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삼투펌프’로 인슐린 투약 걱정 뚝…“인공 췌장에도 도전한다”

고석현 2023. 4. 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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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창업 인터뷰<45> 신운섭 케어메디 대표
케어메디 창업자 신운섭 서강대 교수가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구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당뇨병에 대한 인류의 첫 번째 기록은 기원전 1552년 쓰인 최고(最古) 의학서 『에버스 파피루스』다. ‘이 질병을 앓는 사람은 소변을 많이 보고 극도의 갈증을 보이며 매우 마른 체격이다’고 설명돼 있다. 하지만 치료의 실마리를 찾은 건 20세기에 들어서다.

1921년 캐나다 토론토대의 한 실험실, 프레더릭 밴팅 교수는 개를 실험동물로 삼아 당뇨병과 췌장에서 분비되는 물질의 연관성을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수십 차례 실험 끝에 ‘특정 물질’ 주입만으로 췌장 없이 70여 일을 생존하는 데 성공했다. 이 물질이 바로 췌장에서 분비된다고 규명된 오늘날의 ‘인슐린’이다. 이후 인슐린 체내 주입은 당뇨병 치료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인슐린 투약에 새 지평 열었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차례 주삿바늘을 몸에 찔러 인슐린을 투약해야 하는 불편함과 공포감이 있다. 최근엔 벨트형이나 웨어러블형 등 주사의 단점을 최소화한 인슐린 펌프가 확산하고 있다. 신운섭(61) 서강대 화학·융합의생명공학과 교수는 ‘전기삼투펌프’ 기술을 활용해 웨어러블형 인슐린패치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2015년 케어메디를 창업한 뒤 2021년 사업을 ‘피벗’(사업 모델 전환)하면서다.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난 신 교수는 “성공한 선배 창업자들이 롤모델이 됐다”며 아담 헬러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 명예교수, 광운대 교수 출신으로 아이센스를 창업한 차근식 회장과 남학현 대표 등을 꼽았다.

헬러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무통 혈당 측정 시스템으로 1996년 테라센스를 창업해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시킨 인물이다. 2004년 미국 애보트가 이 회사를 12억 달러(약 1조4000억원)에 인수했다. 차 회장과 남 대표는 광운대 교수 시절 개발한 토종 혈당 측정 기술로 2000년 창업해 지금도 성공적으로 기업을 이끌어오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인 아이센스의 시가총액은 4810억원에 이른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고정관념 극복하니 신물질 가능성 열려


배추를 소금에 절이면 배춧속 수분이 소금이 있는 바깥쪽으로 빠져나오는 것처럼, 농도가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용매인 물이 이동하는 현상을 삼투 현상이라고 한다. ‘전기삼투펌프’는 전압의 차이에 따라 일어나는 삼투 현상을 이용해 유체를 이동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신 대표는 ‘전기삼투펌프’ 신기술을 발명한 것에 대해 우연을 잘 관찰한 결과라고 말한다. “전기삼투현상은 이미 200년 전부터 고안된 개념이에요. 상용화를 위한 노력이 1980년대부터 이어져 왔지만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 연구년을 맞아 찾은 오스틴대에서 헬러 교수와 약물 펌프에 대한 공동 연구를 할 때 전기삼투펌프의 진가를 발견했습니다.”

신 대표는 “다른 연구팀에서 제공하기로 한 펌프가 기일이 지나도록 오지 않아 여러 펌프를 직접 연구하기 시작했다”며 “그중 하나가 전기삼투펌프였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전기삼투펌프는 일반적으로 가장 안정된 백금을 전극으로 사용해왔는데, 전기분해처럼 수소와 산소 가스가 발생하는 게 문제였다”며 “‘전극을 꼭 백금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우연한 생각이 들어 전극 물질을 바꿨더니, 가스 발생 등의 문제가 해결됐다. 전기화학자가 처음으로 이 분야의 난제를 해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듬해 여름 한국에 돌아와선 전기삼투펌프 기술을 안정화하고, 응용 가능성을 모색했다. 첫 기회는 2013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수주한 ‘체내 이식형 약물펌프’ 연구개발 과제였다. 신 대표는 “체내 이식형 약물펌프는 체내에서 하루이틀이 아니라, 수 년간 성능이 유지돼야 하므로 안전성과 내구성이 중요하다”며 “펌프 기술력을 안정화하고 특허 포트폴리오를 확보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식형 펌프’로 창업했으나 곧바로 위기


신 대표는 이를 상용화하기 위해 창업을 결심하고, 2015년 케어메디를 세웠다. 현재 기술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주은화 박사, 재무·운영을 담당하는 황선주 부대표 등 두 제자와 함께였다. 그렇게 안정화한 기술을 제품화하려던 시점에 위기가 닥쳤다. 그는 “투자자들이 체내 이식형 의료기기는 위험성이 크고, 시장이 작다고 판단해 결국 펀딩에 실패했다”고 전했다.

