻗어 나가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서예 전시 주제를 한문이 아닌 한글로 정하고 전통적인 서예 작품 외에 한글 디자인을 활용한 오브제 등 현대적인 작품도 함께 선보이게 됐다"며 "한글은 기능적으로도 우수한 문자지만 붓과 먹을 이용하는 서예로 전달할 때 시각적 아름다움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참여 작가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자신의 호(號)를 딴 일중체(一中體)를 탄생시킨 고 김충현 선생, 한글 궁체의 대가 고 이미경 선생 등 유명 서예 작가와 신진 작가, 전국의 휘호 대회에서 입상한 초·중·고 학생 등 총 460여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개막식 행사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홍익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윤성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정책실장 등이 참석했다.
홍석현 한국서예진흥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이번 전시는 한국 문화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파악하고 공유해 K-컬처의 새로운 가능성을 한글 서예라는 장르에서 찾는다”며 “한글의 세계성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예술적 가능성과 예술산업으로서의 발전 가능성도 가늠해볼 수 있는 전시회”라고 말했다.
김성재 한국서예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서예를 통해 한글의 우수함을 전하는 전시회를 열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이번 전시가 한글 서예의 예술적 가치 뿐 아니라 산업적 가치를 발굴하고, 청년 작가들의 창작 기회 보장과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익표 위원장은 "최근 한복, 판소리 등 전통문화가 'K-헤리티지'(heritage·유산)로 주목을 받고 있다"며 축사를 시작했다. 이어 "한류 못지않게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지금이야말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서예에 대해 알릴 적기"라며 "국회에서도 서예 진흥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성천 실장은 "서예는 작가의 영혼을 담는 거울과 같은 예술"이라며 "서예를 통해 한글의 매력과 경쟁력이 더 멀리 뻗어가길 바란다"고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전시는 다음 달 28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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