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이정효 인터뷰 ① "나를 걱정할 시간에 팀을 고민하는 게 낫다"

서호정 기자 2023. 4. 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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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광주] 서호정 기자 = 2023시즌 K리그1 초반을 키워드 3개로 정리하면 울산현대의 5연승, 대전하나시티즌의 귀환, 그리고 광주FC의 전술적 화제성이다.


이정효 감독 체제의 광주는 지난 시즌 K리그2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K리그1에선 쉽지 않을 거란 예상이 많았다. 스쿼드의 힘이 곧 전술로 여겨지는 시대에 제 아무리 2부에서 전술적 성과가 컸다 해도 1부에서는 체급 차를 실감할 거란 전망이었다. 


그런 예상은 보기 좋게 깨졌다. 5라운드까지 3승 2패를 기록 중인 광주는 5경기 모두 일관되게 주도적이고, 공격적인 축구를 펼쳤다. 채널링 중심의 의도적 압박과 수비가 성공하면 빠른 템포로 전진하고, 페널티박스 부근에서 유기적인 호흡으로 공격을 펼치는 광주의 내용은 유럽 축구로 상향된 국내 팬들의 전술적 눈높이와 맞아 떨어졌다. 선수 개개인의 네임 밸류는 떨어져도 팀의 완성도 가장 높다는 찬사가 이어지는 중이다. 전력상 우위인 팀을 상대로 현실적 타협을 하지 않는 이정효 감독의 도전은 박수를 받았다. 


뛰어난 전술 외의 화제성도 있었다. 이정효 감독은 긍정적 의미의 '관종(관심종자)'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지난 2월 미디어 캠프부터 "지난해에는 소위 개무시를 당했다", "우리나라는 칭찬에 인색한 분위기다"는 거침없는 발언으로 눈길을 모았다. K리그1 미디어 데이에서는 장기 부상을 당한 이으뜸을 위로하기 위해 그의 유니폼을 입고 등장했다.


이정효 감독의 행보 중 가장 큰 화제가 된 건 '저런 축구' 발언이었다. 홈에서 열린 2라운드에서 좋은 내용에도 엄지성의 경고 누적 퇴장 후 FC서울에게 실점하며 패하자 "저렇게 축구하는 팀에 졌다는 것이 분하다"고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말한 것. 발언 직후 FC서울과 안익수 감독의 축구를 비하한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결과에 승복 못하고 상대를 비하하는 무례한 감독으로 이미지가 형성될 수 있었다. FC서울 선수들은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는 표현으로 반박하며 논란은 한층 불이 붙었다. 


감독 2년차에 가장 뜨거운 반응, 그것도 광주 팬 정도를 제외하면 부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이정효 감독은 정면 돌파했다. 4라운드 인천전 5-0 승리는 광주가 지향하는 축구를 제대로 보여줬다. "감독은 결국 축구로 많은 이를 설득하는 직업"이라는 그의 소신대로 경기력으로 납득을 시키는 중이다. 스스로를 꼴통 기질이 있다고 말하는 이정효 감독과 A매치 휴식기에 광주에서 만나 3시간 여의 긴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를 수원FC와의 5라운드 이후에 게재해 주는 것을 조건으로 건 그와 나눈 축구 내외적인 이야기를 2편의 인터뷰를 통해 공유한다. 1편은 저런 축구 발언, 이정효 감독의 전술적 철학에 대한 접근이 주된 내용이다. 


- A매치 휴식기 중 겨울이적시장이 마감됐다. 광주는 마지막에 대구로부터 오후성을 영입했다. 선수의 어떤 면모를 보고 영입을 결정하나?
최우선은 멀티 플레이어 능력이다. 본인이 서 있는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인지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경기 상황은 계속 바뀐다. 멀티 능력이 있으면 이 위치에서는 미드필더, 이 위치에서는 풀백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걸 인식하고 그에 맞는 플레이를 한다. 그 다음은 기동력이다. 많이 뛰어야 한다. 내 축구는 스위칭이 많다. 뛰지 않으면 어렵다. 공을 잡아 두고 공간을 찾기보다, 그대로 밀고 나가면서 전체적인 팀 속도를 올려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기동력 있는 선수를 원한다. 힘이 없거나 왜소한 건 크게 중요하진 않다. 경기 중에 키 큰 선수가 필요할 때가 있지만 그것보다는 멀티 능력, 기동력, 그리고 기술을 지닌 선수를 원한다.  


