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만 없는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 보완이 필요합니다
[이건희 기자]
2022년 5월 11일 장훈씨(가명)는 저녁 식사 후 산책 겸 동네를 걷다가 동네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런 장훈씨를, 평소 알고 지내던 동네 아저씨들이 사무실로 불렀다. 처음엔 장난이었던 것 같은데, 이내 사무실 문이 잠겼고, 장훈씨는 아저씨들에게 막혀 문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집으로 보내달라고 해도 사무실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어깨, 머리, 다리 부위를 수차례 맞고 밟혔다는 게 장훈씨의 증언이다. 뺨을 맞기도 하고, 배를 걷어차이기도 했다.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는 몸에 물을 뿌려 옷이 다 젖게 했다. 그렇게 사무실과 화장실을 오가며 괴롭힘을 당한 후, 아저씨들은 문을 열어 주었고 장훈씨는 집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집에 귀가한 장훈씨를 마주한 장훈씨의 엄마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녁 먹고 산책 나간 아들이 왜 이렇게 안 들어올까 하고 걱정하던 차였다. 입술은 새파랗게 질린 채로 윗옷과 바지는 전부 물에 젖은 상태였다. 아들의 옷을 벗겨보니 팔꿈치, 무릎, 손과 발 여기저기 까진 상처가 있었고 등과 허벅지에는 맞은 자국이 있었다. 엄마는 즉시 112로 신고 접수를 했다.
가족들은 장훈씨가 말하는 사무실로 달려가 항의를 했고,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 '아저씨들'은 감금과 폭력행위에 대해 부인했다. 가족들은 아저씨들의 태도에 너무 화가 났고, 이후 경찰서에 진단서와 당시 사진 자료를 제출했다. 사건 발생 3일 후 1차 피해자 경찰 조사를 받았고, 두 달이 지난 후 2차 조사를 받았다. 장훈씨와 가족들은 가해자 처벌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사건 발생 두 달 반만에 경찰은 수사를 종료하고 '불송치' 결정을 내린다. 피의자들이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범행 장면 CCTV를 확인할 수 없고, 피해자 주장 외 입증할만한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피해자가 사무실로 들어가고 나오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는 점, 피해자가 일관된 진술을 하는 점, 사건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에게 물을 뿌린 사실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혐의를 인정할 만한 정황도 충분해 보인다.
경찰은 장훈씨 사건을 '공동감금'과 '공동상해'의 죄명으로 수사했는데, 장훈씨는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으로 장애인학대(장애인복지법 제59조의9)범죄, 장애인에 대한 괴롭힘(장애인차별금지법 제32조)범죄를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사건에서 경찰은 '장애인학대' 사안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발달장애인전담경찰관'을 배치하지도 않았다.
▲ 경찰관을 위한 장애인학대 대응 안내 |
ⓒ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훈씨의 경우뿐 아니라 발달장애인이 경찰관들로부터 현장에서 부당하게 인권침해를 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예컨대, 평택에 거주하는 지적장애인 A씨는 새벽 1시 들이닥친 경찰관 2명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 과도한 제압을 당했다.
안산에 거주하는 지적장애인 B씨는 집 앞에서 혼잣말을 하다가 외국인등록증을 요구하는 경찰관의 요구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 했고, 미등록체류 외국인으로 오인한 경찰관은 B씨에게 뒷수갑을 채워 경찰서로 연행했다. 체포 이후에도 해당 경찰서는 A씨와 B씨에게 발달장애인전담경찰관을 배치하지 않다가 뒤늦게 요청에 따라 배치했다.
경찰청은 연이어 발생하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부당한 체포나 인권침해를 의식한 듯, 2021년 1009명 대비 2022년 전담 경찰관 2260명으로 2.2배 증원하여 운용하고, 교육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한겨레> 2023년 1월 2일자 보도참조).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경찰은 발달장애인 전담 사법경찰관을 지정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들로 하여금 발달장애인을 조사 또는 심문하게 하도록 정하고 있다.
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 지정에 대해, 경찰청은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을 증원하여 운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장에서의 발달장애인의 수사절차상 권리보호는 여전히 어려운 것이 그 현실이다. 수사 절차상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 배치가 현실화되기 위한 제도적 보완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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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건희 기자는 공익법률지원센터 파이팅챈스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법무법인 원곡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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