그때 또 ‘우연의 순간’이 찾아왔다. 이강세 전 아이센스 기획·영업 상무가 “기술을 활용해 인슐린펌프를 개발해 보라”고 제안하면서다. 기존 제품은 대부분 피스톤 방식으로 인슐린을 넣어 주입량 오차가 크다는 게 이유였다. 케어메디는 2021년 그의 제안에 따라 웨어러블형 인슐린패치를 개발해 상용화하기로 사업 방향을 바꿨다.

혈당측정기 분야 국내 시장 1위 기업인 아이센스도 웨어러블형 인슐린패치의 가능성과, 연속혈당측정기(CGM) 제품과 함께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고 케어메디에 투자했다. 케어메디와 아이센스는 제품 제조 및 판매, 신제품 개발 등에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연구개발(R&D) 기반으로 창업한 ‘선배’ 기업이 후행 기업을 끌고 밀어주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게 된 것이다.


선·후배 기업 밀고 당기고 ‘선순환’


“직접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 조직까지 갖추는 쉽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판단해 아이센스에 도움을 요청했어요. 두 회사가 손잡은 덕분에 제품 개발부터 양산을 염두에 둘 수 있게 됐어요. 아이센스는 자사의 공장장을 사외이사로 파견해줬죠. 좋은 파트너를 만난 게 큰 힘이 됐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게 웨어러블 인슐린패치 ‘케어레보’다. 신 대표는 “당뇨병 환자들에겐 정확한 시간에 정량의 인슐린을 투입하는 게 중요한데, 전기삼투펌프 기술을 활용해 마이크로리터(μL·100만 분의 1L) 단위의 인슐린까지 정확하게 주입할 수 있다”며 “특히 환자들이 계속 착용하고 생활해야 하므로 크기와 부피가 중요한데, 기존 제품보다 작고 가벼우면서도 인슐린 탑재 용량을 1.5배 늘린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인슐린 투여량을 조작할 수 있으며, 패치는 한 번에 4일간 사용 가능하다.

케어메디가 만든 웨어러블 인슐린패치 '케어레보'는 마이크로리터단위의 인슐린 정량을 투약할 수 있으면서도, 경쟁 제품보다 가볍고 작은 게 특징이다. 장진영 기자

세계 시장 2027년께 2조 규모로 성장


시장조사업체 비즈니스리서치컴퍼니에 따르면 세계 인슐린패치 펌프 시장은 지난해 11억8000만 달러(약 1조5600억원)에서 2027년 18억3000만 달러(약 2조4100억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익명을 원한 한 투자사 관계자는 “웨어러블 인슐린펌프는 현재 미국 기업인 인슐렛이 사실상 독점하는 시장이라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남학현 아이센스 대표는 “인슐린펌프는 약품과 펌프·전자기기가 어우러진 제품이라 구조가 복잡하고 가격이 비싸다”며 “케어메디 제품은 구조가 간단해 제조비용도 저렴하고, 두께·무게도 얇고 가벼워 다른 제품에 비해 환자 사용성 측면에서 이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아이센스의 CGM으로 혈당을 측정하고, 정확한 프로그래밍을 통해 케어메디의 인슐린패치로 환자의 몸에 인슐린을 자동으로 공급해주면 췌장이 망가진 사람도 정상적 생활이 가능해진다”며 “향후 인공췌장 시스템(APS)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협력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 회사에 투자한 에스티팜의 김경진 대표는 “전기삼투펌프 기술은 정량의 약물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으면서도, 소형화가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라며 “향후 항암제·신약 등을 자동 투약하는 제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케어레보는 현재 국내·외에서 인허가 절차를 진행 중이며, 이르면 올해 말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케어메디 창업자 신운섭 교수가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정년 없어…50대 연구자도 채용”


신 교수는 “후배 교수들이 종종 창업 상담을 요청하면 ‘그 기술이 정말 자신 있느냐’고 반문한다”며 “기술을 적합한 회사에 넘겨 함께 발전시키는 방법도 있고, 기술을 일회성으로 이전해 돈을 버는 방법도 있다. 사실 대학교수가 창업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성과를 위한 연구와 사업을 위한 연구는 엄연히 다르다고 말한다. 특히 사업을 위한 특허기술은 연구 특허기술과 차이가 있다고 강조한다. 신 교수는 “논문 쓰는 건 석·박사 때 많이 훈련을 받았는데, 그 기술이 특허화가 될지 상용화가 될지는 교육받은 적이 없어 교수들이 안이하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창업 활성화를 위해선 ‘인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신 대표는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필요한데, 좋은 인력 찾는 게 너무 어렵다”며 “또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인건비 지원이 절실한데, 정부가 연구개발 자금으로 인건비까지 지출할 수 있도록 하면 회사가 자리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회사는 정년이 없어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연구하실 분이면 환영합니다. 우연히 50~60대 경력자를 채용하게 됐는데, 회사가 빠르게 자리 잡는 계기가 됐습니다. 스타트업이 50~60대 경험자들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인력 풀을 만들어준다면, 일자리 창출은 물론 산업 생태계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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