- 오후성도 그런 관점에서 데려왔나?
프로 5년차 선수다. 동계훈련 당시 기준으로 우리는 김종우가 있었지만(※ 1월 말 포항으로 이적) 가짜 9번 유형으로 쓸 수 있는 선수를 더 원했다. 광주가 완성된 선수를 데려올 형편은 아니다. 부족하지만 가능성 있는 선수를 검토하다가, '오후성은 지금 어떤 상황이지?' 싶어서 알아봤다. 처음 대구와 접촉했을 때 언급된 이적료가 우리 예상보다 높았다. 1년 뒤면 FA가 되는 선수고, 대구의 플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으니까 시간을 끌수록 협상은 우리에게 유리하겠다고 봤다. 3월까지 협상을 끌고 오면서 이적료를 낮춰 절충안을 봤다. 대구의 조광래 사장님은 선수 보는 눈이 좋다. 신인 선수 10명을 뽑으면 그 중 3명은 크게 성공한다. 오후성이 5년 간 대구에서 뛰었다는 건 이 선수가 좋은 걸 갖고 있다는 반증이다.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갖고 있는 기술이 있다. 잘 뛰고, 스피드도 있다. 우리 팀에 맞다고 봤다.


- 보통 지도자들은 높은 레벨, 그러니까 각급 대표팀에서 상위권 팀에서 검증이 된 선수가 좋은 선수라 판단하고 그들을 데려오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이정효 감독은 반대다. 광주가 그런 선수를 데려오긴 쉽지 않지만, 이번 겨울에도 수준급 선수를 데려올 수 있음에도 구단에 그 돈으로 본인이 데려오고 싶은 선수 3~4명을 요청한 걸로 알고 있다.
구단에서 제안한 선수는 포르투갈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였다. 기량은 정말 좋았다. 우연히 합리적인 비용으로 나와 우리 리스트로 들어왔다. 처음엔 나도 데려오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외국인 선수를 5+1 꽉 채워서 쓰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구단에서는 원하면 해주겠다고 했지만, 내가 그 돈으로 다른 선수를 몇명 더 데려오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조합적인 면에서 국내 선수가 필요했다. 손이 맞아야 박수도 나온다. 4~5월이 지나면 상대가 우리에 대한 대응도 할 거고, 여름에 돌입하면 경기 수도 많아진다. 같은 비용이면 로테이션을 돌릴 인원을 확보하는 게 더 낫겠다 싶어 김한길, 이강현, 김경재, 오후성을 영입했다. 


- 그 선수들에게 실례되는 발언을 하려는 건 아니다. 광주는 작년에도 그렇고 승격한 올해도 그렇고 1부 리그 기준으로 백업에 가까운 선수들 중심으로 영입했다. 일부러 그런 선수를 데려와 보란듯이 그들이 숨은 진주임을 자신의 축구 안에서 증명하고픈 욕구이 숨은 거 아닌가? 
나도 성장하고, 선수도 같이 성장했으면 좋겠다. 내가 선수 생활을 할 땐 솔직히 공을 차는 것만 배웠지, 전술적으로 배운 게 없었다. A라는 선수가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주변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되는데, 공만 주고 알아서 풀어 나가라고 하면 딱 가진 레벨의 기술 밖에 못 보여준다. 김종우를 예로 들어보자. 종우는 패스 능력이 좋지만 1대1 돌파하는 게 힘들다. 그 장점을 살리려면 2-3명의 동료가 옆에서 움직임으로 도와주면 된다. 그걸 위해 전술적인 짜임새가 필요하다. 그 과정을 통해 선수가 자신감을 갖고 더 좋은 플레이를 하며 성장한다. 그러면 적절한 타이밍에 내가 전술적 요구를 추가한다. 마크하는 선수를 벗기기만 하면 더 좋은 상황이 되는데 왜 빨리 주려고만 하느냐. 그렇게 다음 숙제로 들어간다. 풀백 보는 선수들에겐 그런 얘기를 한다. 네가 터치를 받는 위치와 각도만 바꾸면 막으려는 선수가 감당해야 할 수비 공간이 많아진다. 그러면 공을 줄 수 있는 선택지가 훨씬 많아진다. 드리블도 가능해진다. 앞이나 옆에서 너를 위해 움직이는 동료들이 만든 공간을 잘 살리려면 자신의 선택 하나만 바꾸면 되는 거다. 그런 것이 바뀌면 팀 전체 속도가 올라간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선수가 잠재력을 보여주면 나도 희열을 느낀다. 공을 차려고만, 또 받으려고만 하는 축구에 익숙한 선수들이 광주에 와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고 얘기할 때 당연히 기분이 좋다. 


