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나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렸다"

김은영 2023. 4. 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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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봉 작가의 <카지노 베이비> 를 읽고

[김은영 기자]

 책 <카지노베이비>
ⓒ 한겨레출판
첫 문장부터 이미 강력한 서사를 함축하는 이야기에 매료되지 않는 건 반칙이다.
 
'아빠는 나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렸다.'

강성봉 작가의 <카지노 베이비>는 그렇게 매력적인 한 줄로 시작한다.

아름다운 소설 캐릭터의 향연 속에서 

세상에! 아버지란 사람이 자식을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리다니. 패륜을 둘러싼 씁쓸하고 어둡고 축축한 한 아이의 불행한 이야기로 추측한 건 큰 오산이었다. 불행한 시작이 어떻게 아름다운 여정으로 항해해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사막에 꽃이 피어나듯, 그늘 속을 데우는 따스한 볕듦 같이 이 이야기는 나의 예상을 보게 좋게 뒤집으며 쌉쌀하고 온화한 사랑스러운 한 편의 서사를 성취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하여 피폐된 자본주의의 그늘 속에서 한 떨기 고즈넉한 수선화를 피워낸 게 아닌가. 그 꽃은 눈과 감정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카지노 베이비>는 탄광촌에서 카지노 마을로 변해버린 '지음'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전당포에 맡겨진 한 아이가 새로운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성장해 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총 3장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하루에 한 장씩 아껴 읽었다. 각 장마다 배치된 아름다운 문장들은 건조해진 나의 마음의 강에 흘러들어 봄바람처럼 살랑살랑 감정을 흔들었다. 이야기 사이사이 개울처럼 흐르는 문장들은 얼음이 녹으면서 흐르는 밝고 경쾌한 물소리처럼 작가의 맑고 투명한 정신세계를 고스란히 투영해 주고 있는 듯했다.

이 소설의 즐거움은 단연코 쇠락해가는 공간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캐릭터들의 향연일 것이다. 뼛속 시린 인생 경험을 한 전당포 주인 할머니는 인생의 깊이를 훤히 꿰뚫고 있는 혜안을 지닌 인물처럼 여겨졌고, 카지노 베이비 동하늘의 엄마가 된 그의 딸은 순진무구하면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인물처럼 느껴졌으며, 동하늘의 삼촌이 된 그녀의 오빠는 핵심적인 발언을 함으로써 실패한 인물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했다.

그 밖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 군상들은 탄광촌이었다 랜드가 들어선 땅에서 저마다 생동감 있고 변화무쌍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의 주인공, 카지노 베이비는 옆에 있으면 안아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아이다. 다른 독자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어른의 미래는 어린이라는 말을 새삼 느끼게 해 준 인물이 되었다.

더 실제 같은 세계를 창조해나가는 이야기 

읽는 내내 작가의 성실함에 감탄한 부분이 많다. 특히 카지노에서 행하는 카드 게임의 이름들과 종류, 규칙들에 대한 언급은 이 글을 쓴 사람은 카지노에 많이 다녔나봐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지음이라는 공간의 생생함에 역시나 정선이나 사북 이런 곳에 직접 살아봤나봐, 라는 생각을 하게 했으며, 무엇보다 작가 자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이야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생동감 있는 이야기는 독자인 나를 그곳, 지음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 속에 금새 섞어 놓았다.

책의 마지막에 이어진 작가의 말을 통해 예상대로 작가의 자료조사는 엄청난 품과 노력, 연구의 산물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성실함이 주인공 동하늘의 반듯함과 그 결을 같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 글은 글쓴이와 같은 그늘을 공유함이 틀림없다.

강성봉 작가님은 시작과 끝에 매우 강한 분인 것 같다. 첫 문장에 매료되어 소설을 읽게 하더니, 작가의 말 마지막 단락의 문장들은 다시 한번 심장을 움켜잡게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이야기는 독자들이 완성합니다. 뻔한 수사가 아니라 책을 읽는 한 명의 독자로서 또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서 아는 사실입니다. 하나의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을 깊게 연결합니다. 이 책은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음을 믿고, 그 이야기를 발견하고 사랑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의 것입니다.

나는 실로 오랜만에 독자로서 <카지노 베이비>라는 이야기를 완성하고 주인공 동하늘과 깊게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 나만의 이야기가 있음을 믿고, 나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사랑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이러한 감동은 작가님의 인터뷰 글을 찾아 읽는 행동으로 이어졌는데, 마지막까지 나의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 말은 바로 이것이다.

"뭔가를 창작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삶 자체를 창조적으로 만들어가는 게 더욱 중요하단 얘기를 마지막으로 하고 싶어요." (<월간인물> 인터뷰 중에서)

나는 책장을 덮은 이후에도 <카지노 베이비>라는 세계에서 여전히 하늘이와 하늘이 엄마, 삼촌은 할머니가 남긴 땅 위에서 그들의 삶을 창조적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들의 다음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좋은 소설이란, 픽션이라는 사실을 뛰어넘어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독자를 그 창조의 세계 한복판에 데려다 놓고 그들과 함께 숨쉬게 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준 강성봉 작가님께 감사하며 심사위원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독자로서 그가 더욱 정진하시길 바란다. 그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1인 추가를 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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