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처럼 부활? 사르코지처럼 퇴장? 기소된 트럼프의 길은

임선영 2023. 4. 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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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형사 기소됐지만, 공화당 차기 대선 후보 1위를 달리고 있다. 그가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당내 경선에 통과할 경우 법적으로 대선 출마는 가능하다.

전직 대통령이 기소된 건 미국 역사상 처음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드물지 않은 일이 됐다. 악시오스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전·현직 지도자가 기소 혹은 수감된 나라는 약 80개국에 이른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현지시간) 전문가를 인용해 "정치 지도자에 대한 기소는 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그 어떤 권력자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전했다.

4일(현지시간) 법원에 출두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러나 동시에 권력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일은 그 근거의 유무와 관계없이 정치적 동기가 있는 법 집행이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이곤 한다고 매체는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경향은 정치가 극도로 양극화되고, 당파적인 국가일수록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트럼프의 경우처럼 자신에 대한 법 집행을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하며 결집한 지지자들의 여론을 등에 업고 재기에 성공한 세계 지도자들이 있다. CNN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 대표적인 4명의 지도자를 꼽았다. 반대로 폭스뉴스는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처럼 사법 리스크로 정치 인생을 쓸쓸히 마감한 권력자들도 있다고 전했다.


네타냐후·룰라 재선 성공


장장 15년 넘게 권좌에 있었던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019년 이스라엘 역사상 현직 총리 최초로 기소됐다. 뇌물 수수, 배임 등 여러 부패 혐의로 현재까지도 재판을 받고 있지만, 지난해 11월 치러진 이스라엘 총선에서 극우 정당과 손을 잡고 극적으로 부활했다.

팔레스타인과 오랜 분쟁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이스라엘은 대아랍 정책 등을 두고 정치 분열이 극심하며 정당 간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의 이런 정치적 배경 속에서 '안보' 이슈를 앞세워 또다시 지지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총리 취임 직후 사법부를 무력화하는 내용을 담은 입법 절차를 추진해 '셀프 방탄법'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AP=연합뉴스

좌우 이념간 대립이 극심한 브라질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다. 당사자는 중남미의 좌파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이다. 앞서 2003~2010년 대통령을 연임한 그는 퇴임 후 재임 시절의 부패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고 2018년 4월부터 1년 넘게 수감됐었다.

당시 룰라 대통령 역시 이런 혐의에 대해 "정치적 동기가 있는 희극"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브라질 연방대법원이 그에 대해 내려졌던 유죄 판결을 파기하면서 지난해 대선 출마 기회를 얻었고 지난 1월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다.

브라질은 또다시 전직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에 직면했다. 극우파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 1월 발생한 대선 불복 폭력 시위를 조장했다는 혐의로 브라질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라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 AFP=연합뉴스


공통점은 '정치 탄압' 주장


아르헨티나의 급진 좌파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부통령은 재임 중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일시적인 면책특권을 이용해 부통력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현재 아르헨티나의 부통령이자 2007∼2011년, 2011∼2015년 대통령직을 역임했다. 아르헨티나 법원은 지난해 12월 1조원대 수뢰 혐의로 그에게 6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럼에도 페르난데스 역시 이에 대해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주장했고, 그의 일부 지지자들은 판결 결과가 전해지자 법원 밖에서 오열하기도 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부통령. EPA=연합뉴스
이탈리아 총리를 세 차례 역임한 '우파 거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1994년에서 2011년 사이 재임 기간 횡령과 세금 사기, 뇌물 수수 등 최소 17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그는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했으며, 항소심에서 상당수 혐의를 벗기도 했다. 다만 퇴임 후 세금 사기 혐의에 대해선 유죄 선고를 받고 요양원에서 1년간 사회봉사를 명령받았다.
여러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난해 조기 총선에서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FI)는 조르자 멜로니 총리의 이탈리아형제들(Fdl) 등과 우파 연합을 결성해 총선 승리를 견인하기도 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전 총리. AFP=연합뉴스


"권력자, 법 위에 있지 않아"


NYT에 따르면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정부학 교수는 "미국은 전직 지도자의 기소를 꺼리는 예외적인 국가"라면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권력자가 범죄 혐의로 기소되는 일이 큰 이슈이지만, 정상적인 일이다. 이것이 '권력자는 법 위에 있다'고 여기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치학자 나탈리 토치는 "기소가 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권력자들은 자신을 정치적인 이유로 박해받는 피해자로 묘사하며 지지층 결집에 나서고 스캔들에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행동은 사법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신뢰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다"며 "해당 권력자의 지지자들은 사법이 정치화됐다고 생각할 것이며 반대자들은 (지리한 논쟁 탓에) 법적 심판이 비효율적이라고 여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사르코지, 닉슨은 사법 리스크에 불명예 퇴장


그러나 사법 리스크를 극복하지 못하고 재기에 실패한 사례도 있다. 2012년 재선에 실패한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2017년 다시 재선에 도전했으나 여러 부패 혐의에 연루돼 당내(공화당) 경선에서 탈락하고 결국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2021년 그는 불법 대선 자금 조성 혐의와 판사 매수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 받았는데, 혐의를 모두 부인하며 항소해 재판 중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AP=연합뉴스
미국에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임기 도중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닉슨 전 대통령은 1972년 자신의 재선을 위해 민주당 사무실에 중앙정보국(CIA) 요원을 보내 도청을 시도했다가 발각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치 헌금 부정 수뢰, 탈세 등의 의혹도 불거지며 그는 1974년 대통령직에서 내려왔다.
리처드 닉슨 전 미 대통령. AP=연합뉴스
또 릭 페리 전 미 텍사스 주지사는 한때 대권을 꿈꿨으나 2014년 직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후 지지자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2016년 대선 포기를 선언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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