- 뚜껑을 열기 전까지 걱정은 안 했나? 정말 이 스쿼드로 1부 리그에서 감독이 하고픈 축구를 펼칠 수 있을까 하는.
나도 사람이니까 걱정은 한다. 근데 내 생각은 그렇다. 왜 걱정만 하느냐. 이게 안 됐을 때 어떻게 할 건지 고민하는 게 낫다. 문제가 생기면 고민해서 다른 좋은 방법을 찾는 게 인생의 바른 길이다. 내가 내 축구를 하는데 주변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거에 신경쓰지 말고 갈 길 가야 한다. 작년에도 그랬다. 광주가 언제까지 저렇게 잘 나가겠느냐, 여름엔 떨어질 거다. 선수들한테 걱정하지 말자고 했다. 우리는 안 떨어질 거니까. 걱정보다 고민을 하자고 했다. 


- 다른 유형의 걱정은 안 했나? 가령 안익수 감독을 만나면 어쩌냐고 걱정하는 시선은 주변에 없었나? A매치 휴식기에 K리그 감독 간담회가 있어서 만났을텐데?
그날 안 감독님이 안 오셨다. (※FC서울 관계자는 간담회가 골프를 겸하는 자리였는데, 골프를 치지 않는 탓에 안익수 감독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내 표현이 과했던 건 인정한다. 하지만 사과 의사를 전하기 위해 연락을 취했고, 직접 되지 않아 주변 지인을 통해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거기에서 더 뭘 해야 하나 싶다. 내가 후배이긴 하지만 경기장에서는 감독 대 감독으로서 경쟁하는 관계다. 안 감독님을 만나는 걸 걱정하고 앞으로 계속 부딪히는 것에 굳이 부담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축구 외적으로는 당연히 예의를 갖추고, 선후배 혹은 사람 대 사람의 관계로 대해야 한다. 그러나 축구 내적인 부분에서는 대등한 관계로 거리낌 없이 마주하고 승부를 위해 경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사실 당사자 간의 문제보다 주변의 반응에 더 신경 쓰이는 경우가 많다. 내가 어떤 이미지로 보일지도 걱정될 테고. 
그런 부분은 신경 안 쓴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분명하면 거길 가야 한다. 매일 상대하고, 함께 일해야 하는 사이라면 나로 인한 문제나 어색함 관계를 해소하는 데 시간을 쓸 거다. 안익수 감독님과는 1년에 경기장에서 3~4번 볼 거다. 그렇게 뵙는 게 아마 끝일 거다. 내 이미지가 어떻게 보여지고, 사람들에게 평가 받느냐의 본질은 경기장에서 우리 팀이 보여주는 경기력 방향에 달렸다. 그 본질에 더 집중하고 싶다. 


- 그때 말한 '저런 축구'는 과연 어떤 의미였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열린 표현이었다. 
나는 우리 팀, 우리 선수가 가장 소중하다. 그건 안익수 감독님과 서울 선수, 팬도 같은 입장이었을 거다. 우리 팀이 잘한 것과 못한 것을 분석하고, 성장시키는 게 중요하다. 사실 서울에 대해 여러 의미를 담아 했던 말은 아니었다. 해석은 해석하려는 입장에 따라 다양하게 나온다. 남이 저를 어떻게 평가할 지 정말 기대 안 한다. 나는 좋은 축구를 하고 싶고, 거기에 몰두하고 싶다. 나한테 영감을 얻어서 상대가 우리 것을 응용해도 된다. 그 정도로 좋은 축구를 하고 싶다. 그걸 통해 함께 하는 선수들이 더 좋은 기회를 얻고, 대우를 받는 성장을 하길 바란다. 


- 최근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너무 감명 깊게 봤는지 그 대목에서 강백호가 생각났다. 이미 쫓아가기 힘들 정도로 점수 차가 벌어졌는데 전국 최강팀을 이기겠다고 경기 중 선언했다. 모두가 그걸 보며 어이없어 하지만 강백호는 그렇게 팀의 목적의식과 동기부여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나도 슬램덩크를 좋아한다. 여러번 읽었다. 내가 읽은 책 중에 <강백호처럼, 영광의 순간을>이란 자기계발서가 있다. 강백호를 중심으로 슬램덩크에 나온 스포츠 심리, 리더십, 멘탈 케어 등을 분석한 책이다. 서울전 때의 그 발언에는 우리 팀, 우리 선수들에게 내 목표가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 더 담겨 있었다. 동시에 내 스스로의 지향점도 더 분명해졌다. 그런 발언까지 했는데 우리가 경기 종료 시까지 계속 골을 노리는 공격적인 축구를 하지 않으면 더 큰 비웃음을 산다. 다음 서울 원정에서 우리가 지키는 축구를 하면 서울 팬들이 더 큰 비판을 하지 않겠나. 우리 광주 팬들도 부끄러울 것이다. 그러지 않도록 나도 강백호처럼 질러버린 거다.  


