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역전세난에 세입자가 더 고통받는 이유

정두환 2023. 4. 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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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逆)전세난.

정작 시장에서 비명을 지르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돈 못 돌려준 집주인이 아니라 못 돌려받고 있는 세입자다.

하지만 그것이 계약 종료에도 보증금 반환을 미루고 세입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전셋값이 수억원씩 떨어지는 역전세난 속에서 여전히 최종적으로 가장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은 왜 세입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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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逆)전세난.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나타난 집값 폭락 사태 때다. 수도권 1기신도시 입주 전후 국지적인 전셋값 하락(안정에 가까운)을 빼면 그 이전에는 시장 전반적인 역전세난이 발생할 요인이 없었다. 물론 그 이후로도 25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시장을 혼돈으로 몰아갈 수준의 역전세난은 발생하지 않았다.

가파른 금리 상승이 역전세난을 재소환했다. 단기간에 전셋값이 급락하며 ‘집주인들이 떨어진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비명’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계약이 끝난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려면 2년 사이 떨어진 가격만큼 돈을 융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진짜 집주인들이 아우성인 것일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정작 시장에서 비명을 지르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돈 못 돌려준 집주인이 아니라 못 돌려받고 있는 세입자다.

임대차 계약이 끝난 시점에 보증금을 반환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계약 당사자로서 당연한 의무다. 상당수 임대인들은 "대출까지 받지는 못하겠다", "다른 세입자가 구해지면 그때서야 돌려주겠다"는 등의 이유로 보증금 반환을 미룬다. 한편으로는 급락한 전셋값에 집주인들이 곤란을 겪고 있는 점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것이 계약 종료에도 보증금 반환을 미루고 세입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전셋값이 수억원씩 떨어지는 역전세난 속에서 여전히 최종적으로 가장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은 왜 세입자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집주인이 버티면 사실상 대부분의 세입자가 대응할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시장에는 몇개월째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속만 타들어가는 세입자가 상당수다. 전셋값이 급등할 때에는 없는 빚까지 내서 세를 얻었지만 가격이 떨어졌다고 웃을 상황도 못된다.

주택 시장에서 집주인은 유사 이래 이례적인 특수상황을 제외하면 늘 ‘갑’이었다. 전셋값 그래프는 꾸준히 우상향해왔고 그러다 보니 세입자는 항상 계약 때마다 집주인의 눈치를 보는 ‘을’의 입장이었다. 정부가 1981년 세입자의 권리를 강화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제정하고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이를 강화해 왔지만 임대인쪽으로 기울어 있는 무게추는 바뀌지 않았다.

보증금 반환을 미루는 집주인을 압박할 수단 없는 것은 아니다. ‘임차권등기명령’이다. 집주인 동의 없이도 법원으로부터 임차권등기명령을 받아 등기부등본에 기재하면 세입자는 이사를 해도 자신의 보증금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 보증금 반환이 지연되는 기간 만큼 집주인에게 연 12%의 이자를 요구할 수도 있다. 다만 이 임차권등기명령이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려면 세입자가 집을 비워야 한다. 법리적으로 보증금 반환과 목적물인 주택의 반환은 동시이행관계다. 세입자는 집을 비우지 않는 한 계약 상대방인 집주인에게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다.

결국 현실적으로 임차권등기명령의 효력은 강력하되, 실제 행사할 수 있는 세입자는 극소수인 셈이다. 대한민국 세입자 중에 내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에서 수억원의 여윳돈이 있거나 그만큼 대출을 받아 이사를 할 여력이 있는 세입자가 몇이나 될까.

여러 법적 보호 수단에도 여전히 세입자가 ‘을’인 시장에 대해 정부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삼중의 보호장치가 있다 한들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없느니 못한 ‘희망고문’일 뿐이다.

정두환 콘텐츠매니저 dhjung6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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