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국가전략기술…뻔한 ’초격차’ 정책만 남발하는 정부

배군득 2023. 4. 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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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반도체 5년째 제자리 걸음
디스플레이, OLED 이후 더딘 개발
중국이 선점한 차세대전지 시장 험난
정부가 내놓은 국가전략기술 육성 대책이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데일리안DB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투자・지원하는 ‘국가전략기술’이 위기에 봉착했다. 주요 국가들이 전략기술에 적극적인 투자 움직임을 보이면서 우리 정부도 대응체계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정부가 6일 반도체・디스플레이・차세대전지 3대 분야 R&D 육성을 위한 ‘초격차’ 전략을 발표한 것도 글로벌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만큼 반도체・디스플레이・차세대전지는 향후 글로벌 경쟁에서 반드시 필요한 분야인 셈이다.


그러나 이날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예상 범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술개발과 인력양성 이외에 뚜렷한 대책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요 국가들의 전략기술 지원 행보를 보면 미국의 경우 지난해 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추진 중이다. 반도체지원법은 5년간 527억 달러 지원 등 공격적인 투자 대책이 포함됐다.


일본 역시 지난해 5월 경제안보법 제정으로 20개 특정중요기술 선정과 연구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은 일찌감치 2021년부터 고급 신소재 등 전략산업 육성을 오는 2025년까지 세계 최고 반열에 올려 놓겠다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기술패권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2021년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이나 설비투자시 세액공제를 적용하는 조세특례특별법, 지난해 첨단전략 산업・기술 지원 등을 골자로한 국가첨단전략산업법, 올해 정부 R&D를 집중 투자할 12개 전략기술을 선정한 국가전략기술특별법 등을 잇따라 내놨다.

▶︎좁혀지는 핵심기술…갈 길 먼 R&D 투자

역대 정부에서 국가전략기술에 투자하는 규모는 상당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는 ‘K-반도체’를 앞세워 시스템반도체 육성을 천명했다. 반도체 세제지원을 최대 6배까지 확대화는 당근책도 제시했다. 2030년에 시스템반도체를 포함한 종합반도체 1위 국가를 실현하겠다는 청사진도 밝혔다.


이번 정부 역시 국가전략기술은 전 정부와 맥이 같다. 다만 글로벌 시장 흐름은 녹록치 않다. 지난 정부에서 5년간 투자한 시스템반도체는 성과가 미미하다. 급하게 정책을 만들다보니 시장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뛰어든 탓이 크다는 것이 시장의 목소리다.


정부가 제시한 반도체・디스플레이・차세대전지 3대 분야는 전・후방 파급력이 큰 한국경제 버팀목 기술군이다. 이 가운데 반도체・디스플레이는 우리나라 총 수출액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이차전지 시장은 오는 2030년 3517억 달러로 2020년 대비 8배 이상 폭발적 성장이 전망되는 분야다.


3개 분야 모두 그동안 우리나라가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경쟁 우위에도 불구하고 최근 심화되는 기술패권 경쟁과 자국 산업 보호주의 등에 대응하기 위한 확실한 카드는 나오지 않는 실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세계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3대 주력기술 분야 우위 선점과 신시장 창출을 위해서는 초격차 기술 확보와 신격차 창출 R&D 전략이 필요하다”며 “민관이 협업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다 전략적인 접근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3대 분야 아킬레스는 ‘핵심기술’

메모리반도체가 약 20년간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선제적인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생태계를 조성하면서 얻은 결과다.


메모리반도체와 달리 시스템반도체는 이런 핵심기술이 부족하다. 그래서 미국, 일본 등에 뒤쳐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가 천명한 ‘초격차’를 실현하는 것이 버거울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국가별 반도체 매출 대비 R&D 투자비율에서도 우리나라는 현저하게 밀린다. 미국이 16.9%로 가장 높으며 이어 중국(12.7%), 일본(11.5%), 대만(11.3%) 순이다. 우리나라는 8.1%로 투자비율이 한 자릿수다.


시스템반도체 분야는 소자・설계・공정에서 기술개발 부재가 심각하다. 소재의 경우 고집적・저전력 반도체 생산을 위한 미세화 경쟁으로 3mm까지 구현에 성공했다. 이후 개발은 더딘 흐름이다. 한계에 다다른 CMOS를 대체 가능한 신개념 소자 개발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설계는 빅테이터, 딥러닝 활용도 증가로 병렬처리에 특화된 AI반도체 및 연산과 저장 기능을 통합한 PIM 반도체 개발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이밖에 공정은 성능 고도화를 좌우하는 첨단 패키징 고부가가치 기술이 선행돼야 한다.


디스플레이 분야는 더 위기감이 높다. 지난해 투자규모가 3000억원이 넘는데도 신소재・신개념 분야 기초・원천 단계 연구가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연구 성과가 더딘 사이, 세계 디스플레이 전체 시장 점유율은 중국에 추월당해 2위로 내려앉았다. 소재・부품・장비 원천기술 분야에서는 미국과 일본에 열세다.


정부 관계자는 “민간 기업 등은 OLED 전환 가속화 및 기술격차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핵심원천기술과 차세대 기술 특허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차세대전지 역시 원인은 ‘연구부족’이다. 모두 현세대 분야 연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차전지의 경우 연구개발이 현세대 68.8%, 차세대 31.2%로 무게가 현세대에 기울어져 있다. 수소연료전지도 마찬가지다. 현세대 연구가 91.5%를 차지한다. 차세대 연구는 8.5%에 불과하다.


이차전지 기술은 우위에 있지만 핵심 소재는 중국 의존도가 심화되는 추세다. 차세대 소재 기술개발도 상대적으로 열세다. 지난해 산업연구원이 내놓은 이차전지 산업 종합경쟁력을 보면 중국이 95.5점으로 1위, 한국은 86.3점으로 2위다.


차세대전지 분야에서 ‘초격차’를 실현하려면 중국과 차별화된 전략이 절실하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기술개발과 인력양성도 중요하지만 현실에 맞는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민간경제연구소 한 관계자는 “시스템반도체만 봐도 우리나라가 그동안 주력으로 성장한 분야가 아니다. 당연히 경쟁국가와 비교해도 후발주자인 것”이라며 “우리 경쟁력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맞춤형 대책이 나와야 한다. 기술개발과 인력양성은 이미 10년 전부터 나온 대책”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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