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기업] 농업기술 혁신을 위한 횡적 협업이 필요한 때
기고
조남준 농촌진흥청 연구정책국장
외국의 곡창지대를 지나다 보면 평원 한가운데에 집채만 한 원기둥 모양의 철제통이 줄지어 늘어선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이 철제통을 ‘사일로’라고 부르는데, 곡물·사료 등을 저장하는 창고이다. 같은 모양의 통들이 모여 있지만, 내용물을 안전하게 저장하기 위해 통끼리의 접촉을 차단해 두었다. 흔히 조직에서 이기주의를 이야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단어가 바로 ‘사일로 효과’이다. 같은 모양이지만, 서로 차단된 사일로를 빗대어 같은 조직 안에서 개별 부서끼리 담을 쌓고, 각자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어느 조직이건 부서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있으면, ‘사일로 효과’가 감지되기 마련이다. 연구 현장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농촌진흥청은 지난해 10월, 협업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전담 부서인 ‘융복합혁신전략팀’을 신설하고 직원들의 협업 인식 수준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81%가 우리 조직 내 협업이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하나같이 복잡다단하다.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고 벅차다. 알게 모르게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고, 함께 이룬 성공은 고군분투할 때와 또 다른 성취감을 준다. 여기에 더해 협업함으로써 미처 깨우치지 못했던 분야를 동료에게 배우는 기회도 얻게 된다. 내가 가진 전문지식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 연구개발 분야에서 꼭 필요한 미덕이다.
우리 농촌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인 노동력 부족 문제는 지속해서 심화되고 있다. 농촌인구의 고령화율은 2000년대 21.7%에서 2030년에는 59.7%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추세라면 10년 후에는 농기계 도움 없이 농작업이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지는 5대 채소(배추·양파·마늘·고추·무)의 씨뿌리기나 정식(모종을 본밭에 옮겨 심는 것) 기계화율은 15%를 밑돈다. 배추와 고추의 정식 기계화율은 0%이다.
농촌진흥청은 농촌의 노동력 문제를 해결하고자 ‘종횡무진 프로젝트’의 하나로 ‘밭작물 스마트 기계화 촉진’을 기획했다. ‘종횡무진 프로젝트’는 농업정책 현안 가운데 융·복합 협업이 필요한 중점과제를 선정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가는 기획이다. 밭작물 맞춤형 농기계는 먼저 품종 특성을 고려해 개발해야 한다. 재배양식도 수확할 때 기계에 맞춰져야 한다. 연구기획 단계에서부터 품종, 재배 관련 연구자와 충분히 소통하고 협업하지 않으면, 농기계를 개발한다 한들 현장에서 사용할 확률은 낮다.
종횡무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추진단에는 연구원만 속하지 않는다. 정책을 기획하는 농식품부 담당자, 농업 현장에 기술을 보급하는 지도직 공무원, 새로운 기술을 사용할 농업인이 머리를 맞대고 기획하고 고민한다. 연구개발 기술 및 지도 정책을 지속해서 보완·발전시킬 수 있도록 자문단에 반드시 농업인을 참여시키는 횡적 협업체계도 구축했다.
2023년 다보스 포럼과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의 화두는 농업기술 혁신이었다.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대명제 아래 인류의 먹거리를 안정 생산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농업기술 개발이 우선이다. 필자는 혁신을 이끌어 낼 실마리를 횡적 협업에서 찾는다. 농업 분야의 협업은 정책입안자, 연구·지도 전문가, 농업인이 함께 소통하고 협업하며 성과를 만들어 가는 ‘3인 1조’달리기 경주다.
경영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격변기에 있어 최대의 위험은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조직이 부서 이기주의, 사일로 효과에 빠지면 소통과 협업이 사라지게 된다. 개개인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결국 조직은 쇠락의 길로 빠지게 된다. 과거의 방식을 과감히 탈피하고 횡적 협업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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