사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가족이 부산에 있는데, 쉬는 날 직접 운전해서 부산까지 가는 3시간이 아깝다. 그 시간에 축구적인 다른 걸 할 수 있을텐데… 축구에 대한 고민을 하면 즐겁다. 휴식기에 영남대와 연습경기를 했다. 상대가 처음엔 5백을 쓰다가 나중에는 수비라인에 6명을 세워 아예 하프스페이스를 싹 막았다. 그걸 보며 즐거웠다. 인천을 상대로 5골을 넣었으니 앞으로 상대가 우리 하프스페이스를 숫자로 지울 수도 있다고 봤다. 거길 공략해야 하는데, 어떻게 풀까... 고민의 잔상이 남아 잠이 안 왔다. 어떻게 공략할까, 어떻게 풀어볼까. 그렇게 남의 이야기가 내 머리 속에 들어올 겨를이 없을 정도로 내 일로 고민해야 한다. 


- 서울이 광주전을 준비하면서 상당히 치밀하게 대비했다고 한다. 박동진의 추가골은 광주를 상대로 득점하기 위한 따로 준비한 맞춤 전술이었다. 달리 생각하면 서울의 그런 축구는 광주를 인정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뒤쪽으로 빠지는 크로스를 박동진이 마무리한 장면은 우리도 이틀 뒤 분석을 할 때 우리 공격수들이 배웠으면 하는 장면으로 공유했다. 축구란 게 그렇다. 계속 상대의 좋은 것을 훔쳐와서 내 것으로 만들며 발전한다. 서울 선수들이 다음에 우리를 만나면 내용적으로도 눌러주겠다고 덤볐으면 좋겠다. 서울도 안익수 감독님 부임 후 지난 2년 간 좋은 축구를 했다. 작년에 포항 김기동 감독님과 서울 안익수 감독님 축구를 가장 많이 챙겨봤다. 다음 맞대결에서는 공격적이고 치열한 승부로 서로 겨루고 싶다.


- 지도자의 꿈을 꾸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
대학과 프로 동기인 (안)정환이를 보면서 지도자에 대한 생각을 본격적으로 가졌다. 죽었다 깨어나도 저 선수의 기술을 따라가긴 어렵겠다 싶어 선수로서 절망했다. 그러면 내가 이런 선수를 지도할 수 있는 위치로 가면 어떨까 싶었다. 그때부터 감독의 꿈을 꿨다. 지도자에 대한 흥미도 있고, 재능도 있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감독님이 내게 훈련을 맡긴 때가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훈련 프로그램이란 걸 짜봤다. 프로 2년차 때는 감독, 코치에게 대들었다. 1998년 입단하고 1경기도 못 뛰었다. 그 시즌 선수단이 29명이었는데 내가 유일하게 못 뛴 선수였다. 1999년 초에 호주로 동계훈련을 갔는데 거기서도 연습 경기 출전 기회가 한 번도 안 왔다. 기회의 공정함이 없다는 것에 코칭스태프에게 항의했다가 끌려가서 코치님에게 맞았다.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꼴통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 지도자로서 중요한 소신 하나를 갖게 됐다. 어떤 선수든 편견 없이 기회를 주려고 한다. 물고기를 잡느냐, 못 잡느냐는 선수의 몫이지만 잡는 방법은 알려주고, 잡을 기회는 줘야 한다.


- 한국 축구의 전반적 성향은 리액션이다. 상대가 잘하는 것을 막는 데 반응하고, 대응하는 것이 익숙하다. 주도적이고, 창의적으로 상대를 무너트리며 결과를 쟁취하는 축구는 드물다. 그래서 작년과 올해 광주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 같다. 
친한 친구가 있다. 축구에 대한 얘기를 오랜 시간 나눠왔다. 고등학교 감독인데, 최근 축구와 관련해서는 손절했다. 아마추어 축구에서 고민을 안 해 보니 하는 얘기라고 내 주장을 계속 반박했다. 나는 그 반박이 모순이라고 봤다. 선수가 뛰지 않는 건 지도자의 문제다. 열심히 하게끔 만드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다. 선수가 훈련장, 경기장에 들어가서 열심히 하려면 재미있어야 한다. 하고 싶어서 움직이는 게 진짜 노력이다. 프로고, 아마추어고 재미있으면 뛰어다닌다. 시간을 더 만들어서 노력한다. 남의 것을 쫓아다니며 뺏는 건 재미없다. 내가 공을 소유하고 주도하면서 상대를 골탕 먹이고 골을 넣는 게 재미 있다. 답은 공격이다. 수비의 관념도 우리가 공격을 통해 상대가 따라오게 만들면 자연스럽게 안정된다. 선수들도 결국은 공격을 위한 주도적인 경기를 할 때 더 잘 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내 축구의 철학이 공격, 골을 넣기 위한 축구로 정립됐다. 


