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대상 아닌 응원하고픈 친구로 그리고 싶었어요”

김유나 2023. 4. 6.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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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준비청년에 희망 디딤돌을]
자립준비청년 소재 웹툰 모랑지 작가
자립준비청년을 소재로 ‘소녀의 디딤돌’을 연재한 모랑지 웹툰 작가가 지난 4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작업실에서 주인공 윤정이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모랑지 작가는 얼굴을 공개하는 대신 직접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모랑지 작가 제공


지난 2월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하는 ‘삼성 희망디딤돌’ 전남센터에 1000만원이 입금됐다. 입금자는 유명 웹툰 ‘소녀의 세계’를 연재하고 있는 모랑지(36) 작가였다. 모랑지 작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도 ‘희망디딤돌 사업 들어보셨나요?’라는 글을 올리고 자립준비청년을 향한 응원과 관심을 호소했다.

모랑지 작가가 자립준비청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삼성전자의 협업 제안으로 자립준비청년을 주인공으로 한 ‘소녀의 디딤돌: 희망, 함께 날다’라는 웹툰을 그리면서였다. 브랜드 웹툰임에도 조회수는 102만뷰를 넘어섰고 독자들이 남기는 평점 역시 9.95점을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실제 자립준비청년들이 응원을 얻었다며 댓글을 달기도 했다.

모랑지 작가는 지난달 22일 8부작 연재를 마무리했다. 5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의 작업실에서 국민일보와 만난 모랑지 작가는 “‘자립준비청년’을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친구처럼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그리고 싶었다”면서 “주인공 윤정이에게 나리와 미나가 친구가 돼 준 것처럼, 내 웹툰이 자립준비청년을 응원해 주는 친구가 돼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은 응원과 관심으로 변하는 삶

‘소녀의 디딤돌’에 등장하는 주인공 윤정이는 보육시설에서 자란 고등학생이다. 진로를 고민해봤냐는 담임교사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불안한 미래에 걱정이 많은 인물이다. 그런 윤정이의 시선에서 다른 등장인물은 모두 동물로 그려진다. 작품 속 윤정이는 ‘너는 왜 엄마가 없어?’라는 질문을 받는데, 그때마다 “동물한테 한소리 들었다고 기분 나쁜 사람은 없다”며 자신을 위로한다. 모랑지 작가는 “다른 사람이 동물로 비치는 건 윤정이의 ‘방어 기제’”라며 “윤정이는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크고 작은 상처를 많이 겪었을 텐데,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긍정적인 캐릭터”라고 말했다.

비가 쏟아지던 날, 윤정이는 자신만의 ‘힐링 공간’인 화단을 찾았다가 다친 박새 한 마리를 발견한다. 지나가던 후배 나리가 보고, 윤정이를 돕는다. 두 사람은 당장 박새를 무작정 데려다 구조하는 게 아니라, 우산을 씌워주고 핫팩을 넣어두는 등 작은 손길을 보탠다. 이후 전문가 도움을 받아 구조하고, 안전한 곳에서 박새가 회복되는 과정을 지켜본다. 박새는 무사히 회복해 훨훨 날아간다.


이 장면은 자립준비청년을 응원하는 이들의 모습과도 닮았다. 모랑지 작가는 “자립준비청년의 인생을 책임져주는 거창한 도움이 아니더라도 (박새의 회복을 응원하고 지켜봤던 마음처럼) 작은 관심으로 보탬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은 주변에 조언을 구할 곳이 없어 진로를 결정하는 데 애를 먹는다. 대학진학률 역시 62.8%로 또래 평균(70.4%)보다 낮다. 웹툰 속 윤정이도 진로에 선뜻 답을 내지 못하지만, 박새 구조를 계기로 수의사의 꿈을 꾸게 된다. 이때 도움이 됐던 건 옆에서 윤정이를 응원해주던 후배 나리와 미나가 “수의사 해보면 어때요?”라고 가볍게 던진 한마디였다.

모랑지 작가는 “대부분 청소년기를 거치며 가족이나 주변인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진로를 결정할 때가 많은데, 자립준비청년에게 멘토링과 진로를 상담해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느낀다”며 “작은 관심에서 진로를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해내는 건 나를 믿는 힘

윤정이는 담임교사 권유로 삼성 희망디딤돌센터에 입주하게 된다. 실제로 ‘삼성 희망디딤돌’은 자립준비청년에게 주거공간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진정한 자립 기반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2013년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기부한 금액으로 진행되는 활동이다. 모랑지 작가는 웹툰 제작을 위해 삼성 희망디딤돌 경기센터를 찾아 주거 환경을 둘러보고 멘토링이나 진로 상담에 대한 설명도 직접 들었다고 한다.

윤정이는 ‘동사무소에서 서류 떼는 법’ ‘정해진 금액으로 장 보는 법’ 등 실제 자립에 필요한 교육을 받는다. 마지막 8화에서는 동물로 그려지던 윤정이 주변 등장인물이 비로소 사람으로 등장한다. 모랑지 작가는 “윤정이가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가 됐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모랑지 작가도 유명 웹툰 작가가 되기까지 순조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공모전에서 많이 떨어지면서 좌절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재밌는 만화를 그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희망디딤돌’은 앞으로 나아가는 걸 돕는 것이지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곧바로 계단을 만들어주는 건 아니지 않나”라며 “윤정이가 결국에는 본인 힘으로 새 구조부터 진로 찾기까지 해냈던 것처럼, 자립준비청년들에게도 ‘실패해도 괜찮으니까 겁내지 말고 자신을 믿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용인=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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