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기로 50억 벌고 문 닫아" 강남 피해자 '바인빗' 의혹
서울 강남에서 지난달 29일 A씨(48)를 납치·살해한 혐의를 받는 황대한(36·구속)씨와 연지호(30·구속)씨 등은 “공범 이경우(36·구속)씨가 A씨를 살해하면 코인업계에 있는 유모 부부 비서 등으로 폼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며 “피해자 소유의 가상화폐를 빼앗을 목적으로 범행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A씨 코인 지갑에는 범행 당시 700만원대인 퓨리에버 코인 88만개 밖에 없었다. 이들이 노린 가상화폐가 퓨리에버 코인이 아닌 다른 가상화폐 사업을 통해 얻은 수십억원의 이더리움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피해자 A씨의 가족은 퓨리에버 코인 사업을 벌이기 전 바인빗 코인으로 500여명에게 투자를 받은 뒤 거래소를 폐쇄한 것으로 확인됐다. 바인빗 코인은 홍보와 운영방식에서 퓨리에버 코인과 유사했다. 바인빗 코인 피해자들은 A씨 일가가 바인빗 코인으로 40억~50억원을 벌었다고 주장했다.
A씨 가족회사 T모 회사는 2019년 10월 가상화폐 바인빗 코인을 발행하고 강남 모처에 바인빗 코인 거래소를 열었다. T회사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A씨는 감사, A씨의 남편 장모씨는 사내이사, A씨의 여동생은 대표로 등재돼 있다. 피해자들은 명목상 대표는 여동생이지만 실질적인 투자모집과 운영은 A씨 부부가 했다고 전했다. A씨 부부가 거래소 개소식에 등장해 “창대한 걸음이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T회사는 2019년 8월부터 바인빗 코인 개발과 코인 채굴장 운영 등의 명목으로 투자금 120억원을 유치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A씨 부부는 역삼역 인근 사무실을 마련해 투자설명회를 진행했고 A씨 부부의 자녀를 데려오며 가족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한다. 장씨는 한 블록체인협회 회원인 점을 강조하면서 “매수만 있어 가격 통제가 가능한 코인이다”고 투자자들을 설득한 것으로 파악됐다. 바인빗 코인이 빗썸 등 유명 거래소에 상장되면 투자금액의 3배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바인빗 코인 피해자이자 T회사의 홍보를 도왔던 김모씨는 “최종적으로 투자금 100억원을 유치했고, A씨 일가가 사업비 등을 제외한 40억~50억을 가지고 회사 문을 닫았다”며 “이 돈으로 이더리움을 구입해 A씨와 장씨가 아닌 제3자의 코인 지갑 계좌에 보냈다”고 말했다.
바인빗 코인은 퓨리에버 코인과 유사하게 ‘공공기관 협업’ ‘실용성’ 등을 강조하며 다단계식 영업을 해왔다. 이번 납치·살인 사건의 배경으로 지목된 퓨리에버 코인 발행사인 유니네트워크는 파트너십 기관으로 서울시의회·포스코·KT·서울대 등을 언급했고 퓨리에버 코인 카드를 3700여만개 점포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가 5일 입수한 2019년 12월 T회사 투자설명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바인빗 코인은 K사의 파트너로서 우즈베키스탄 정부로부터 ‘독점적 혜택’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스마트마이닝(코인 채굴장) 부지로 수도인 타슈켄트에서 북동쪽으로 92.4㎞ 위치에 있는 차르박 지역 10만평을 제공받고 통관세(5%), 관세(20%) 등 바인빗 코인 운영에 따른 세금을 면제받는다고 설명했다. 또 우즈베키스탄 수력발전공사가 세계 최저 전기요금인 ㎾당 0.03달러로 특혜를 준다는 점을 부각했다. 바인빗 코인 충전형 카드를 국내에 위치한 대기업 L사의 전 지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도 홍보했다.
T사는 ‘2019 한-우즈벡 핀테크 블록체인 포럼’ 주최 당시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 등 정관계 인사와 우즈베키스탄 정부 관계자를 초청하고 당시 양승조 충남지사에게 축전을 부탁하는 등 세를 과시했다. 수억 원대 고급 외제차 등을 프로모션으로 내걸며 다단계 영업을 장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인빗 코인 거래소는 2020년 초 폐쇄됐다. 코인 거래 역시 중단됐다. 투자자들이 사기를 의심하자 A씨 부부는 투자자 반발 정도에 따라 관리에 나섰다고 한다. “바인빗 코인에 3억8000만원을 투자했다”는 서모씨는 “사기를 의심하자 A씨 부부가 1000만원을 돌려주면서 빗썸이 아닌 다른 거래소에서 상장될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투자자들을 모아 A씨 부부가 사기를 벌였다고 알렸더니, A씨가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나를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A씨 부부는 바인빗 코인 상장 실패 이후 쇼핑몰과 복권 사업 추진 명목으로 투자금을 요구했다고 한다. 피해자 이모씨는 “쇼핑몰 배당금을 조금씩 주며 투자자를 안심시켰다”며 “하지만 폰지사기로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돌려막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복권 사업자 입찰을 명목으로 300억원을 요구하자 대다수 투자자가 A씨 부부와 갈라섰다”고 전했다. 서씨는 “계속되는 사기 행각에 지쳐 결국 지난해 A씨의 남편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반면 아내의 사망으로 형집행정지 상태인 장씨는 중앙일보에 “오히려 우리가 68억원을 피해봤다”며 “김씨를 횡령혐의로 고소했고 현재 검찰의 보강수사가 마무리되는 과정”이라고 반박했다.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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