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쓰시마에 있는 '한일 민간합작 탑'을 아십니까
[박수택 기자]
대한해협은 거칠었다. 잿빛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바람이 검은 바다를 긁어 파도 머리에 흰 물결이 일었다.
▲ 3월 25일 아침 부산을 출항한 일본 쓰시마행 쾌속선 팬스타 쓰시마링크 호. |
ⓒ 박수택 |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를 호소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 한일NGO습지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습지NGO네트워크와 사단법인 황새사랑 회원 일행 14명도 요동치는 배에 몸을 맡겼다.
부산에서 쓰시마 사이 직선 거리는 50km, 북동쪽 관문 히타카츠(比田勝)항까지 쾌속선으로 날씨가 좋을 때는 1시간 10분이다. 이날은 30분이 더 걸렸다. 쓰시마는 나가사키현에 속한 시(市)로 남쪽 관문 이즈하라(厳原)항과 일본 본도 후쿠오카 하카다(博多) 사이는 쾌속선으로 2시간 15분이다.
쓰시마와 외부를 잇는 뱃길은 일본보다는 한국이 더 가깝다. 지역 경제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한일 간의 뱃길이 열렸지만 출입국 관리를 주말로 제한하고 여객선 승객도 정원의 1/4로 줄여서 받고 있다. '관광객을 다시 대거 받아들이기엔 준비가 미비하기 때문'이라고 여행사 직원은 전했다.
▲ 일본 쓰시마 북서쪽 농경지대 사고(佐護)평원. |
ⓒ 구글 위성지도 갈무리 |
일행의 첫 일정은 황새 둥지탑 건립 현장 방문이다. 히타카츠항에서 전세버스에 올라 20km쯤 떨어진 가미아가타쵸(上県町) 사고(佐護) 마을에 도착했다. 쓰시마의 북서쪽 끄트머리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가운데로 폭 40m쯤 되는 하천이 흐르고 제법 너르게 논이 펼쳐졌다. 사고평원(佐護平原)이라고 부른다. 쓰시마에서 유일하게 벼를 재배하는 곳이다.
▲ 일본 쓰시마 북서쪽 사고(佐護)마을 버드워칭공원. |
ⓒ 박수택 |
▲ 일본 쓰시마 사고마을 논습지 탐조전망대. |
ⓒ 박수택 |
황새는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이자 한일 양국이 각자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법으로 보호한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충남 예산에서, 일본은 우리보다 10년 일찍 2005년부터 효고현 도요오카에서 각각 황새 인공 증식과 자연 방사를 이어오고 있다.
황새는 높은 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짓고 번식하는 습성을 가졌다. 서식지 훼손으로 키 높은 나무가 사라지는 탓에 황새는 고압 송전탑이나 전신주에 둥지를 튼다. 감전으로 죽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 한일 민간협력으로 세운 첫 황새둥지탑의 모습. 일본 쓰시마 사고마을에 있다. |
ⓒ 박수택 |
한국생태환경연구소 대표 이시완 박사와 예산황새공원 야생복귀연구팀장 김수경 박사가 지난해 말 현지에서 일본 측과 설치 장소와 방법을 협의했다. 10m 길이의 재사용 콘크리트 전봇대 끝에 지름 1.5m의 원판 모양 받침대를 붙여 세운 뒤 땅속 1.5m 깊이로 견고하게 박아놨다. 전체 비용 260만 원은 (사)황새사랑과 일본황새회가 절반씩 댔다.
▲ 황새인공둥지탑 건립에 참여한 한일 민간단체와 연구자, 활동가 기념촬영. 사진은 마츠다 사토시 요미우리신문 기자가 제공한 것. |
ⓒ 박수택 |
쓰시마 자연의 상징, 삵
이곳 농경지엔 봄과 가을에 시베리아나 몽골, 중국 북부에서 한반도를 거쳐 규슈 이즈미(出水)를 오가는 재두루미, 흑두루미가 쉬어간다고 현지 농민은 전했다. 1월에서 2월 중순엔 재두루미, 이어서 3월엔 흑두루미의 북상 대열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4, 5월 모내기철에 논에 물을 대면 곤충과 개구리, 미꾸라지가 움직이며 들판에 생기가 넘친다고 덧붙였다.