아주대 수석코치로 처음 지도자를 시작했을 때는 훈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물론 훈련은 중요하다. 그런데 당시에는 전술적 고민이 적었다. 훈련한 내용이 경기장에 나오는 게 1번이라고 생각했던 시기다. 프로에 와서 남기일 감독님과 함께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경기장에서 좋은 게 나올 수 있는 훈련이 중요하다. 말로만 하는 연습이 아니라, 경기장에서 나올 수 있는 상황을 가상해서 훈련 프로그램을 계속 만든다. 예를 들어 하프스페이스 공략을 해야 한다면, 상대의 특징을 분석하고 어떤 훈련으로 공략할까 하며 프로그램을 만든다. 제주에서 남기일 감독님을 통해 전술적인 정립을 하고, 훈련 후 조광수 코치(울산), 마철준 코치(대구), 지금도 함께 하는 박원교 분석관과 대화를 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내 걸로 쌓았다. 공격을 잘하기 위한 결론은 공간을 활용하는 거다. 거기에 대한 방법을 찾으면 여러 상황에 적용할 수 있다.


코치로 긴 시간 쌓은 경험도 소중했다. 뒤에서 보다 보니 정작 감독님들이 못 보는 게 보였다. 며느리들이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 하면 두 종류로 갈린다고 한다. 나는 시어머니 되면 저렇게 안 해야지, 혹은 그 시어머니를 따라가는 타입. 처음엔 저렇게 안해야지, 저렇게 해야지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이렇게 해 보겠다. 공간을, 숫자를, 다른 접근 방식으로 내 틀을 만들어 한국 축구의 전술적 사고를 한번 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하고 노력했다. 


- 축구는 그라운드 위에서 11명과 11명이 싸우는데 다양한 공간에서의 수적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팀이 유리해지는 추세다. 광주는 지금 K리그에서 그걸 잘 하는 팀 중 하나다. 
동료 상황을 잘 확인하라고 한다. 압박 상황인지, 오픈 상황인지. 오픈 상황도 어느 정도인지. 압박을 당하지만 그 앞에 공간이 있다면 그걸 뚫기 위해 도전해야 한다. 사이드에 엄지성이 혼자 있는데 나와서 공을 받았다고 가정하자. 상대 풀백이 따라오는데 뒤에 공간이 있다면 바로 주지 말고 받아서 도전해야 한다. 왜냐면 뒤쪽 공간을 거머쥐면 본인과 팀이 할 수 있는 선택지가 굉장히 많아진다. 그때는 굳이 동료가 도우러 갈 필요도 없다. 동료가 가는 게 오히려 지성이의 공간을 줄여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반면 지성이한테 열릴 공간이 적은 상황에서 상대 풀백이 압박해 오면 동료가 빨리 붙어서 공을 받아줘야 한다. 그런 상황 인식을 훈련에서 계속 강조한다.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나의 움직임을 통해서 동료가 공간을 더 활용할 수 있는지, 상대 선수를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지 생각을 하며 움직여야 한다.


지금 우리 팀에서 상황 인식 능력이 가장 좋은 선수가 정호연이다. 인천전에서 이희균이 득점을 하는 과정을 보자. 공을 중심으로 보면 패스를 해 준 엄지성, 그걸 잘 마무리한 이희균에 초점을 맞추지만 나는 공을 갖고 있지 않은 정호연의 움직임을 가장 칭찬했다. 공과 상관 없었지만 하프스페이스에서 호연이가 침투하다 빠지며 멈춘 그 움직임 하나로 지성이는 이희균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얻었다. 거기다 호연이 때문에 인천의 오반석과 신진호가 쏠렸다. 비디오 분석을 하면서 우리 팀 선수들에게 저 장면에서 가장 잘 한 선수가 누구냐고 질문했다. 오후성이 정호연의 움직임을 얘기하더라. 그 얘길 듣고 후성이도 우리 팀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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