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 목사의 복음과 삶] 불안 사회

2023. 4. 6.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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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불안이라 했다.

불안이 만연한 사회다.

초조한 현대인에게 불안증은 전염병 같다.

만연한 강박증은 불안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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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불안이라 했다. 불안이 만연한 사회다. 불안이 만들어내는 세상은 어둡다. 불안의 실체는 미로에 있어 찾기 어렵다. 존재론적 불안이다. 안정을 갈망할수록 불안은 심화된다. 성공하기 위해 일하지만 불안의 촉은 더 예민해진다.

불안은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다. 생산과 소비문화는 불안을 끌어당긴다. 생산과 소비의 시스템에 한번 오르면 내리기 어렵다. 세련되고 취향에 맞춰 나온 신제품을 거절하기란 어렵다. 다람쥐가 왜 그렇게 쉼 없이 달리고 있는지 지켜보면 웃기지만, 다람쥐에겐 심각한 일상이다. 내리고 싶지만 내리지 못한다.

이집트 바로왕의 폭정에 벽돌을 찍어내야 했던 출애굽 히브리인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벽돌 대신 새로운 아이템을 끝없이 만들어 내도록 재촉한다. 그곳엔 ‘좀 더’라는 구호가 일상이다. 성과를 내면 손뼉 쳐주고 인센티브를 주지만 불안을 잠재울 수는 없다.

높은 곳을 지향하지만 도달할수록 자아가 설 곳은 없다. 경쟁 상대는 어디나 있다. 비교 문화는 극심하다. 고어 비달은 “내 친구가 성공을 거둘 때마다 내 일부가 조금씩 죽어간다”고 했다. 비교는 질투를 일으키고 질투는 불안으로 이어진다. 현대 사회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다.

성공하고도 불안하다. 붙잡고 있는 것은 많지만 허전하다. 불안한 성공인 것은 상처 입은 성공이기 때문이다. 겉은 멋있어 보이지만 부실한 성공이다. 무엇을 이루지 못한 불안보다 무엇인가 이루었는데도 여전한 불안이 문제다. 경쟁 사회는 강박증 환자를 양산한다. 한번 경쟁에 내몰리면 무조건 달려야 한다. 무언의 강요와 억압으로 가득한 세상은 공황 장애인을 만든다.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으로 열심히 해보지만 불안을 걷어내지는 못한다. 완벽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실수는 퇴출이다. 완벽주의자의 내면에는 더 완벽해야 한다는 불안이 몰려온다. 목표는 높고 도달은 어렵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는 폭력적이다. 느긋함 없는 문화는 경박스럽다. 초조한 현대인에게 불안증은 전염병 같다. 만연한 강박증은 불안에서 시작한다. 우울증의 밑바닥에도 불안이 웅크리고 있다. 불안의 내면세계는 불규칙한 파도가 이는 성난 바다 같다. 마음이 갈 바를 알지 못한다. 리처드 포스터는 “현대인의 치명적 질병은 피상성”이라 했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다.

불안은 깊이 있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 불안할수록 무엇인가로 끊임없이 채우려고 한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 공허의 거대한 무덤은 내가 판 것인 경우가 많다. 나를 억압하고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를 선언해야 한다. 평범한 일상을 확보해야 한다. 빠름에 저항하고 느림을 즐겨야 한다.

뒤처진 삶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를 유지하면 된다. 늦고 빠름의 기준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유행에 덜 민감해도 된다. 온갖 것을 요구하는 세상과 결별해야 한다. 나답게 사는 길을 나서야 한다. 때로 고립을 고독으로 승화해야 한다. 다름을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비교에 약이 오르면 약이 없다. 알고 보면 나를 뒤좇아 오는 것은 망령에 불과하다. 나를 좇아오는 적은 내 안에 숨어있는 불안이다.

좋은 차는 브레이크가 좋다. 빠른 박자에 숨이 찬다면 나만의 속도를 놓쳤기 때문이다. 외부의 신호가 아닌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전 5:18) 자기에게 주어진 몫이 있다. 그것에 만족하고 누릴 수 있기만 해도 최상이다.

이규현 수영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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