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운영하던 그가 강화도 천문학 강좌 열기까지
[최진섭 기자]
종종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자택에 원두막천문대를 설치하고 별을 관측하는 이광식(72) 작가도 그런 '상수' 중 한 명이다.
이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2022년 5월 <강화뉴스> 창간 10주년 축하 모임에서다. 그는 이날 특강을 했는데, 천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통찰과 개안(開眼)'임을 강조하면서 조르주 르메트로 신부의 말을 소개했다. 르메트로 신부는 빅뱅우주론을 제창한 것으로 유명하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두 개가 있다. 나는 두 개의 길을 다 가기로 결심했다."
신부이기에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지만 천문학자이기에 과학의 법칙도 추구하는,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두 개의 길을 통해 진리에 이르겠다는 말로 이해됐다. 하늘과 땅의 이치는 동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게는 참신한 발상으로 다가왔다.
▲ 강화도 외포리 퇴모산 중턱 이광식 작가의 집에는 '원두막천문대'가 있다. 이곳에 10인치 돕소니언 반사망원경을 설치한 그는 수시로 별을 관측한다. |
ⓒ 이광식 |
"출판사를 운영하던 어느 날 퇴근길에 아파트 베란다에 달린 상가집 '조등'을 목격했어요. 그 순간 '정신없이 일하다가 어느 날 조등 하나 걸고 끝나겠구나, 억울하겠다'라는 생각을 했죠. 그러다 몇 년 후 교통사고로 죽는 꿈을 꿨는데, 꿈에서도 죽으면서 '내 이럴 줄 알았다'라며 후회하더라고요. 그 꿈이 얼마나 생생한지 이튿날 아침에 바로 결심했죠. 늦기 전에 별 보며 우주를 사색하다가 죽자고. 그리고 바로 실행에 옮겨 아내와 함께 집을 보러 다니다 강화도 이곳으로 왔어요."
강화도는 그 이전부터 이 작가가 좋아하는 섬이었다. 바다와 섬을 좋아했던 그는 자가용이 없던 때에도 수시로 신촌에서 버스를 타고 강화도를 다녔다. 승용차가 생긴 뒤에는 가족과 함께 새를 보러, 꽃을 보러, 심지어 북상하는 태풍을 맞이하기 위해서 강화도를 찾았다.
빛 공해가 적은 퇴모산 중턱에 집을 구한 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 시간을 내서 강화도로 별을 보러 다녔다. 그러다 2006년부터는 아예 출판사를 정리하고 이사했다. 흑자 내던 출판사라 매각도 쉽게 됐다. 그가 운영하던 가람기획은 <한국사 100장면>, <미국사 100장면> 등의 100장면 시리즈만 40종을 낸 꽤 유명한 출판사였다.
이 작가의 2층 서재엔 천문학에 관련된 서적 수백 권이 꽂혀 있는데, 그중 10여 권은 그가 직접 쓴 책이다. 강화도에서 별을 관측하며 10년 동안 100여 권의 천문학책을 독파한 그는 한편으로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대부분의 천문학 도서가 어렵고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문학을 전공하고, 출판을 업으로 살아온 그는 쉽고 흥미로운 천문학책을 직접 쓰기로 마음먹었다. '철학이 나는 누구인가 묻는다면 천문학은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다'라고 한 어느 천문학자의 말을 되새기면서 우주와 인간, 별과 인생을 함께 풀어나갔다.
▲ 이광식 작가가 쓴 <내 생애 처음 공부하는 두근두근 천문학>(2013). 그는 10여 권의 천문학 교양 도서를 저술했다. |
ⓒ 더숲 |
"너희가 보는 저 별은 지금 저 자리에 없을지도 몰라. 우주는 너무나 넓어서 별빛이 지구까지 오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지. 만약 우리가 빛처럼 빠른 로켓을 타고 저 별에 다녀온다면 지구는 몇백 년이 흘러가 버렸을 수도 있단다."
