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사망 육군 하사 사건... 납득 안 가는 법원 판결
[변상철 기자]
▲ 지난 2021년 9월 물놀이 중 사망한 조재윤 하사. |
ⓒ 조재윤 하사 유족 |
피해자를 이 사건 계곡에 데려가 안전과 구조에 대한 약속을 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다이빙하게 하였음에도 피해자 구조를 위한 장비의 준비나 안전조치 등 공동의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다만 이 사건의 공소 사실 중 '위력 행사 가혹행위'는 인정되지 않아 무죄가 선고되었다.
우리 아이는 물을 너무도 무서워했어요.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 때 수학여행 장소에 대천해수욕장이 포함되어 있어서 바닷물이 무서워 수학여행까지 포기한 아이예요. 그런 아이가 어떻게 자발적으로 물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군대에서 선임들이 가자고 하는데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어요. 한두 번 안 간다고 거절했지만 선임들이 가자고 하면 갈 수밖에 없잖아요. 위력에 의해 계곡에 가서 다이빙 한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죽기를 자초했다는 말밖에 더 되나요?
- 피해자의 유족 조00씨
피해자가 수영 못하는 것 알면서도
실제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보통검찰부 수사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 A, B가 피해자에게 물놀이를 제안했을 때 피해자는 "저, 방 청소해야 합니다"라며 거절했다. 그러나 피고인들이 재차 놀러 가자고 해 결국 승낙했다고 기록에 나와있다.
물놀이를 간 당일은 그저 쉬는 날이 아니었다. 군검찰의 기록에 따르면 사망 당일은 전투 휴무로 당시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주거지에서 '재택 휴무'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런데도 피고인들은 이런 원칙을 무시하고 물놀이를 감행해 피고인들뿐만 아니라 재택 휴무를 지켜야 하는 후임 하사관들에게까지 물놀이를 제안한 것이다.
피해자가 방 청소를 이유로 거절한 것은 바로 이러한 규정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고인 A가 작성한 진술조서에는 '피고인의 물놀이 제안을 피해자가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는 수사관의 질문에 피고인 A가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대답한 것으로 나와있다. 피해자의 물놀이 동행 결정이 임의적 자유 의사결정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1심 군사법원 공판에 따르면 사망 사고 이전에도 물놀이를 제안한 적이 있으나 이때도 피해자는 가지 않겠다고 거절했다고 한다(공판 조서에 의하면 사망 사고 당일 피해자를 데리고 가자는 A의 말에 피고인 B는 "절대 안 갑니다. 재윤이 이 XX도 물을 별로 안 좋아해서"라고 말했다).
결국 피해자가 선임의 수차례에 걸친 물놀이 제안을 뿌리치기 어려웠고, 이러한 정황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피해자를 계곡으로 데려갔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위력'의 개입이라 할 수 있다. 반장으로서 같은 팀의 팀장이었던 피고인 A 입장에서 보면 피해자는 업무상 지시, 복종 관계에 있는 후임이었다. 피해자로서는 피고인의 말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유족이 억울해하는 점이 또 있다. 피고인들은 피해자가 수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피해자의 안전을 위한 튜브나 구명조끼 등을 전혀 갖추지 않고 계곡으로 향했다는 점이다. 이 계곡은 이미 2014년에 물놀이 사망 사고가 발생했던 곳으로 피고인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물놀이 장소로 이동하는 입구에 물놀이를 금지하는 표지판과 현수막이 게시되어 있었다. 이들은 이를 무시하고 물놀이 장소로 이동했던 것이다.
수사 기록에 재윤이가 바위에서 물에 뛰어들기 전에 2분가량 머뭇거렸다고 되어 있어요. 수영도 한 번 못 해본 아이가 2분가량 머뭇거린다면 무서워서 뛰지 못한다는 걸 알고 뛰지 못하게 했어야죠. 그냥 '무서우면 뛰지 마라', '싫으면 뛰지 마라'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요. 친구도 아니고 상관이 '싫으면 뛰지 마라' 이렇게 말한다고 뛰지 않을 후임이 어디 있겠어요. 후임 입장에서는 '싫으면 뛰지 마라'는 그냥 비아냥으로 들리지 않겠어요?
2014년도에 같은 장소에서 사람이 죽고, 2개월 전에도 물놀이에서 하사가 죽어서 물놀이 사고 예방 교육도 받았고, 물놀이 금지구역이라 깊은 곳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면서 그냥 수영도 못 하고, 물을 무서워하는 아이를 그냥 쳐다보고 있었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 유족 조00씨
수사 기록에 따르면 평소 피고인 A는 욕설을 섞어가며 대화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 피고인 A가 피고인 B에게 물놀이를 제안하며 피해자를 데려가자는 말을 할 때도 피고인 A는 '이 XX(피해자)는 가기 싫어할 거다'라고 말했고, 물놀이 장소로 이동하는 차량 내에서도 '야 시X, 재윤이도 튜브 안 끼고 한다, 이 XX 탐탁지 않네'라는 욕설의 대화를 했다.
1심 공판에서 평소에도 대화 중 욕설을 자주 쓰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피고인 A는 "즐거운 상황이나 들떠 있는 상황에서 (욕설을) 한다"라고 답변했다.
결국 후임이나 상대방의 상황에 관계없이 자신의 감정에 따라 욕설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고, 선임의 욕설 섞인 대화를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후임 하사관의 입장에서는 욕설 섞인 선임 하사관의 대화가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법원 판결 법률적 모순"
피고인들의 행위가 '위력 행사 가혹행위'라는 유족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1. 피해자는 수영을 못해 물을 무서워하지만 선임 하사관들의 물놀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2. 재택 휴무 중이던 피해자를 데리고 물놀이 금지 지역이자 이전에 익사 사고가 발생했던 곳으로 피해자를 데려간 피고인들은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는 피해자에게 구조 등의 이야기를 하며 안심시킨 뒤 다이빙하기를 2분간 주저한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은 채 암묵적으로 다이빙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장해 결국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원곡의 최정규 변호사는 "구해주겠다는 선임들의 말을 믿고 다이빙을 시도하다 사망했는데 어떻게 과실치사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결국 1심 판사 역시 과실치사죄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위력 강요 행위는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 자체가 법률적 모순"이라며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했다.
이번 사건은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유족은 항소심 재판부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조 하사의 명예가 회복되는 판결이 선고되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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