▲ 일본 쓰시마 사고 야마네코쌀 재배논 인증 표지. |
ⓒ 박수택 |
삵은 쓰시마 자연의 상징이다. 삵이 갈수록 줄어들어 절멸 위기에 놓이자 쓰시마 농민들이 나섰다. 삵을 구하려면 논에 다양한 생물이 살 수 있도록 농법을 바꿔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지난 2009년 '사고 야마네코 벼농사연구회'를 결성해 농약을 최대한 줄이고 생태를 배려하는 농법을 택했다. 휴경하는 논의 일부를 파내 물이 모이는 둠벙을 만들었다. 수생식물과 곤충, 미꾸라지를 비롯한 물고기가 살아가는 생태 공간 비오톱(Biotop)이다. 생산한 쌀은 '자연과 사람의 삶을 이어주는 사고 쓰시마 야마네코 쌀'이란 브랜드를 달고 특산물로 팔린다. 쌀 포장지와 홍보 포스터의 도안은 앞발로 벼 이삭을 들고 있는 삵이다. 야생 동물과 습지 자연을 활용한 농촌마케팅이다.
"인공둥지탑 설치 운동을 이어가자"
황새인공둥지 현장 참관에 이어 '한일NGO습지포럼'이 열렸다. 이시완 한국환경생태연구소장은 '한국 황새 복원 현황' 주제 발표를 통해 지난 2015년 예산에서 인공번식한 황새를 처음 방사한 뒤 현재 118마리가 야생에서 살아간다면서 황새 서식지로 무논과 습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AI와 습지보전을 주제로 발표하는 가나이 유타카 일본람사르네트워크 공동대표. |
ⓒ 박수택 |
습지포럼 2부에서는 가나이 유타카 일본람사르네트워크 공동대표는 "맹위를 떨치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대책으로 야생조류의 월동지인 자연의 습지를 보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생조류가 습지에서 안정적으로 서식하면 밀집 정도와 이동 빈도가 줄어 AI 확산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 낙동강 하구 습지 위기 실태를 설명하는 박중록 습지와 새들의 친구 대표. |
ⓒ 박수택 |
▲ 협력합의서를 교환하는 김경선 (사)황새사랑 이사(좌)와 사타케 세츠오 일본황새회 대표(우). |
ⓒ 박수택 |
올해 하반기, 한국서 다시 만나는 한일 생태·습지 활동가들
포럼 뒤에 한국의 (사)황새사랑과 일본황새회는 황새 사랑과 습지 보전을 위해 계속 협력하기로 뜻을 모으고 합의문을 교환했다. 김순래 한국NGO습지네트워크 대표는 "코로나 이후 3년만에 한일 습지 NGO들이 얼굴을 마주하며 습지 보전의 지혜와 열정을 나눌 수 있어 반갑다"고 말하고 포럼을 준비해 준 일본 측에 감사를 표했다.
차기 제18회 포럼은 올해 하반기 한국NGO측 주최로 국내에서 열린다. 한일 생태·습지 활동가들은 쓰시마에 세운 인공둥지탑에서 황새가 알을 품고 번식하면 서로 연락해 현지에서 축하 행사를 열기로 뜻을 모았다.
▲ 일본 쓰시마 북서단 일본환경성 쓰시마야생생물보호센터 내 전망대. 우리나라 부산이 보인다. |
ⓒ 박수택 |
▲ 일본 쓰시마 북서단 일본환경성 쓰시마야생생물보호센터 내 전망대. 우리나라 부산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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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수택씨는 생태환경평론가(전 SBS 환경전문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UPI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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