어린 나이에도 형의 말을 듣고 지금껏 살아온 세계와는 너무나 다른 이야기에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그 느낌은 오래도록 소년 이광식의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동생에게 우주를 심어준 형 이동하는 나중에 신춘문예에 당선하고 소설가가 되었다.
누군가 온라인 천문잡지 하나 만들기를
이광식 작가는 70이 넘은 지금도 저술 작업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작년에만도 <슈퍼카 타고 우주 한 바퀴>, <잠 안 오는 밤에 읽는 우주 토픽>과 같은 단행본을 집필했다. 그리고 올해 안으로 <에피소드 천문학의 역사>(가제)를 펴낼 계획이다.
그가 천문학책만 쓰는 건 아니다. 2022년에는 <강화돈대 순례>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강화도에서 살면서 돈대 유적지에 관심을 갖게 됐고, 1년 동안 54개 돈대를 취재해 쓴 책이다. 이 중에 민통선 안의 10개 돈대는 이 작가가 최초로 소개한 것이다.
요즘 그가 바라는 꿈이 하나 있다. 누군가 천문학 잡지를 온라인으로라도 창간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가 운영하는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joand999)에 작년 이런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제 한국도 종이 잡지는 몰라도 온라인 천문잡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독지가가 나타나지 않고 있네요. 아쉽습니다. 예전에 비해 광고시장도 커졌고 천문인구도 늘어났으니까 승산이 있을 듯합니다. 돈 많은 우주 마니아나 별쟁이가 왕창 투자하든지, 펀딩을 하든지 '온라인 천문잡지' 하나 창간합시다."
출판사를 운영하던 이광식 작가는 1997년 <월간 하늘>이란 잡지를 창간해서 3년 동안 발행했으나 결국 종간했다. 당시만 해도 천문학 인구가 적고, 광고시장이 좁아서 잡지를 계속 발간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폴 고갱의 그림,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 2023년 4월 4일 강화읍 강화뉴스 교육장에서 우주 특강을 하는 이광식 작가. |
ⓒ 최진섭 |
두 시간 동안 이어진 강연에서 이광식 작가는 청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천문학 상식-빅뱅의 두 가지 물증, 만물의 근원은 수소, 별은 왜 빛나는가, 우주는 끝이 있나, 별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 등을 풀어놓았다. 강연 말미에 이 작가는 초등학생들이 자주 한다는 질문을 하나 소개했다. 그것은 "지구의 모래가 더 많을까요? 우주의 별이 더 많을까요?"였다. 이 질문에 관한 답은 무엇일까?
"호주의 과학자가 계산했는데, 지구상의 모래는 10의 22승이고 별의 개수는 10의 23승으로 10배 더 많은 것으로 나왔어요."
초등학생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두 번째로 많이 받는 질문은 '우주는 끝이 있나요?'라고 한다. 천문학에 있어서는 초등학생의 질문과 지천명의 나이를 지난 성인의 질문이 크게 다를 바 없다. 평생 땅만 보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 작가는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발밑만 보지 말고 눈을 들어 별을 보라. 호기심을 가져라"라는 말을 전한다.
이처럼 별을 가까이 하고 천문학 공부에 몰입한 사람의 인생관, 세계관은 뭔가 남다르지 않을까. 이광식 작가에게 '좌우명'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미국 천문학자 할로 섀플리의 "우리는 뒹구는 돌들의 형제요, 떠도는 구름의 사촌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 강화군 하점면 강서중학교는 별지기들에게 수도권의 별 관측 장소로 유명하다. 2018년 강서중학교에서 열린 천체관측대회. |
ⓒ 이광식 |
-기간: 4월 4일(화)부터 5월 2일(화)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30분~8시30분
-장소: 강화뉴스 교육장(강화읍 강화대로 431, 4층).
-교재: <내 생애 처음 공부하는 두근두근 천문학>(이광식 지음)
-신청 및 문의: 010-2760-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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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강화도의 지역신문인 <강화뉴스>에 기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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