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한·미 훈련에 짜증 났나? ‘훈련 막아서기’ 직접 뛰어든 김정은

정용수 2023. 4. 6.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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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수 논설위원·통일문화연구소장

북한을 읽으려면 최고지도자의 행보를 쫓는 것이 기본이다. 북한 매체는 비록 필요한 것만 선별하지만 그 속에 최고지도자의 구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부터 사소한 잘못도 비판받아온 북한 관료와 주민에겐 보신주의가 팽배해 있다. 최고지도자가 움직여야 사회가 돌아가는 구조다.

여기에 경제난으로 자원 배분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최고지도자의 지시는 곧 법이다. 또 물자 보장의 수단이 된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집무실을 비우고 현지 지도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 올 1분기 공개활동만 22차례
최근 5년 중 가장 왕성한 행보

핵·미사일 관련 현장 절반 넘어
중·러 믿고 안보리 결의안 무시

다양한 미사일 발사 방식 선전
사소한 오판이 재앙 부를 수도

지난달 공개활동은 100% 군사 분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9일 평북 철산군 동창리에서 발사한 미사일 참관지로 가기 위해 딸의 손을 잡고 걷고 있다. [뉴시스]

최근 김 위원장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올해 1~3월, 즉 1분기에만 총 22회(수일간 진행한 회의는 1회로 간주)의 공개활동을 했다. 최근 5년 중 최다 수치다. 본지 통일문화연구소가 2차 북·미 정상회담(베트남 하노이)이 결렬된 2019년부터 지난 3월까지 매년 1분기 그의 행적을 분석한 결과다. 미국과 정상회담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회담 결렬 후 “(미국이)황금 같은 기회를 날렸다”고 위협하며 뒷정리에 집중했던 2019년 1분기에 그는 모두 15차례 북한 매체에 등장했다. 2020년엔 정비 시간을 가지며 13회로 보폭을 줄였다가 2021년 21회, 지난해엔 18회를 기록했다.

흥미로운 건 분야별 공개활동이다. 김 위원장은 올해 22회 공개활동 중 군사 분야에 13회를 할애했다. 전체 활동의 절반 이상이 군사였다. 집권 직후 군심 다잡기에 나선 2013년 같은 기간의 군사 분야 현지지도(총 19회)는 전체 활동의 44% 수준이었다. 특히 지난달 9일 화성포병부대 현지지도(단거리미사일 발사)를 시작으로 김 위원장의 3월 한 달간 공개활동은 100%가 군사 분야였다. 말로는 경제를 강조했지만 사실상 군사에 올인한 것이다.

20년 전인 2003년 이맘때 외교가에선 중국이 북한에 제공하는 원유 밸브를 잠갔다는 얘기가 돌았다. 북핵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에 북한이 미온적으로 나오자 화가 난 중국이 원유 제공을 중단하며 북한을 압박한다는 얘기였다. 효과가 있었는지 그해 8월 북한은 베이징 6자 회담에 나섰다. 당시엔 한·미·일은 물론 북한 동맹이었던 중국과 러시아까지 북한의 핵 포기를 요구했다. 북한 입장에선 1대 5의 구도였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태도가 최근 달라졌다.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금지한 탄도미사일을 마구 쏘아대도, 중·러는 일방적으로 북한을 편든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러의 반대로 대북 추가제재는 물론 규탄 성명조차 채택하지 못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어느 때보다 거세지만 과거 1대 5의 구도가 3대 3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런 뒷배 때문일까. 북한은 국제사회의 우려와 경고에도 지난달 미사일 도발에 전념했다. 한·미 연합훈련(자유의 방패, 3월 13~23일) 기간 5차례를 포함해, 훈련 전과 후를 포함하면 모두 8차례다. 김 위원장은 이 ‘현장’을 빠지지 않고 찾았다. 지난해 하반기 한·미 연합훈련 때 ‘맞짱 전략’을 선보였던 그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강대 강, 정면대결을 강조한 걸 실천하는 모양새다. 과거 ‘시험’ ‘검수’라는 완곡한 표현으로 미사일 시험발사를 전했던 북한이 지금은 “군사적 공격능력 시위”(지난달 24일)라며 협박한다.

김 위원장의 최근 행보에 특이점이 있다. 10살 안팎의 딸을 데리고 미사일 발사 현장에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김 위원장 부녀는 지난달 19일 평북 철산군 동창리의 미사일 발사 현장을 찾았다. 북한이 처음으로 모의 핵탄두를 고도 800m 상공에서 폭발 실험을 한 날이다. 지난해부터 서방 언론이 주목한 그의 딸을 대동하고, 여기에 모의 핵폭발이라는 ‘한방’을 과시하며 관심을 끌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대미 관계를 장기전으로 선포했지만, 대화에서 무력으로 수단만 바뀌었을 뿐 ‘관심 종자’가 되고 싶은 열망은 여전히 그대로다.

북한은 핵탄두 폭발 실험 발표와 함께 미사일이 변칙기동을 해 요격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 이동식발사대(TEL)를 대거 사용하고 수중 발사, 지하 시설(사일로) 등 다양한 발사 방식을 선보였다. 한·미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막기 힘들 것임을 내세우려는 듯하다. 공중폭발 실험, 전술핵탄두 공개도 같은 맥락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을 관할하는 미군 7함대의 칼 토머스 사령관은 지난해 10월 “우리가 그 지역에 있었던 게 김정은의 짜증(tantrum)을 부른 것 같다”고 했다. 이런 관측이 사실이라면 지난해 한·미 연합훈련에 짜증이 난 김 위원장이 올해는 직접 나선 셈이다.

김정일 집권기보다 상황 엄혹해

김 위원장의 짜증이 잠시 줄어든 것일까. 지난달 27일 이후 9일째 김 위원장이 잠잠하다. 그렇지만 갑자기 ‘큰일’을 저지른 전례가 있다는 점이 꺼림칙하다. 군사위성이나 남태평양을 향한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시험 발사를 직접 챙기고 있을 수도 있다. 그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권력 승계 과정에서 1·21 청와대 습격(1968) 사건과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1976)을 주도했다.

북한이 처한 여건이 아버지 김정일 집권 전반기의 북한보다 훨씬 엄혹하다는 점을 김정은 위원장이 알고 있을까. 의도가 무엇이든 북한의 최근 ‘위협 올인’ 행보는 결과적으로 한반도 핵위기를 높이고 있다. 중·러의 후원을 바탕으로 핵과 미사일 카드를 꺼내 든 김 위원장은 아버지가 ‘사건’을 일으켰을 때처럼 혈기 왕성하다.

하지만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큰코다칠 수 있다는 교훈도 아버지에게서 들었을까. 핵위협을 앞세우는 김 위원장이 자신의 무모한 행보가 인류 역사 최대의 참사를 부르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용수 논설위원·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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