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시선]내편이라 챙겼나 공범인가… 닮은꼴 금감원과 CJ ENM
오디션 투표 조작한 PD 재입사
도처에 난무하는 조폭식 의리
금융감독원은 저승사자로 불린다. 인허가 취소와 영업정지, 해임 권고에 이르기까지 금융사와 임직원의 생사여탈권을 쥘 만큼 막강한 감독 권한이 있기에 붙은 별명이다. 비용은 금융사들로부터 분담금을 거둬들여 충당하는데, 지난해만 2872억원이었다. 금감원 전체 예산의 75%가 넘는다. 금감원 입장에서 보자면 매년 예산 대부분이 그냥 굴러들어오는 구조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금감원의 방만 경영 논란이 불거지는 데는 다 이런 배경이 있다.
잘잘못을 판가름하는 심판 노릇은 필연적으로 공정성에 더해 높은 도덕성까지 요구받기 마련이다. 더욱이 관련 비용을 선수들한테 직접 받았다면 누가 따지지 않더라도 스스로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난 4일 감사원이 공개한 금감원 정기감사 보고서를 보면 금감원의 도덕적 해이는 처참한 수준이다. 업무추진비 카드를 아예 배우자한테 줘서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했다는 등 167쪽에 달하는 보고서 내용 하나하나가 다 예사롭지 않다. 그중에서도 '해고 예고 수당'은 부정적 의미에서 그야말로 압권이다. 이 수당의 취지는 갑자기 직장을 잃은 이들의 생계비 보조인데, 비리가 드러나 이미 수개월 전 업무에서 배제됐다가 실형을 선고받은 범법자들이 죄다 타갔다. 온정주의를 넘어 실은 조직 전체가 공범이 아니었느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가령 지난 문재인 정권 때 벌어진 피해 규모 1조 6000억 원대의 권력형 사기 사건인 라임 펀드 사태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었던 금감원 파견직원 A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A씨는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 수천만 원의 금품을 받고 감사 자료를 유출한 혐의로 지난 2020년 1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5000만원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고 면직당했다. 1심 판결은 9월 18일, 면직 처분은 인사위원회(10월 7일)를 거쳐 10월 16일에 이뤄졌다. 금감원은 30일 전에 해고를 예고하지 않았다며 면직 2주 만에 전광석화로 해고수당 985만원을 챙겨줬다. 근로자의 귀책사유가 있으면 수당은커녕 예고조차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시행규칙을 무시하고 수사 무마 의혹을 받아온 제 식구의 주머니를 살뜰히 채워준 것이다. 라임 피해자 수천 명이 돈을 잃고 여전히 고통당하고 있는 데는 A씨의 범법행위와는 별개로 금감원의 감독 부실도 한몫했다. 대신증권 등 판매사들이 초고위험 펀드를 은행예금 수준의 안전한 5~6등급으로 속여 판매하는 걸 적시에 제대로 감시·감독하지 못한 탓이다. 반성하고 시스템을 정비해도 시원찮은 마당에 금감원은 5년 만의 감사원 감사가 아니었으면 아무도 몰랐을 해고수당까지 챙겨줬다. 이러니 자꾸만 권력 비호설이 흘러나온다.
그런가 하면 채용 비리로 1심(2018년 5월 18일)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B씨 사례는 해고수당을 챙겨주려고 금감원이 고의로 예고기간 30일을 채우지 않았다는 합리적 의심마저 가능하다. 필기시험에서 탈락한 전 한국수출입은행 부행장 아들을 합격시키려고 채용 인원을 부당하게 늘렸던 B씨는 인사위원회(6월 8일) 후 한 달에서 고작 3일이 부족한 7월 5일 면직 처분을 당한 덕분에 619만원을 챙길 수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퇴직 후 3년인 재취업 금지 기간 동안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는 금감원 퇴직자들의 단골 피난처인 모 신용정보 회사의 자회사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조직 차원의 봐주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쯤 되면 단순히 제 식구 챙기기인지, 아니면 조직 비리를 개인 일탈로 꼬리 자르기 한 것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영역은 다르지만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 권력인 CJ ENM에서도 최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금감원이 금융사의 저승사자라면, Mnet 채널 등을 가진 CJ ENM은 아이돌 지망생에겐 신과 같은 존재였다. 아이돌 연습생을 단숨에 글로벌 초대형 스타로 만들어준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시리즈'가 이런 평판에 한몫 했는데, 팬들의 집요한 추적으로 제작진이 시즌 1~4에 걸쳐 광범위하게 시청자 유료 문자투표를 조작했다는 게 드러났다. 결국 김용범 CP와 안준영 PD는 징역형을 받았고, CJ ENM은 "개인 일탈"이라며 대표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형기를 마친 안 PD의 재입사를 비롯해 조작의 주역이 모두 복직했다는 게 뒤늦게 알려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사상 최고인 1억2000만원의 과징금을 받는 등 조직 신뢰를 갉아먹은 범법자를 내 편이라는 이유로 끝까지 챙긴 것이다. 이런 조폭식 의리는 정치권 하나만으로도 신물이 난다. 그런데 어쩌다 금융감독기관부터 엔터기업까지 죄다 닮은꼴이 돼버렸는지 한숨만 나온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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