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학폭, ‘취업 제한’ 처벌 우선보다 어른들 반성 먼저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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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일탈로 평생 앞길 막는 엄벌은 과잉
예방과 피해 학생 보호에 몇 배 공들인 정책을
정부와 여당이 학교 폭력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라는 걸 내놨다. 가해 학생의 관련 기록을 대입 정시모집에 반영한다는 내용이다. 더 나아가 학폭 기재 사항을 가해 학생이 취업할 때까지 보존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윤석열 정부가 첫 국가수사본부장으로 발탁했던 검찰 간부 출신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학교 폭력 파문이 불러온 후폭풍이다. 당시 불이익을 모면하기 위해 법률 전문가인 부친이 나서 갖은 방법으로 시간을 끈 결과 아들이 정시모집으로 서울대 진학에 성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달 윤 대통령이 학폭에 대해 미국식 ‘원 스트라이크 아웃’을 언급한 이후 예상해 온 가해 학생 엄단 조치가 가시화한 셈이다. 급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안기는 학폭은 절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학교는 물론 교육 당국과 학부모까지 협력해 촘촘한 방지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사안이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인 가해 학생이 뉘우치고 반성할 기회까지 박탈해선 곤란하다.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학교와 가정을 비롯한 모든 어른의 책무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빗나간 길을 잠시 걸었다고 해서 대학 입학은 물론 취업에까지 평생 빗장을 건다면 어린 시절의 실수에 대해 속죄할 수 있는 길을 영영 차단하는 셈이다. 현행 소년법은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에 대해서도 ‘소년의 보호처분은 그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한다’(32조 6항)고 규정한다. 이보다 경미한 사안임에도 취업 문턱에서 좌절하게 된다면 균형이 맞지 않는다. 대입에서 감점되고 취업에서도 불이익을 받으면 “이중 처벌의 소지”(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라는 지적도 나온다. 성년의 범죄 기록조차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채용 시 요구할 수 없는데, 미성년 시절 폭력으로 더 큰 불이익을 받는 모순은 어찌할 생각인가.
폭력이 심각해진 이후에 가해자를 엄벌하는 대응보다 학폭이 발생하려 하거나 시작된 직후에 신속하게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선도하는 조치가 훨씬 중요하다. 어제 당정 발표는 예방보다 처벌에 치중한 인상을 준다. 문제가 된 정 변호사 아들만 해도 재판 과정과 판결문에서 가해자 측과 학교의 대응이 미흡해 피해를 키운 사실이 드러났다. 당정은 가해 학생 처벌에 들이는 노력의 몇 배를 먼저 폭력 예방과 피해자 보호에 쏟아야 한다. 각종 설문에서 피해 학생이 가장 바라는 건 “가해자의 진심 어린 공개 사과”로 나타나지 않는가.
학폭 예방의 목적으로 예·체능 교육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발표했지만, 이조차 대입 수시 전형의 득점 수단으로 전락한 우리 교육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학생들의 인성과 정서 함양에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이 담긴 예방책이 절실하다. 조만간 발표할 총리의 최종 계획엔 보다 깊은 성찰을 담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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