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 완패했는데 비장함 없더라" 日교수도 놀랐다

'한반도 전문가' 기무라 간 교수 칼럼 화제
WBC 패배·강제동원 배상 한국 반응 분석
누리꾼 "스포츠 말곤 비빌 곳 없던 시절 끝"

"한일전에서 패배했는데 한국 특유의 '비장함'이 없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일본에서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진 기무라 간(57) 고베대 대학원 국제협력연구과 교수가 최근 이 같은 내용의 칼럼을 기고해 화제다.

4일(현지시각) 뉴스위크 일본판에는 ‘일한전(한일전) 승패에 일희일비했던 예전의 한국은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제목으로 기무라 교수의 칼럼이 게재됐다.

기무라 교수는 "지난달 10일 서울에 있었다"며 "늦게 호텔로 돌아와 TV를 켜니 마침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경기는 6회에 일본 대표팀이 점수 차를 크게 벌려 한국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고 글을 이어갔다.

그는 "'한국으로서는 맥 빠진 느낌이겠다'고 생각하며 중계를 보던 중 과거와 달리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면서 "한국의 중계 캐스터가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순간 깨달았다. 평소의 한일전, 특히 한국 대표팀이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 나타나는 특유의 '비장함'이 없는 것이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한국은 민족주의가 강한 나라로 알려져 있고, 한때 이 나라를 지배했던 일본은 그 주된 표적이었다"며 "바로 그런 이유로 스포츠 한일전에는 늘 관심이 집중됐고, 한국인들은 승패에 일희일비했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이 일본에 승리할 때는 우월함을 과시했고, 패배할 때는 나약함에 분노하며 다음번 경기에서의 설욕을 다짐해왔다"면서 "하지만 2023년 3월 한국에는 그런 상황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스포츠 외의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부연했다.

이어 한국 정부가 일제 강제 동원 배상 해법으로 내놓은 '제3자 변제안'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집회 현장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여러 시민단체에서 나온 10여명의 인원보다, 훨씬 많은 언론사 카메라들이 기다리고 있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며 "만일 이러한 현상이 한국 사람들이 한일 관계를 냉정하게 생각하게 됐다는 증거라면 분명 좋은 소식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에 열등감 옅어진 것"…韓 누리꾼 상반된 반응

지난달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이 한국의 4대 13 패배로 끝난 뒤 한국 투수들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기무라 교수는 한국에서 세종연구소 객원 연구원, 고려대 초빙교수 등을 지냈으며 '한국 현대사' '한반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등 저서를 집필한 한반도 전문가로 꼽힌다.

이번 칼럼을 접한 한국 누리꾼 사이에서는 '비장함이 사라졌다'는 지적에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소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한 누리꾼은 "그간 일본에 느꼈던 민족감정은 열등감에서 비롯됐는데, 이제 소득 수준이 비슷해지면서 그런 의식이 옅어진 것일 뿐"이라고 적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스포츠 외에 일본을 이길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시기에는 일본과의 경기에 과몰입했지만, 이제 다른 부분에서 앞서는 것들이 많기에 '예전처럼 비장할 필요는 없다'는 인식이 깔린 것 같다"는 댓글을 남겨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김성욱 기자 abc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